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
- 문화/독서와 기록
- 2016. 7. 14. 07:30
오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게임을 하고, 사진을 찍고…
사람의 인생은 정해진 답이 없는 물음표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거기에는 항상 의문이 드는 일이 들기 마련이고, 막상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여기에 무슨 가치가 있지?'라는 질문을 맞닥뜨려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쓸데없는 고민 혹은 배부른 고민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고민을 할 바에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런 쓸데없는 고민이 몸이 고생하지 않고, 몸을 가만히 내버려두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일리 있는 말이다.
과거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플라톤과 몇 명의 철학자가 정치와 자아를 고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예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몸을 노동에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문제를 고민할 시간이 있었고, 그 많은 시간 동안 '왜?'라는 질문을 항상 던졌다.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고대 철학은 깊이를 더할 수 있었고, 이후 다양한 사상의 출발점이 되어서 유럽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동시에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동양에서도 유명한 공자와 노자 또한 배움과 질문에 더 깊은 뜻을 두면서 항상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에 고민하고, 답을 찾고자 했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멀쩡히 밥을 먹으면 되는 일을 두고 '나는 왜 밥을 먹어야 하는가? 나는 이 밥을 먹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내 삶의 가치를 고민해보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자조 섞인 한숨을 내실 때 그 의미를 찾으려고 해야 한다.
나는 다시금 슬럼프를 마주하고 있을 때, <완벽이란 놈에 발목 잡혀 한 걸음도 못 나갈 때>이라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최근에 난 열심히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치고 있는데, 그 발버둥이 인정받지 못하는 데다가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와 약속으로 적은 '오늘의 할 일' 또한 지키지 못했다.
사실 계획을 세우는 일은 '완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변명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게을러지려고 할 때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를 계획으로 만들어 놓고, 나태하게 시간을 보낼 때마다 '너는 지금 커다란 실수를 했어.'라고 자기반성을 하며 변명하지 않기 위해서 난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요새 며칠 동안 그 계획을 제대로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어떤 일은 분명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참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했기에 이 일 하나 똑바로 하지 않고, 나와의 약속을 어긴 채 시간을 허비했을까?
이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금 고민해보는 일이 많아졌다. 해야 할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 잘하려고 했던 내 의도와 달리 좋지 않은 결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을 때,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한데 의사전달이 똑바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요즘 꽤 힘들게 보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다시금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고민했고, 지금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도대체 뭘 멍청하게 보내고 있는지 자책했다. 다시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고 피아노를 더 배우는 일이 즐거웠지만, 어느 사이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과 떨어지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참, 바보 같은 일이다. 스스로 세운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고, 따분하게 여겨지는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고민하는 일은. 이를 슬럼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때때로 멈춰 서서 '오늘의 나'를 고민하는 일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데에서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완벽이란 놈에 발목 잡혀 한 걸음도 못 나갈 때>의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슬럼프. 사전에 따르면 그건 '뭔가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꽤 정확한 진단이다. 권태와 무기력함, 피곤함으로 짓눌린 마음이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으니까. 끝이 없는 깜깜한 터널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나를 내리누르던 권태가 씻은 듯 사라졌다. 슬럼프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터널은 어느 새 끝이 나고, 나는 다시 햇살 가득한 들판에 서 있었다.
대체 어떻게 거길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희한하게 세상도 그 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슬럼프가 지나갈 때마다 그동안 흘린 눈물과 아픔들이 내 안에서 빠져나갔다. 태풍이 왔다 간 자리처럼 내 안의 뭔가가 함께 휩쓸려 사라졌다. 그렇게 슬럼프를 몇 번 남기고 나니 처음만큼 힘들지 않았다. 지금은 막다른 길에 와 있는 것 같아도 이를 넘어서면 또 다른 길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으니…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 아픈 것도, 외로운 것도, 괴로운 것도 나쁘지가 않다. 결국 해는 다시 떠오를 테니까.
누구에게나 혼자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이 있다. 그걸 슬럼프든 우울이든, 뭐라 부르든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온통 시커먼 암흑의 시간이라는 거. 하지만 한밤중에도 태양은 있다.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본문131)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고, 괴로워하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고 싶은 것도 결국은 지나갈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고민을 쾌락으로 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욱 깊이 나를 들여다보며 나를 마주하는 바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모든 일이 틀어지지 않고, 완벽하게 보낼 수 있는 삶은 이런 고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벽이란 놈은 절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쉬는 것도 중요하다. 한번은 괴로운 고민을 '쓸데없는 고민'으로 치부하지 말고, 오늘 하루는 아파하더라도 다시 잊고 시작할 내일을 위해 투자하는 건 어떨까.
언젠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실수하고, 방황하고, 아파하고, 고민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사진을 찍고, 게임을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보낸다. 당신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 오늘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시간이 된다면, 답을 들려주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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