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캘리그라퍼 이상현, "글씨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6. 4. 5. 07:30
국내 최초 캘리그라퍼 이상현 선생님의 강연을 듣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캘리그라피, 색칠하기 같은 다양한 힐링 아이템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언제나 바쁘게 살아가야 하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득보다 빚이 더 빠르게 늘어가는 사회에서 마음을 치유하고자 그 같은 단순한 일을 한다.
사람의 마음이 복잡할 때는 쉽게 몰입할 수 있고, 작은 성취를 느낄 수 있는 단순한 일이 최고다. 그런 부분에서 손으로 글씨를 쓰는 캘리그라피, 어릴 적에 색칠 공부를 했던 것처럼 어떤 그림에 색칠을 하는 일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큰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결과물을 보며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바쁜 시간 와중에도 편안하게 마음을 갖고자 하는 방법은 다양해졌다. 그중 최근에 한참 인기를 얻은 아이템이 필사하는 행동이다. 책에서 읽은 좋은 글, 마음에 와 닿는 글을 노트에 옮겨 적거나 캘라그라피를 이용해서 자신만의 글씨로 따라 적는 것으로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이다.
직접 손으로 써보는 글은 참 놀랍다. 요즘처럼 펜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스마트폰 자판을 터치하거나 데스크톱 컴퓨터의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것과 다르다. 손으로 직접 글을 한번 써보는 일로 우리는 쉽게 마음을 정리할 수도 있고, 그동안 듣지 못한 새소리도 들으며 편안한 기분이 될 수 있다.
오늘은 이렇게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한 작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분의 성함은 '이상현'으로, 한국 최초로 캘리그라피이라는 예술을 각 분야에 소개하신 분이다. 이상현 선생님의 강연을 통해서 어떻게 캘라그라피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들을 수 있었다.
캘리그라퍼 이상현, ⓒ쇼엔터테인먼트
이상현 선생님의 첫 출발점은 서예였다. 서예가로 살기 위해서 꾸준히 길을 걸어오다가 서예를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디자인 장르에 서예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 캘리그라피의 출발점이었다. 처음에는 서예에 가진 사람들의 선입관 때문에 힘들었지만, 곳곳에 문을 두드리며 다녔다고 한다.
제일 먼저 문이 열린 곳이 우리에게 신라면의 제조사로 익숙한 농심이다. 그곳의 이사가 선생님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몇 가지 일을 도울 수 있게 되었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간 선생님의 시안이 농심 사장님의 선택을 받게 되어 처음으로 선생님의 글씨가 디자인으로 선택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대기업 한곳에서 이런 사례가 생기자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왔고, 선생님이 꾸준히 캘리그라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은 동양과 서양이 글씨에 접근하는 방법에서 서양은 '펜으로 하는 기록 문화'라고 한다면, 동양은 '기록 이상의 감성을 담을 수 있는 문화'라고 말씀해주셨다.
서양은 획일적인 펜으로 일정한 선을 긋거나 글을 쓰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동양에서 사용한 다양한 굵기와 형태의 붓은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닌,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과 글을 함께 표현해서 예술로 다가갈 수 있었다. 즉, 동양의 글이라 불리는 서예는 작기의 정신이자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예를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 그것이 '캘리그라피(calliygrahy)'다. 참, 놀랍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동양에서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과정으로 서예를 하고, 동양 미술의 출발점이 되고는 했었다. 지금 우리 시대에서는 다양한 색깔과 미술과 감성적 디자인이 섞여 다채로운 퍼포먼스가 되고 있다.
ⓒ 한국 캘리그라퍼 이상현 홈페이지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상현 선생님의 퍼포먼스와 작품 중 일부다. 우리가 익히 아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로고도 선생님이 직접 하셨고, 아리랑을 비롯한 한글을 이미지로 세계에 알리는 다양한 기획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정말 글 하나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많은 것 같다.
사람의 얼굴은 사십 대가 되면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글씨는 어떨까? 요즘처럼 글을 쓰는 일이 익숙지 않은 현대인의 손으로 쓴 글을 보면, 과거 열심히 샤프심을 갈면서 혹은 연필을 깎으면서 또박또박 쓰려고 했던 글과 너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꼭 글씨를 또박또박하게 잘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기에 우리는 글씨에도 나름의 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이 살면서 생각한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한다면, 글은 그 사람이 살면서 가진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니까.
이상현 선생님은 강연을 마치면서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다.
"글씨는 마음입니다. 말을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무섭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은 기록으로 영원히 남기 때문에 더 무섭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좀 더 책임감을 느끼고, 진심으로 써야 합니다.
봄날은 간다는 말이 있는데, 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입니다.
봄, 좋은 생각, 이상적인 생각을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함부로 하면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하지만, 글은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다. 과거 조선 시대 왕들이 정사에 조심하려 했던 이유는 왕의 행적을 기록하는 사관 때문이었다.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조차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역사"라고 했다고 한다.
글은 우리의 마음을 나타내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멋진 예술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쓴 감사 편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연애편지, 잘못해서 쓴 반성문 같은 글조차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면 아련한 추억이자 그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예술이 된다. 새삼 글씨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선물 받은 글씨, ⓒ노지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내 블로그 이름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가 적힌 글은 이상현 선생님께서 직접 적어주신 글이다. 강연 마지막에 "이것도 엄청난 인연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글씨 한 개만 적어주실 수 있으신가요?"이라고 질문을 했고, 이후 명함을 드리면서 멋진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쁘신 일정 중에 거절할 수도 있으셨을 텐데, 이렇게 멋진 글을 적어서 보내주셨다. 나는 글을 집에서 모니터의 큰 화면으로 보면서 "와! 신기하게도 블로그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려! 역시 대단하신 분이다."이라며 감탄하며, 두 개의 글 중 하나를 오려서 바로 블로그 프로필 이미지로 적용했다.
(슬라이드 이미지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가로 폭을 좁히니 느낌이 확 변해버려 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글씨 덕분에 단순했던 블로그 프로필 이미지가 최고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나처럼 이렇게 멋진 행운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얼마 전에 읽은 책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의 저자처럼, 진심을 담아 과감히 부탁을 했던 것이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한번 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선생님이 적어주신 글은 이렇게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계속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할 생각이다. 이 글 이상으로 더 멋지게 내 블로그를 표현하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글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씨는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글씨이니까.
이상현 선생님의 강연 내용 중에도 작가는 자존심이 있어야 하고, 배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렇게 선생님에게 과감히 말을 여쭙고, 연락처를 등록하며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청하는 것 또한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의 배포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멋진 분을 알게 되었고, 멋진 글도 받을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매일 블로그에 적는 이 글들이 이상현 선생님의 글씨처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의 "글씨는 마음이다."이라는 말씀처럼, 나 또한 글은 내 마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진실하게 적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을 다시금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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