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음악가 히가시이 조가 말하는 창조성의 비밀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배경 음악을 담당한 히사이시 조가 말하는 창조성


 글을 쓰는 일은 늘 창조성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똑같은 기사를 읽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더라도 어떻게 편집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끌어당기는 글과 사람을 끌어당기지 못하는 글이 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어떻게 내가 획득한 정보를 적절히 편집해서 글을 적어야 할지 고민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꾸준히 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업에 지친 머리를 계속 돌리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하는 일은 예상외로 많은 피로를 호소한다. 매일 두 개의 블로그의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다 보면 금방 녹초가 되어버린다.


 나는 이렇게 작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을 고민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매번 시청률 경쟁을 걱정하면서 하나의 비즈니스로서 성공해야 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힘들까?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더라도 절대 쉽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것이다.


 이번에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히사이시 조는 일본에서 상당히 유명한 영화 음악가인데,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미아쟈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등의 작품의 음악을 탄생시킨 인물이다.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왠지 '감성'을 중요하게 말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반적으로 창조성을 중요하게 말하는 작가는 분석하기보다 일단 직접 느끼면서 자신이 느끼는 감성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그의 음악 또한 그런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히사이시 감독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창작은 감성이다."

이렇게 단언하는 편이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폼은 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독자적인 감각만으로 제로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막연한 감성만으로 창작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곡을 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와 감각적 번뜩임이 모두 필요하다. 논리적 사고의 근간이 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지식이나 체험 등의 축적이다.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체험해서 내 피와 살을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 논리성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시실 감성의 95퍼센트는 것이 아닐까? (본문 33)


 창작은 확실히 감성이지만, 그 감성은 그동안 쌓은 논리적 사고의 근간이 되는 내 안에 있는 지식이나 체험이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확실히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모든 감각적 번뜩임은 우리가 어떤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에 문득 떠오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글을 쓰는 데에 전혀 흥미가 없다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글의 소재를 발견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일상 속에서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 특강을 통해서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 책을 통해 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재를 발견해서 글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니까.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소재를 발견해 글로 옮기기 위해선 언제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을 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컵을 보고 모두가 "이것은 컵입니다."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꽃병입니다."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똑같은 풍경도 우리는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노지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를 통해서 그가 어떻게 직감이 아이디어를 낳고 그것이 다시 다른 기회와 이어지는 등 좋은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모습을 읽어볼 수 있었다. 특히 직접 피아노 연주도 하고, 오케스트라 지휘도 하는 그가 오케스트라를 통해 말하는 삶의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일류 오케스트라는 실수를 눈에 띄게 하지 않는다. 실수를 저질러도 그것을 질질 끄는 일이 없다. 더구나 음악을 망가뜨릴 만큼 치명적인 실수는 저지르지 않는다. 실수를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일단 인정하고, 즉시 마음을 추스른다. 나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이까짓 실수로 내 음악은 엉망이 되지 않는다'라는 신념과 자신감으로 내 마음을 부추긴다. (본문 75)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실수는 번번이 나오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무수히 많다. 이미 있는 단편적인 정보를 편집하고, 나의 시선으로 재해석해서 글을 쓰는 일도 이렇게 어려운데, 시나리오와 화면을 통해 음악을 무에서 창조하는 일은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책을 통해서 그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마주하며 단순히 훌륭한 악보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전형적인 패턴을 벗어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읽어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는 일본 사회의 일부분을 비판하기도 한다.


자극적인 광고로 유명한 베네통에서 몇 년 전에 내놓은 광고 중에 일본 소녀들을 모델로 사용한 포스터가 있다. 루즈삭스를 신은 소녀들의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표정 없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어쩌면 그 광고는 유럽에서만 나오고, 일본에서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아무런 표정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른들이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해주어야 할 것은 '느끼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쑥스러움으로 인해 '느끼는 마음'을 감추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인을 보고 있으면 청소년들뿐 아니라 젊은이들까지 표정을 잃어버린 것처럼 여겨져서 견딜 수 없다. 느끼는 마음이 둔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청소년들이 범죄를 일으키면 "게임 때문에 그렇다" "만화가 원흉이다"라고 입에 침을 튀기며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똑같은 것을 보아도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어떤 게기로 인해 마음에 자물쇠를 채운 사람, 일반적인 감각이 마비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느끼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이 문제의 원인은 어른들에게 있다. 고도성장 속에서 선생을 포함한 부모세대가 물질에 대한 숭배나 자기 위주의 가치관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본문 178)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한국 또한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결과 지상주의로 몰고 가는 경쟁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기는 일보다 정답을 선택하는 일 하나만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그 부작용이 우리 사회 전반부에 걸쳐서 폭력과 혐오로 나타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창조성이 필요한 과학자를 꿈꾸는 소년에게 "창조 혁신 센터에 가보라."고 말할 정도이니 이미 나라의 수준이 어느 수준인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과연 앞으로 창조적인 인재를 더욱 길러낼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아직도 문제의 근본은 모르고 있으니….


 음악 감독 히사이시 조의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전형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지, 그가 어떤 철학과 자세를 가졌는지 읽을 수 있었다. 아마 한국 사람도 나처럼 공감하며 얻을 수 있는 게 많을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책에서 읽은 한 글을 남긴다. 정신력을 말하는 부분에서 '노오오오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조금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부분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좋은 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흡수한다는 말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식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나를 위해, 또한 조금이라도 좋은 곡을 쓰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싶다."

(본문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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