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수험생이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에게
- 일상/사는 이야기
- 2018. 11. 15. 07:30
전 수험생이 이제 막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에게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올해의 마지막 큰일인 수능 시험이 오늘로 끝난다. 벌써 내가 수능을 친지도 9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놀랍다. 수능 시험을 칠 때만 하더라도 대학생이 되어 평생 20대로 살 것 같았는데, 그 20대 시간도 눈 깜짝할 새에 지나 30대를 바라보고 있다. 세월이라는 게 참 이렇게 빠른 걸 그땐 몰랐다.
수능을 공부할 때는 매일 같이 오늘 하루를 바라보고자 했지만, 솔직히 공부에 그렇게 악착같이 매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해서 재수해야 했고, 고집으로 재수했어도 처음 매달린 절박한 심정과 달리 엉망인 상태로 시험을 쳤다. 평소 자신 있는 과목도 모두 한 단계 낮은 결과를 얻었다.
처음에는 정말 밑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좌절감이 들었다.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놈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고, 재수를 하는 동안 버텨준 어머니를 향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웃으면서 “망했다.”라고 말하기에 나는 수능 하나만 보느라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수에 맞춰서 그래도 내가 흥미 있는 일본어를 선택해 지금의 대학에 진학했다. 지금 돌아보면 차라리 이게 나의 삶과 더 맞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굳이 부담스러운 자취 비용도 필요 없었고, 좋아하는 일본어라 질리지 않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대학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일본도 해마다 다녀오고 있고, 일본인 친구도 생겼고, 일본에 아는 사람도 생겨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길이 하나뿐인 게 아니라 여러 길이 있다는 걸 대학에서 공부하며 알 수 있었다. 이건 수능만 바라볼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나는 이번 2019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에게 만약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히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에 가면 좋겠지만, 지방에서도 학생들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대학에 가면 기량을 펼칠 기회는 충분하다. 대학은 끝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로 출발선에 서는 거다.
대학에 오면 모든 게 다시 시작이다. 그동안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것 중에서 도움이 되는 건, 대학 전공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각오로 대학 전공 기초를 시작해 기본을 익히고, 숙련도를 높여 이야기를 쌓아가야 한다. 그게 곧 경쟁력이 된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학교에서 진행하는 많은 프로그램을 2학년 때부터 알게 되어 조금씩 참여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공익 생활과 수술로 인한 재활 이후 4년 만에 돌아왔을 때 만난 교수님을 통해서다.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정말 이런 프로그램 하나도 스스로 챙기지 못했다.
대학은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자유롭기 때문에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다. 대학에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많은 기회가 잠자고 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찬스도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만 아니라 학교에서 진행하는 행사, 공모전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으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자.
▲ 내가 다니는 부산 외국어 대학교
그리고 대학은 중고등학교와 완전히 새롭게 사람을 사귀는 곳이다. 무턱대고 선후배를 사귀는 게 아니라 무언가 배울 수 있는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사람이 곧 자산이라는 말이 있다. 그건 아무나 곁에 두라는 게 아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 자유로운 대학에서 필요한 경험을 해볼 수 있고, 나의 콘텐츠를 늘려서 다양한 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선후배 관계를 만드는 데에 실패했지만,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블로그 활동을 이어온 덕분에 나 나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오고 있다.
그 네트워크는 책을 쓰는 일, 유튜브를 운영하는 일, 진로를 고민하는 일에서 큰 도움을 얻고 있다. 이제야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아직 앞이 깜깜하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대학에 다니면서 ‘이 대학이 아니면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고,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면서 참 잘해왔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만약 수능이 끝나고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더라도, 조금 눈을 낮춰서 차선을 찾을 수밖에 없더라도 그것을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당신>이라는 책은 제목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책인데, 책을 읽어보면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미래도 불투명하다면, 그건 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나 때문이고, 수년간 고쳐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쁜 습관 때문일 것이다. 현재 뭔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할 시기가 왔을 때 자기 자신에게 미안해 질지도 모른다. (본문 66)
삶을 대하는 가장 멋진 태도란, 내가 어떻게 살아야 즐거운지 아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장미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누군가는 그냥 ‘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다른 점이다. (본문 159)
이 두 글은 수능을 마친 수험생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비록 남이 우러러보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현재 뭔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때때로 노력은 우리를 배신한다. 하지만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삶을 대하는 가장 멋진 태도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즐거운지 아는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수능 공부 하나만 하느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즐거운지 알지 못했다면, 적어도 대학에서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즐거운지 찾아보자. 그 즐거움이 ‘지금, 여기’를 있는 힘껏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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