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캐슬 18회 강준상을 통해 본 작금의 현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9. 1. 21. 08:31
기어코 케이블 방송사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도깨비>의 기록을 넘어 시청률 22.3%를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연일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다. 이제 완결까지 딱 ‘2화’를 남긴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모든 사건이 막바지에 이르며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뒤흔들고 있다.
가장 주목받은 집은 억울하게 누명은 쓴 우주가 있는 이수임 집이 아닌, 우주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사실과 함께 김주영의 범행을 밝힐 수 있는 증거를 손에 쥐고 있는 강준상과 한서진의 집이다. 이 집에서는 그려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비극, 아니 어쩌면 현실에 가까웠다.
특히 잘 나가는 외과 의사로 척추 센터 센터장과 기조실장을 역임하고 있는 강준상이 무너지는 모습은 사필귀정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아마 <스카이캐슬 17회>와 <스카이캐슬 18회>에서 한서진과 강예서 두 사람 다음으로 행동이 기대된 인물은 강준상이 아니었을까?
드라마 <스카이캐슬 18회>에서 그려진 강준상의 모습은 짠한 마음이 들게 했다. 그동안 자신의 뜻이 아니라 어머니가 바란 뜻대로 살아오면서 나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마주한 비참한 현실. 근 50이 되어서야 “강준상이 없잖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허깨비가 된 것 같다고! 내가!”라고 외친다.
강준상이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인 한서진 앞에서 털어놓은 고백은 사실상 오늘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와 중년 세대의 심정을 대변한 고백이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어떤 길을 가길 원하는 부모님의 욕심, 그리고 세간이 인정하는 ‘성공한 길’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가.
분명히 모두가 가는 길이 안정한 길일 수도 있다. 괜히 튀어나온 모난 돌이 되는 게 아니라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남들만큼 위를 바라보며 항상심을 추구하는 자세가 어쩌면 성공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른다. 단, 거기에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얼마나 가졌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모두가 가니까 대학에 일단 아무 생각 없이 가고, 대학에서 남들처럼 어울리며 놀다가 취업할 때가 되어서 ‘난 뭘 잘할 수 있지?’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뭐지?’라는 고민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중요한 고민조차 끝까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고민’으로 치부하며 도중에 포기해버린다는 점이다.
취업하는 데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고민할 겨를을 세간에서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지 못하면 부모님의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왜 고작 그것밖에 안 돼?”라는 고함을 들으며 스스로 견디기 힘든 고통에 빠져 버린다.
부모님의 그런 말만 아니라 주변에 적당히 취업한 친구가 있거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내 삶을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더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일단 적당한 곳에 취업해서 적당하게 사람들의 눈 밖으로 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늘날 한국 사회는 ‘4년제 대학을 나왔으니 대기업, 혹은 못 해도 적당한 중소기업은 들어가야지.’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불안정한 비정규직 고용이 늘어나면서 ‘적당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답은 공무원이다.’라는 열풍이 불면서 매해 수백만이 고시 시험을 치른다.
이런 게 ‘정상’일 리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살지 않으면, 체면을 먼저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기를 펴고 살 수가 없다. 오늘날 기성세대는 자식들에게 기대 수준을 높여 더 높은 곳을 바라보라고 악착같이 매달리고 있다. 그 탓에 벌어진 지옥 같은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흔히 한국 체육계를 엘리트 체육 사회라고 말하는데, 오로지 결과 하나만 좋으면 된다는 방식이 과거 몇 년 동안 성추행을 비롯한 폭행이 선수들 사이에서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는지 모른다. 더욱이 제 식구 감싸기가 심한 분야에서는 학연, 지연에 따라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절대 바로잡힐 수 없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우리가 모두 알고 있어, 우리는 감히 그 문제를 바로 잡고자 하지 못한다. 나처럼 글을 쓰는 것밖에 힘이 없는 사람은 글로 말하고, 영상을 찍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영상으로 말하고, 다소 높은 이상과 힘을 가진 사람은 정치에 진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높고 단단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옥은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 아무리 두드려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드린 사람이 넉백 효과로 기절을 하거나 두 번 다시 재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굳이 멀리서 볼 필요가 없다. 가까운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그 사례는 흘러넘친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18회>에서 볼 수 있었던 강준상의 오열은 그렇게 근 50년을 살아온 중년 세대의 모습이다. 문제는 뒤늦게 나이가 들어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은 주변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자식에게 강요하며 잘못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만약 강준상이 혜나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강준상이라는 놈은 도대체 어떤 놈인가?’라는 고민을 해볼 수 있었을까?
드라마 <스카이캐슬 18회>에서 들을 수 잇는 강준상의 대사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는 도대체 언제까지 절 무대 위에 세우실 겁니까? 그만큼 분칠해서 무대 위에 세우시고, 박수받으셨으면 되셨잖아요!”
“저는 어머니 뜻대로 분칠하시는 바람에 제 얼굴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르고, 근 50 평생을 살아왔잖아요!”
“어머니랑 제가 인생을 잘못 살아 왔다고요! 언제까지 껍데기만 포장하며 사실 건데요!? 언제까지 남들 시선에 매달리며 사실 거냐고요?!”
이 말은 마치 송곳처럼 우리를 찌르는 말이다. 나는 이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잔혹한 입시 현실, 그리고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만 아니라 위 대사처럼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모두를 한곳에 묶어서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강준상은 이미 변하기로 결심을 굳혔고, 다시 한 번 커다란 선택의 기로에 선 한서진과 강예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아마 오래 걸리지 않고, 오는 금요일(25일)에 방영될 드라마 <스카이캐슬 19회>에서 그 선택과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금요일이 너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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