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 문화/독서와 기록
- 2019. 2. 11. 08:01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아니, 비단 한국 사회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여성의 권리 찾기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더 뭘 바라는 거야?’라는 회의적인 시선과 기존의 구시대 가치관을 가진 남성들에게 저항하며 숨기고 있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운동은 조금씩 마찰음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젠더 갈등’으로 불릴 정도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의 폭이 깊어지고 있는 거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여성의 권리가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어 남성 계급과 갈등의 폭이 더 심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가 부딪히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 지금 2심의 판결로 논란이 빚어진 양예원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스스로 원해서 모델 일을 했는가, 아니면, 정말 어쩔 수 없이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델 일을 했는가가 논점이다.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우리는 솔직히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외부로 줄줄 흘러나온 여러 가설과 정보를 기반으로 자칭 페미니스트와 반 페미니스트가 부딪히며 젠더 갈등을 심각한 수준으로 일으키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도 이제는 정말 신물이 날 정도의 뉴스거리가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여성과 남성은 오늘날 갑작스레 권리 투쟁이 심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솔직히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상식과 대학에서 교양과 책으로 터득한 상식에서 분명히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한 게 불과 백 년이 채 되지 않은 것뿐이다. 과거부터 여성이 어떤 성차별을 당했고, 지금도 어떤 성차별이 남아 있어 이렇게 갈등을 겪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자극적인 뉴스에서 사실만 챙겨보려고 노력해도 그 일이 쉽지 않았다. 역시 나 또한 남자이기 때문에 남성의 의견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고,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터라 남성의 권위주의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어도 그렇게 생겨먹은 한국 사회를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도대체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고, 어떻게 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에 젠더 갈등과 관련된 사건이나 페미니스트 단어를 언급해야 하는 글은 되도록 회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면서 글을 적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나는 우연히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만화로 읽을 수 있는 성차별의 역사로,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벌어진 성차별 문제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었다.
책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 책의 목표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30만 년 동안이나 여성의 권리를 빼앗아간 불평등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터무니없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 밝히는 것입니다.”
저자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처럼 여성의 권리 투쟁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저 책을 읽는 독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차별에 관해 올바른 지식을 갖게 하고 싶다.”라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다. 책은 딱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미처 보지 못한 차별의 역사를 핵심만 요약해서 독자에게 보여 준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왜냐하면, 오늘날 여성들이 누리는 권리를 여성들이 손에 쥐기 위한 운동이 제법 오래전부터 시작했고, 그 성과를 일찍이 이루어 남성과 대등하게 이루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는 늦어도 서양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를 읽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문화 전성시대’로 알고 있었던 르네상스 시절에 일어난 끔찍한 마녀사냥의 이유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여성의 직업은 다양해졌다. 유명한 여성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여성 교육자가 생기면서 민중을 상대로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기초적인 의료 지식을 익혀 환자도 치료했다.
이렇게 여성들이 조금씩 획득하기 시작한 자유와 독립성은 그동안 남성들이 구축해온 권력을 위협했다. 교회는 모든 원죄의 원인인 여성을, 심약하여 악마에게 유혹당하기 쉬운 존재로 봤다. 또한 약용 식물을 사용한 치료는 마술이며, 특별한 지식과 능력을 갖춘 여성은 마녀라고 선언했다.
부르주아들은 가부장 권력이 줄어들까 봐 걱정했다. 뿐만 아니라 상속권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리하여 그들은 로마체제의 질서를 다시 세우기로 했다. 즉,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단 개념을 모든 것에 적용했다. 그리고 여성을 겨냥한 전쟁을 선포했다. (본문 63)
우리가 익히 잘 알던 마녀사냥은 여성이 차츰 자유와 독립성을 손에 넣기 시작하자, 여성을 견제하려고 한 남성들이 일으킨 사건이었다.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웠던 시절이라고 말하는 르네상스 시대에도 이렇게 남성들이 자유와 독립을 손에 넣기 시작한 여성들을 견제하고자 끔찍한 일을 벌인 거다.
그냥 멀게만 느껴지는 르네상스 시대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를 넘기면서 그 시대는 어쩔 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책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건 좀 심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성차별이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에서 오늘날과 가장 가까운 1975년~2000년 파트를 읽으면 무심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이제야 겨우 몇 년 동안 갖은 논란을 겪으며 겨우겨우 법으로 제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부에서는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 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20대로 살아가는 나는 지금 같은 평등이 그렇게 오래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산업혁명 이후 문명사회가 갖춰질 때부터 생긴 평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길어도 불과 100년, 짧으면 20년이 채 되지 않은 사항도 많았다. 이제야 겨우 여성은 진정한 의미로 진짜 권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지 못한 성차별의 역사를 똑바로 알 수 있었던 책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하지만 책을 읽어도 나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젠더 갈등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의 젠더 갈등은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싸움이 아닌, 그저 쌓인 분노를 혐오로 쏟아내기 위한 싸움처럼 보인다.
아마 이 싸움은 유럽과 미국 등의 서양 국가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싸움의 시작 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상황이 그때와 달리 조금 다를 뿐이다. 천천히 단계를 거치며 변화를 제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따라오지 못한 법과 의식이 이제야 서로 부딪히고 있는 거다.
그리고 여기에는 경제 불황과 지나치게 빠르게 변한 의식이 더 강한 불꽃을 튀기게 했다. 또한, 구시대 가치관을 가진 늙은 정치인들이 재계와 손을 잡고 변화하는 가치관을 따라가지 않고 있다는 점도 큰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정치는 여전히 친일 군부 독재VS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이다.
서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싸우는 그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올바른 역사의 이해가 필요하다. 성차별의 역사는 정치와 사회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절대 가볍게 ‘페미니스트 짜증 나.’ ‘한남 녀석들 ㅋㅋㅋ’이라며 조롱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 맥락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소개한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라는 책이 그동안 자극적인 뉴스를 통해 휘둘리기 바빴던 우리에게 ‘젠더 갈등’이 아닌 ‘성차별’을 똑바로 알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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