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장편 소설 28, 살고 싶다는 한 마디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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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사드 배치 갈등을 통해 다시 듣는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목소리


 우리는 불과 몇 년 전에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요!'이라며 비탄에 잠긴 목소리를 냈던 많은 사람이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는 사건을 겪었다. 사건 당시에 그들을 향한 구조의 손길은 충분히 닿을 수 있었지만, 당국의 무능한 태도는 그들에게 구조의 손길을 뻗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이 되게 했다.


 많은 사람이 비탄에 잠겼던 그 사건으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뛰어넘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고,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는 질책과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그런 몹쓸 소리마저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또 한 번 대량의 사람의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는, 단기적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절대 이롭지 않을 또 하나의 사건이 한국 사회에 터졌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 즉, 사드를 한국 경북 성주에 배치하려고 하는 사건이다.


 사드 배치가 정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통보되자 민심은 들끓어 올랐고, "살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다시 등장했다. 성주 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모여서 시위를 하고,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지난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시민에게 묵묵부답이다.


 심지어 대통령이라는 자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 비판을 감수하고 일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과연 이런 사람이 어찌 우리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정부는 사드 배치의 타당성을 주장하지만, 시민들은 그 효용성과 안전성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와 시민의 충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낮아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연일 북한을 끌어와 갖은 소동을 일으키고, 시민은 민생은 책임지지 않고 헛물만 들이켜는 정부에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모두 각자 살아남기 위해서 투쟁을 벌이는 모습은 끝없는 생존 경쟁을 보는 듯하다.


 만약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악재'인 사드가 아니라 지금 실질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볼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한다면 과연 한국은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일본처럼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거나 영화 <부산행>처럼 갑자기 알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나 사람을 습격하는 좀비에게 쫓기게 된다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장유정의 장편 소설 <28>을 통해 그 이상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살아남기 위한 잔혹한 생존 투쟁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책이 가진 무게에 나는 압도되어 숨소리를 죽이면서 이야기를 읽었는데, 인간과 인간의 대립과 인간과 동물의 대립이 놀라웠다.


 소설 <28>에서 등장하는 동물은 개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 중 하나인 개는 사람을 죽음에 퍼뜨리는 병이 개를 통해서 감염된다는 보건당국의 일방적인 발표가 있자마자 바로 살처분을 당하고, 사냥을 당하고, 버림을 받는다. 개들 또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기 시작한다.


 돌고 도는 그 상황 속에서 병이 빠르게 퍼져 나가는 도시에서 시민들은 투쟁을 계속한다. 하지만 정부는 거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전염병이 다른 지역으로 퍼질 것을 우려해 더욱 강하게 지역을 봉쇄한다. 군인들로 모든 곳을 막고, 뒤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폭력을 사용해 그들을 처분한다.




 당연히 그 상황 속에서 시민은 모두가 제정신으로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 거리에는 휴머니즘이 우스울 정도로 잔인한 범죄가 일어나고,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서 갖은 몸부림을 친다. 마치 그들은 인간을 포기한 동물과 같았으며, 인간성을 유지하는 인물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소설 속 주인공 재형은 살고자 발버둥을 친 게 아니라 한 번은 잃어버렸던 것을 또 잃어버리지 않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또 반복되는 상실의 고통 속에서 있는 힘껏 저항해보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그런 인간의 발버둥과 함께 또 볼 수 있는 것이 한 마리의 개들의 발버둥이다.


 <28>에는 스타와 링고 두 마리의 개에 집중적인 조명이 맞춰진다. 하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심리를 그리는 것은 스타와 링고 두 마리인데, 이 두 마리는 위험한 상황에서 계속 도망치면서 인간이 잃어버린 휴머니즘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이들의 모습은 너무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중 한 장면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트럭들이 먼저 떠났다. 이윽고 땅 파는 기계도 느릿느릿 벌판을 빠져나갔다. 발아래에선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개처럼 기어서 비탈을 내려갔다. 눈벌판을 가로질러 휘적휘적 걸어갔다. 얼마 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눈벌판에 남은 것은 구덩이 밑에서 울부짖는 개들뿐이었다. 링고는 암반에서 뛰어내렸다. 스타도 뒤따라 몸을 날렸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 의논할 필요는 없었다. 스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울부짖고 있다면 아직 살아있는 것이었다.

링고와 스타는 마주 서서 구덩이 한복판을 파기 시작했다. 기계로 다져놓은 땅은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아직 얼어붙지도 않았다. 흙보다는 쓰레기가 더 많았다. 다만 덮인 층이 너무 두꺼웠다. 파고 또 파도 개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숨넘어가는 비명이 발톱 바로 밑에서 울리건만, 저렇게도 고통스럽게 살아 울부짖건만. (p249)


 여기서 등장하는 링고와 스타라는 두 마리 개는 <28>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마지막까지도 극적인 상황을 맞이한다. 인간과 동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대와 갈등과 복수와 저항은 마치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몸부림은 너무 처절하게 그려져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과연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무너질 수 있고, 영화를 통해서 아름답게 그려지는 그러한 모습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 소설이 오히려 비인간적인 측면을 부추긴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 전부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경쟁과 차별이 강하게 퍼져나가 서로에게 병을 옮기고 있다. 경쟁과 차별 속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폭력은 사람의 신체와 마음을 병들게 한다. 곳곳에서 '살려달라'는 소리 없는 외마디 비명은 화려한 소음에 묻혀버릴 뿐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니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니, 심지어 보이는 곳에서도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생존을 두고 다투는 이 세상에 휴머니즘은 존재하는가?


 긴 침묵과 고민과 비장한 기분을 남긴 정유정의 장편 소설 <28>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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