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총격 사건 가해자 엄마의 고백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7. 21. 07:30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 가해자의 엄마가 16년간 묻고 또 물었다
어젯밤 <정치부회의>를 통해서 한 남성이 헤어진 전 여자 친구를 찾아가 심각한 상해를 입힌 데이트 폭력 사건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 남성을 삿대질하며 비판했을 테지만,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 폭력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데이트 폭력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나는 그 원인을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 찾고 싶다. 우리 교육 시스템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무조건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을 추구한다. 최근에 새롭게 방영하는 <학교20 17>을 보면 보이는 차별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차별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낯설지 않은 현실적인 사례를 접할 수 있다. 불과 몇 주 전에도 유명 연예인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같은 반 친구를 야구 방망이로 집단 폭행을 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접하는 가정 폭력, 학교 폭력, 데이트 폭력은 모두 이름이 다른 폭력이지만 같은 폭력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폭력은 모두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도 무척 유사하다. 가해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순간적인 감정이었다고 말한다.
비록 가해자가 그 순간에 심신 상실의 상태였다고 해도 그들의 행동에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이런 폭력 사건이 유독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큰 이유는 가해자 혹은 가해자 가족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굉장히 떳떳하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깊은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우리가 어쩌면 간과했을지도 모르는 가해자의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가슴 아프게 읽어볼 수 있었다. 시점과 서술이 신선하기는 했지만,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무거웠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저자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해자의 엄마다. 그리고 가해자인 그녀의 아들이 저지른 일은 단순한 학교 폭력이 아니라 무려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 난사 사건이다. 한국이면 총기 난사 사건은 군대에서 일어날 법하지만, 딜런은 겨우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이렇게 총기 난사 사건을 들으면 '아이에게 총기를 건네준 부모의 잘못이다.'라는 의견이 가장 먼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딜런의 엄마인 저자는 딜런에게 총을 사주지 않았을뿐더러, 딜런이 쉽게 총기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엄격히 가르치기도 했다. 도대체 딜런은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
사실 그 이유는 저자도 잘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보통 이런 가해자의 환경을 가볍게 추측하면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가 아이를 잘못 가르쳤다.' 등의 의견을 제시하는 법이다. 저자 또한 그러한 매도를 언론을 통해 당했는데, 그 부분을 짧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언론에서 부모로서 우리를 묘사한 것 중에 그나마 우호적인 것이 우리가 부모로서 존재감이 없고 쓸모없고 무능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우리가 증오로 가득한 인종주의자 아들을 알면서도 덮어주었고, 지붕 아래 무기를 쌓아놓고 있는데도 못 본 척해서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했다.
왜 우리를 비난하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나라고 해도 그런 아이의 부모에 대해서는 끝없는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내가 그 아이의 부모가 아니었다면, 증오했을 것이다. 당연히 부모 탓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부모로서 우리를 묘사하는 두 가지 상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심란하다는 것을. (본문 93)
이 부분을 읽으면 얼마나 저자가 딜런이 총기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대체로 많은 가해자의 부모는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라고 흔히 말하는 법이다. 이 말을 제3자인 우리는 변명으로 받아들이지만, 본인은 진심일 수도 있다.
우리는 부모라면 제 자식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가 생각하는 것의 절반도 모를 때가 허다하다. 많은 부모가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랑을 주려고 하고, 바른 인간으로서 자랄 수 있게 하려고 도덕을 가르친다. 이 책의 저자인 딜런의 엄마도 당연히 그랬던 인물이다.
저자는 딜런이 만화에 나오는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딜런이 일으킨 극악무도한 참극의 배후에 있는 불편한 진실은 '좋은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수줍음 많고 호감 가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딜런의 심성을 먼저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점을 우리에게 말한다.
자살로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 흔히 받는, 가장 고통스러운 질문 가운데 하나가 자식을 안아주곤 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가슴이 아픈 까닭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경우에는 어떤 특정한 사건, 어떤 포옹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딜런이 죽기 2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오후에 계단 아래에서 딜런과 마주쳤다. 나는 자연스레 딜런의 몸에 팔을 둘렀다
"사랑해." 내가 말했다. "넌 정말 멋진 사람이고 아빠도 나도 네가 자랑스럽단다." 딜런은 왼손을 내 등에 닿을락 말락 살짝 올려놓았다. 우리는 서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공들여 칭찬하면 장난으로 오만하게 답례하는 장난을 치곤 하는데, 딜런이 그런 식으로 응답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한 칭찬을 딜런이 농담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딜런의 야윈 턱을 두 손으로 잡고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장난 아니야. 진심이야. 정말로 사랑해.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고 아빠와 나는 널 자랑스러워해."
딜런은 당환한 듯 고개를 숙이고 고맙다고 웅얼거렸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이 장면을 되풀이해서 재생해보았다. 반복하다 보면 왜곡될까 두려워 여기에 적어놓는다. 지금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복도에 서서, 딜런의 손이 내 등허리에 있고, 나는 손을 뻗어 딜런의 얼굴을 잡고 있다. 그때의 기억, 그리고 그때 딜런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오늘날까지도 나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 나의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 가운데 하나다. (본문 370)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착잡해서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학교 폭력의 전 피해자였던 나는 솔직히 얼굴 근육이 씰룩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가해자 부모의 입장에서 무거운 공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가해자의 부모가 겪을 아픔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종종 피해자에게 무척 뻔뻔하게 구는 가해자의 가족을 만난다. 하지만 뉴스에 보이지 않은 가해자의 가족은 피해자의 가족만큼이나 커다란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소중한 자식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에 충격, 피해자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삶을 억눌렀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글은 그 심리가 잘 드러난 글 중 하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는 동안 가해자의 부모가 어떤 마음일지 짧게 추측해볼 수 있었다. 우리가 언론에서 접하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피해자 부모를 스토킹하다시피 쫓아 협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부모의 모습을 본 느낌이다.
분명 적지 않은 가해자의 부모가 이런 심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학교의 눈물>을 통해서 본 뻔뻔한 어느 부모의 모습과 언론 기사를 통해 접하는 가해자 부모의 모습이 모든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우리 사회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을 테니까.
우리 사회에서 '폭력'이라는 단어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등을 돌리고 외면한다고 해도 우리 주변에 있는 폭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친구를 괴롭히며 정신적인 우월감을 맛보는 학교 폭력, 상대에 대한 소유욕과 애정 욕구가 섞인 데이트 폭력, 그리고 원인불명의 가정 폭력.
아마 우리가 접하는 여러 폭력에서 원인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도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없는 폭력이 많을 것이다.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은 늘 옅어지는 도덕이 더욱 잔인함을 부추기고, 절대 그럴 리가 없는 아이가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어떻게 변할지는 부모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어보면 이런 글이 있다.
"공격 행위를 하는 사람은 대개 배후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합니다." 란다조 박사가 나에게 말했다. "정신적 문제일 때가 많지요. 이런 정신건강 문제는 대개는 미리 발견하여 잘 치료하면 해결될 수가 있습니다. 정신건강 관련 지원이 많아질수록 폭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 한국 사회는 얼마나 정신 건강에 투자하고 있을까? 매몰차게 경쟁과 결과 위주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어긋난 부모의 사랑이 겹쳐져 친구를 야구 방망이로 때리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군대 가혹 행위와 대학 군기,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오늘 폭력 사건을 어렵지 않게 접하는 폭력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그리고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을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 가해자의 엄마가 16년간 묻고 또 물은 이야기. 이 과정은 우리 사회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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