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쓸쓸함 죽음, 헬조선이 낳은 끔찍한 재해
- 시사/사회와 정치
- 2015. 12. 21. 07:30
저는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20대 청년으로 오늘을 고민합니다.
'고독사'라는 단어는 홀로 남겨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대상으로만 사용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자식들을 다 키워서 밖으로 내보낸 이후,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어떤 도움도 제때 받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망하는 사건을 일컬어 우리는 '고독사'라는 단어를 붙였다.
현재 급속히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 사회에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있었다는 고독사가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도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노인분들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 혹은 봉사자의 도움을 얻어 예방하고 있다.
한국도 홀로 사는 노인분들을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를 도입하여 이런 고독사를 막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고독사'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죽음은 홀로 남겨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단칸방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이런 쓸쓸한 죽음이 노년층이 아니라 우리 20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한 20대가 밀린 월세를 받으러 온 주인에 의해서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나는 '정말 우리 청년 세대가 먹고살기 힘들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20대 고독사, ⓒJTBC 뉴스룸
그녀는 지방에서 홀로 서울에 올라와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장애인 아동을 돕는 일을 했지만, 점점 일이 줄어들면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부검을 통해 발견되어야 하겠지만, 20대의 고독사는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보여주는 예 중 하나다.
우리 20대는 기성세대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는데, 그런 기대는 상당히 무거운 짐이다. '요즘 시대에 대학 안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우니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공부를 해서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무거운 짐이다.
부모님께 생활이 어렵다면서 손을 빌리지 못했을 20대 여성의 고독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현재 많은 청년이 빚을 등에 짊어진 채,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정규직의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자리에서 일하면서 오늘을 버티고자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어느 정치인은 우리 20대가 패배주의에 젖어있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하는데, 정말 우리 20대가 패기가 없기 때문에 이런 걸까? 우리 20대가 붙인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역사 교과서의 잘못된 좌편향 교육이 낳은, 우리 20대의 패배주의가 만든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위 '수저 사회'로 불리는 우리 한국 사회는 솔직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한, 먹고 사는 일이 무척 힘들다. 한차례 뉴스를 통해 보도된 서울대 학생의 자살과 그 학생이 쓴 유서에는 수저 색깔론은 지금 우리 20대가 느끼는 불안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대생 투신, ⓒJTBC
20대 고시생의 고독사, 20대 서울대생의 자살. 20대의 이런 쓸쓸한 죽음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세상을 강하게 살지 못한 개인을 탓하기에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다. 그렇다고 마냥 사회와 정치가 문제라며 비판하기에 우리는 너무 부끄럽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걸까?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표백 세대'의 등장이다.
이 세대에게는 실질적으로 어떤 사상도 완전히 새롭지 않으며, 사회가 부모나 교사를 통해 전달하는 지배 사상에 의문을 갖거나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런 시도는 기껏 잘돼봤자 기존 지배 사상이 얼마나 심오하고 빈틈없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효과만 낳는다.
이들에게 지배 사상은 큰 틀에서 항상 옳으며,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개인마다 과정의 깊이가 다를 수는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 같다. 이들은 지배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따라서 실제 삶에서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인이나 작은 이익집단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되며, 세계는 사상적으로 완전무결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표백 과정이다. 아무도 더 나은 시스템을 떠올리지 못한다. 거대한 흰색 세계는 모든 빛을 흡수하며 무결점 상태를 유지한다. (표백_ 본문 192)
윗글은 소설가 장강명의 <표백>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이다. 나는 오늘을 사는 우리 20대가 이런 표백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에 어떤 새로운 담론도, 가치관도 제시할 수가 없다. 무조건 우리는 기성세대가 정한 룰에 따를 것을 강요받고, 힘들어도 버틸 것을 강요받는다.
웃긴 일은 그런 힘든 일을 강요하는 어른들은 한결같이 '우리도 먹고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봐라.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과 지금 시절은 다르다. 그 시절에는 확실히 도전하면 얻을 기회가 있었고, 실패하더라도 급속도의 산업화와 붐으로 다시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한두 번의 실패는 마치 '너는 쓰레기다.'고 말하는 것 같은 대우를 받는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한 번의 실패를 해서도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머리 깊숙이 새겨진 우리 20대는 모두 한결같이 실패 확률이 더 적은 직업을 위해 아등바등한다. 정신이 무너지지 않는 건 어려운 일이다.
|
나와 같은 20대 두 사람의 사연을 들으며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과연 앞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 버틸 수 있을지, 지금은 편견에 맞서 전업 블로거를 지향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말하지만, 정말로 내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그렇게 욕심은 없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때때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때때로 문화 행사를 즐기고, 때때로 NC 다이노스 야구를 보면서 '오늘도 이겼어' 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충분하다.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해가 되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런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것도 사치에 가깝다. 아마 위와 같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을 말한다면, 주변에서 코웃음 치며 '너 금수저냐? 금수저라면 몰라도 흙수저인 우리는 그렇게 살기 어려워'라며 정신 차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100% 그럴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를 놓고 벌이는 시합에서도 표백 세대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완성된 사회는 가능성이 그만큼 고갈된 사회이기 때문에, 부를 창출하는 능력에서도 성숙한 단계에 있다. 닷컴 열풍, 부동산 시장 활황과 같은 국지적인 성작은 때때로 가능하지만 산업화 초.중반에 볼 수 있었던 '경제 전반에 걸친 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완성된 사회의 경제성장률은 이론적으로 0퍼센트에 가까워야 한다.
즉 표백 세대들은 아주 적은 양의 부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 세대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경쟁을 치러야 하며, 그들에게 열린 가능성은 사회가 완성되기 전 패기 있는 구성원들이 기대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가장 똑똑하다는 젊은이들조차 엘리트 조직의 끄트머리가 되기 위해 몇 년을 골방에 처박혀야 하고, 그런 노력이 결실을 얻은 뒤에도 조직의 말단에서 다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표백 세대는 같은 세대뿐 아니라 이미 사회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들과도 경쟁해야 한느데, 사회 각 분야가 고도로 발전해 있고 표백 세재들이 가진 자원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불리한 게임이다. 분배 방식이라는 게임의 규칙조차 기성세대가 정한 것을 따라야 한다. (표백_ 본문 196)
이런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느냐'는 기성세대의 질책에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기성세대 또한 자랑할 것이 없는 부끄러운 오늘을 외면하며 살고 있으니까. 20대의 쓸쓸한 죽음은 헬조선이 낳은 끔찍한 재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잘살아 보세!' 같은 말이 아니라 '죽지 않으면 다행이다.'이라는 쓰디쓴 말을 상처투성이 가슴에 새긴 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 20대 청년 세대가 그러하며, 나를 질책하는 기성세대 또한 그러하고, 오지 않을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10대 또한 그러하다. 당신은 무엇을 품고, 무엇을 보는가.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