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이 말하는 더 나은 나를 위한 하루
- 일상/사는 이야기
- 2017. 3. 25. 07:30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들려준 남궁인, 오늘 하루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 좋은 일은 부족한 일본어 공부를 하고, 대학이 비용을 어느 정도 지원하는 프로그램 혜택을 얻고, 종종 특강을 통해서 만나기 어려운 강사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대학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다. 평소에는 그냥 책을 들고 다니며 수업을 들을 뿐이니까.
사실 대학에 낭만이 있다는 말은 낡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뛰어놀면서 밝게 지낼 수 있는 시기는 길지 않다. 대학에 갓 신입생으로 입학하면 고등학교 입시에서 벗어났다는 즐거움이 앞선다. 하지만 2학년, 3학년으로 차차 학년이 올라가면 마음이 급해진다.
당장 졸업할 시기는 다가오는데 학점이 좋지 않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무척 어려워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누구도 답에 책임질 수 없는 질문을 달고 산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온전히 자신의 질문이다.
만약 내가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사세요. 단, 주변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내가 오늘 하루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세요."라고 대답하고 싶다. <미움받을 용기>의 아들러가 말한 것처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지금, 여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살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만난다. 그 이야기는 내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영향을 미치더라도 우리가 만나는 이야기는 온전히 우리만의 이야기가 되어 내 삶의 경험이 된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얼마 전에 나는 대학에서 응급의학과 의사 겸 작가인 남궁인을 만났다. 과거 <말하는 대로 3화>와 <비정상회담>을 통해서 그의 이야기를 짧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대학 게시판에 그가 대학을 찾아 짧은 강연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히 그 날은 오후 스케줄이 텅텅 비는 날이라 참여할 수 있었다.
대학 무대에 오른 그는 자신은 전문 강사가 아니라고 말하며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24시간 일하고, 24시간 휴식을 취하는 교대근무 형태의 응급의학과 의사의 삶은 보통이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하루를 꼬박 쉴 수 있더라도 하루를 꼬박 일해야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더욱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고 여겨지는 응급실은 더욱 각박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응급의학과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의학이라는 학문은 비단 사람이 아픈 것만 아니라, 불편한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세상 바깥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갖가지 상황은 정말 놀라운 일이 많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누구보다 사람의 끝을 많이 보았을지도 모르는 응급의사로서의 삶은 작가로서 사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이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흔히 예술은 척박한 시대에 탄생하기에 더욱 아름답다고 말한다. 응급실도 그 시대 못지않을 것이다.
작가로서 삶을 이야기할 때 <말하는 대로>에서 하지 못한 좀 더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을 맞아 들어간 대학에서 한참 놀다가 '조금은 달라지고 싶다', '나를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가 '같은 고민을 하며 세계 일주를 힘들게 다녔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역시' 하고 말았다.
글 쓰는 사람과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다니는 사람 중에서 여행이 빠지는 사람이 없었다. 여행을 통해 깊은 사색을 하고, 여행을 통해 다양한 곳 속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곧 풍부한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듯했다.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웃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책을 통해 많은 곳을 여행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남궁인 씨는 작가로서 삶을 말하면서 과거 자신은 싸이월드를 통해 일기를 쓰며 매일 하루하루를 기록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블로그에 서평, 음악평, 시사평 등의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고 한다.
글쓰기는 어렵지 않다. 많이 쓰려고 하면 된다. 많이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좋은 문장과 더 좋은 글을 찾아 읽게 되고, 내가 읽은 문장의 수만큼 내가 적을 수 있는 문장 또한 늘게 된다. 이렇게 글을 쓰는 행동을 통해서 오늘 하루만큼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루만큼 자신이 나아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1년 혹은 10년 후를 바라보는 건 너무 멀다. 나는 하루만큼 달라질 수 있고, 그것이 쌓여서 1년, 10년이 된다. 나는 하루의 개념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달라지는 데 필요한 것은 크지 않다. 하루를 맥주를 마시면서 TV만 보는 것보다 일기 한 장을 쓰고 자면 달라다."
결국, 우리의 모든 시간은 자신에 대한 투자나 다름없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나의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압박감에서 벗어나 내 삶에 대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뿐인 인생을 살게 된다. 그 한 번뿐인 삶에 무엇을 남기는지는 그 하루의 행동에 달려있다.
남궁인 씨는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한번 시작한 일을 쉽게 그만두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하루를 쌓아 오는 시간을 통해 바뀌어 가는 자신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바뀌어 가는 자신을 기대하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오늘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1년을 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통해서 내 삶을 짧게 기록하면서 살면, 어쩌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바뀔지도 모른다. 내가 보낸 시간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이 생각이 남들이 생각하는 깊이를 넘어설 수 있으니까. 이건 굉장히 멋진 일이다.
글을 쓴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작가가 될 수 없고, 우리가 모두 잘 써야만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오늘 우리의 모습을 나만의 문장으로 적으면 된다. 나를 글로 옮기면서 우리는 저절로 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오늘 하루가 더 나은 내일의 나를 위한 시간이 될 테니까. 그래서 글쓰기는 멋지다.
남궁인 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 산문을 쓰게 되었고, 그 산문이 책으로 만들어지면서 오늘 우리가 아는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작가가 되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오늘의 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는 오늘을 글로 쓰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건 나의 아집에 불과하다.
단지, 오늘을 기록할 수 있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하나 해볼 걸 추천하고 싶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오늘 하루를 사진으로 한 장 남겨보는 건 어떨까? 늘 품속에 품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이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루의 사진이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대체 어떤 사진이 될까?
그 일을 상상만 해도 즐겁다. 오늘이 무의미하고, 나는 더 나은 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글이 작은 시작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고민한 의사겸 작가인 남궁인과 다르지만, 우리는 오늘 하루를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한 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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