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주의 강연, 온기 품은 전문가가 세상을 바꾼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6. 3. 21. 07:30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정직성, 그리고 따뜻한 온도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항상 '남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부모님과 선생님, 주변 어른에게 들으면서 자랐다. 경쟁과 비교는 우리 사회에서 각자 성공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동기부여를 위한 방법이 되었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보다 일단 자신을 먼저 챙기는 것이 최선이 되었다.
성공에 큰 욕심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영재로 만들기 위해서 갖은 수를 다 쓴다. 어릴 때의 교육이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국제 중학교와 국제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있는 돈 없는 돈을 투자하고, 좋은 대학을 위해 몇 번이나 재수를 시킨다.
과연 이런 행동이 좋은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런 행동은 열정을 품은 노력이라고 말하기보다 욕심에 대한 과잉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 걸어가는 과정은 사람의 인간성을 파괴한다.
얼마 전에 읽은 <그의 세컨드 라이프>의 '숨을 멈춰봐'이라는 단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세 판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더없이 신경질적으로 굴어. 카드가 줄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는 아이, 이겨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 아이, 기껏 이겨놓고도 패자의 우울을 받아줄 아량이 없어서 짜증을 내는 아이. 정말 짜증은 수완이네 반 아이들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거야. 물론 그들은 또 다른 공통점도 갖고 있지. 모두 조기교육을 받느라 아이답게 실컷 놀아보지 못했다는 것. 그뿐인가, 한국인 담임 밑에서 한국 교과를, 캐나다인 담임 밑에서 미국 교과를 배우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두 번씩 치르고, 그 결과에 따라 A반과 B반으로 나뉘어야만 하는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지. 제 성적의 결과에 따라 널을 뛰는 엄마들의 감정을 감당해온 저들에겐 서로 줄기차게 상처를 주고받아온 사람들의 원한 같은 것이 있어. (본문 176)
남의 이야기, 소설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진실이다. 어릴 때부터 성공을 위한 집착은 결코 따뜻한 인간성을 낳을 수가 없다.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곪아버린 마음은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가 없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지난주(16일)에 비주얼 머천 다이저 이랑주 대표의 강연이 있었다. '비주얼 머천 다이저'이라는 직업이 상당히 낯선데, 이 작업은 상품 진열을 연출하는 사람을 뜻한다. 평소 우리가 마트와 시장, 그리고 각종 다양한 가게에서 보는 상품을 소비자를 공략하며 진열하는 것이다.
똑같은 가게라도 진열된 상태에 따라서 확 느낌이 다르게 와 닿는데, 단순히 상품의 진열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매출이 크게 달라진다. 대형 마트가 소비자들의 이동 동선을 철저히 파악하여 물건을 배열하고,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더 상품을 볼 수 있도록 배치하는 일이 그런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 과거 소비 심리학 도서를 즐겨 읽어본 사람은 대충 어떤 심리를 자극하여 소비자의 소비 욕구가 발생하도록 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랑주 대표가 들려준 강연의 내용에서 그녀가 재배열하여 가게의 수익을 200% 향상하거나 이를 위해 갖은 노력을 한 사연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이랑주 대표의 저서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는 이렇게 변화를 통해서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평소 자신이 해온 습관과 규칙을 버리고 새롭게 재배열하는 일은 굉장히 쉬워보이지만, 고정관념과 편견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어떤 분야에서 30년 동안 일해온 사람에게 "그건 잘못됐어요. 이렇게 하시면 더 큰 이익이 납니다."이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의견이 바로 수긍 받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30년이면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기에 소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자신도 스스로 자신 있어 하는 분야에서 누가 지적하면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내가 더 잘 알거든?'이라며 조금 삐딱하게 받아들인다. 그만큼 우리가 변화를 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자리 잡은 좋은 학벌이 성공의 기초라는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대학교에서 들은 이랑주 대표의 강연은 상당히 인상 깊었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우리의 삶과 사회에 적용하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각도를 조금 다르게 하는 것으로 크게 달라질 수 있어도 우리는 쉽게 각도를 틀지 못한다. 왠지 모난 돌이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이 대표는 이렇게 작은 변화를 통해서 바뀔 수 있었던 사례와 함께 자신이 걸어온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강연 중에 보여준 핀란드의 한 사례에서 '우리는 옆집과 경쟁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자신의 정직함과 경쟁한다.'는 말은 대단히 인상 깊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말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경쟁은 언제나 내 옆 사람과 대결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보다는 조금 더 잘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하고, 허세를 부리고, 갖은 시장에서는 사기와 꼼수가 판을 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정직함과 경쟁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기업은 몇 개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쟁은 점점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 이 대표는 강연의 마지막에 진심으로 감동을 주는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라고 말했고, 온기를 품은 전문가가 가치를 바꿀 수 있는 '기능인'과 다른 존재라고 말했다.
과연 우리가 지금 대학에 다니면서, 학원에 다니면서, 조기교육을 하면서 만드는 인재는 온기를 품은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어떤 작업에 익숙한 기능인이 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걸까? 이랑주 대표의 강연은 그녀의 도전에 감탄하면서도 이런 씁쓸한 질문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생각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 또한 우리가 변화를 위해서 필요한 각도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성공 중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감탄이 나오는 이야기에 '감명 깊었다. 대단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변할 수 없다. 좀 더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보이는 게 있으니까.
그러니 한 번 스스로 질문해보자. 지금 내가 걷는 길이 인간성을 포기하고 수동적으로 나아가는 길인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온기를 품은 길인지. 아직 답이 확실하게 나오지 않더라도 이 질문은 언젠가 우리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는 소득불균형이 아시아 최고인 나라인 헬 조선에서 사는 소시민이고, 이런 질문과 눈앞에 놓인 선택지 사이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먹고살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생존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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