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오래된 생각은 다시 사람이라는 겁니다

참여정부 윤태영 대변인이 소설로 적은 또 다른 노무현의 이야기


 지난 3월 10일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귀 기울이며 다시 봄이 온 사실에 쾌조의 환호성을 질렀다. MB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정치적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첫 단추인 대통령 박근혜의 파면 결정은 80%가 넘는 시민이 쌍수를 들고 환영의 뜻을 비쳤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날에 나는 우리나라 정부 역사상 민주주의를 가장 잘 실천했다고 일컬어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떠올렸다. 나는 매해 꼭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이면 봉화마을을 찾는다. 그곳에서 내가 기리는 건 생전 뵌 적 없는 대통령님이자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시민 민주주의 염원이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부분적 언론 자유국가가 되어버린 우리나라는 박근혜 정부 이후 가파르게 시대를 역행하기 시작했다. 지난 9년은 우리 시민 사회의 민주주의에 혹독한 겨울이었다. 하지만 그 차디찼던 겨울 또한 이렇게 끝이 났다. 이 겨울이 끝나는 것을 어느 누가 반기지 않을 수 있었을까.


 헌재 이정미 재판관의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말은 결국 마지막에는 시민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2017년의 봄을 알린 한 마디였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포기했던 그 분의 가치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분의 이름과 이야기가 다시 떠오르는 3월, 나는 <오래된 생각>이라는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 윤태영은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이다. 그가 <오래된 생각>으로 펴낸 그분의 이야기는 소설이었지만,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덤덤히 웃고 계셨을 그분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생각>은 임진혁이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하고, 진익훈이라는 인물을 비서관으로 하여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여당 내에서도 반발 기류에 휩쓸리고, 야당에서는 언론과 유착하여 대통령을 커다랗게 뒤흔드는 장면에서 <오래된 생각>이라는 소설은 막을 올린다. 참여 정부의 어려웠던 시기였다.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임진혁이라는 인물은 바로 그분의 모습이다. 대통령 임진혁은 권위주의를 포기하기 위해서 검찰을 장악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검찰에 공격을 당하는 대통령은 여당 내에서도 지지기반이 무너져 정책을 이어 나가기가 무척 어려웠다. 적군은 넘쳤지만, 아군은 부족했다.


 그런 임진혁 대통령의 이야기를 옆에서 기록하는 인물이 진익훈이다. 대변인이자 비서실장으로서 이야기를 덤덤하게 이어나간다. <오래된 생각>을 읽다 보면 사뭇 화가 나는 장면, 울분이 치밀어오르는 장면을 종종 만난다. 그리고 그 장면은 오늘 우리가 처한 사회로 연결되어 또 다른 그림을 그렸다.


 <오래된 생각>을 읽으면서 각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하는 다음의 길은 오늘 대학에 다니며 책을 읽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지금 이렇게 대학에서 치열하게 배우는 것은 사회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상식적인 사회가 되기 위한 일원이 되기 위해서인가?"


 대학가를 비춘 따뜻한 봄 햇살에 취해 해버린 아무런 의미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질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임진혁 대통령 옆에서 보좌하는 진익훈은 오늘날 우리가 진보로 부르는 사람이고, 진익훈과 대비되는 자리에 앉은 김인수는 우리가 보수로 부르는 사람이다.


 두 사람 중 누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옳고 그름의 판별이 아니라 어느 쪽이 더 상식적으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인물인가 묻는다면, 나는 진익훈의 손을 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학에서 배우는 것 또한 상식을 배워 성숙한 시민으로서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유시민 작가는 민주주의에서 '시민'을 이렇게 정의한다.

"국민 자격은 태어나는 것만으로 자동으로 얻지만, 시민은 주권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인식하고 이것을 이행해야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국민과 시민 둘 중 어느 자리에 서 있을까? 민주주의라는 도구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많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그 시민들의 힘을 합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끌어냈다. 하지만 <오래된 생각> 소설이 배경으로 하는 그 시절의 우리는 시민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래된 생각>을 읽고 있노라면 막연한 후회와 안타까움이 든다. 소설 속 임 대통령이 조금만 더 권력을 잡고, 조금만 더 강경하게 나갔다면 그는 다른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임진혁 시대에는 진정한 임진혁 시대가 안 올지도 몰라."라는 말이 있다. 딱 지금이 그랬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떤 시대가 될지 알 수 없다. 예정보다 일찍 찾아온 변화의 계기를 우리는 훌륭하게 맞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한 적폐 청산이 이루어져야 하고, 주권자로서 권리와 의무를 실천하는 시민이 많아야 한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역시 사람이니까.


 <오래된 생각>이라는 이 소설이 이른 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작은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책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과 일종의 사명감이다. 이 소설은 일찍 찾아온 봄을 섣부르게 즐거워하다 중요한 것을 놓쳐버릴 수 있는 우리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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