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결이 바람 될 때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11. 7. 07:30
서른 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을 덤덤이 기록한 이야기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요즘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의 수명이 100세를 넘었다고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정해진 때를 맞아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고인이 된 배우 고 김주혁의 사례와 창원 터널 폭발 사고로 사망한 희생자들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갑작스레 떠난 사람 중에서 누구도 자신의 삶이 지금 끝날 것으로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우리 곁에서 크지 않은 경계선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때로는 너무나 일찍 찾아온 죽음이 자신만 아니라 주변을 슬픔에 빠뜨리는 일은 가슴을 매이게 한다.
오늘은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책을 한 권 소개하고자 한다. 36살의 나이는 불과 나와 8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책을 읽는 일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저자 폴 칼라니타가 신경외과 의사로서 환자를 마주한 일과 암 환자로서 병을 마주한 살아온 이야기다.
책을 읽는 동안 낯선 의학용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저자를 통해 본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사는 모습은 저절로 겸손한 마음을 품게 했다. 만약 내가 저자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나는 천천히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남은 시각 동안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지금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36살의 나이에 레지던트 최고봉에 올라 이제야 삶을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린 저자가 암에 걸린 것을 직감하는 장면이다. 프롤로그를 읽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어지러워 다음 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폴이 적은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미완성된 책이다. 글을 쓰는 도중 폴의 병세가 악화하여 도저히 책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신경외과 의사로 일하면서 환자들의 종양을 제거하던 그가 암에 걸린 것은 무척 잔인해 보였다. 그는 의사로서 살다가 환자가 되어 자신의 병을 마주해야 했다.
의사이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앓은 암이 어떤 상황인지 일찍 알 수 있었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도 환자보다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동시에 가슴 한편으로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덤덤하게 삶을 마주하며 살았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의 1부는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라는 제목으로 의사 레지던트로 일하는 폴의 이야기가 있고, 2부는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죽음을 코앞에 마주한 암 환자로 지내면서도 멈추지 않은 폴의 이야기가 있다. 두 이야기 모두 죽음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두 개의 파트 중에서 유달리 깊은 탄식을 흘린 장면을 하나씩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가족이 자주 방문하며 매일 오는 건 물론이거니와 하루에 두 번 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하루 걸러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방문 횟수가 줄고, 시간이 더 지나면 환자의 생일과 성탄절에만 찾아온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대부분의 가족이 가능한 먼 곳으로 이사해버린다.
“그렇다고 그분들을 탓할 수만은 없어요.” 안내원이 말했다. 이 애들을 돌보는 건 힘든 일이니까.”
이 말을 듣고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힘들다? 물론 힘든 일은 맞다. 하지만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내팽개칠 수 있지? (본문 59)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무척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마치 모래 폭풍이 그동안 친숙했던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 (본문 149)
이 두 장면은 의사로서 폴과 환자로서 폴을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처음 연수 과정을 밟는 도중에 방문한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시설에서 폴이 느낀 감정, 폐암이 확정되어 의사가 아니라 환자로서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폴이 느낀 감정. 나는 여기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숨결이 바람 될 때>에는 절망과 좌절이 담겨있지 않다. 때때로 환자들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폴의 모습과 한 번은 치료 중에 다른 곳에서 발생한 암에 미래 계획을 수정하는 폴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절대 폴은 삶의 시련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엉망진창으로 내팽개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폴의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그가 병마와 싸우는 동안 기고한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 ‘떠나기 전에’ 두 개의 에세이는 독자들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시간이 흘러 폴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다시금 폴의 이야기를 읽으며 깊은 고찰을 하는 것 또한 당연했다.
폴은 그의 아내에게 “내 목표는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려내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폴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줄 것이다.
오늘 우리는 당연하게 아침 해가 뜨는 아침을 맞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죽음은 예기치 못할 때에 불쑥 찾아올지도 모른다. 고 김주혁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 별거 없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당연하게 아침 인사를 할 수 있는 게 행복이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늘 그렇듯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생각이 필요한 사람에게 <숨결이 바람 될 때>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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