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를 잊어버리는 일
- 문화/독서와 기록
- 2015. 11. 6. 07:30
[도서 서평]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여행을 떠나고 싶다. 가을 단풍이 절정에 달한 지금 이 시기에 나는 유독 그런 감정을 강하게 느낀다.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유럽 도시의 풍경을 보고 싶고, 아직 내가 보지 못한 계절이 다른 일본의 풍경이 보고 싶다. 가을의 단풍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여행은 그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여행은 누구나 가슴 속에 묻고 있는 꿈이다. 하지만 부끄러운 꿈이기도 하다.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 곧장 떠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면, 우리는 '네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이라는 핀잔을 들으며 '그러니까.'라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으니까.
적금을 해제하고, 가진 물품을 처분해서 유럽 혹은 일본으로 가는 최저가 항공의 비행기 값을 예약할 수 있다고 치자. 만약 우리 중에 몇 명이 과감히 지금 가진 것을 다 처분하고, 다짜고짜 여행을 떠나려고 할까? 아마 정말 간절히 여행을 떠나고 싶거나 용기가 있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다. 모으고 있는 적금을 해제하면, 곧장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다. (운 좋으면 유럽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후일이 걱정되어 막상 떠나려고 하니 '나는 도대체 왜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정말 가고 싶어?'라는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노지
알라딘 신간 평가단 활동으로 읽은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여행기의 저자는 그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우연히 만난 하나의 욕망을 채우고자 무턱대고 몽골의 알타이로 여행을 떠났다. 알타이의 갈잔은 저자에게 '당신은 여기를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했으니 오죽했을까.
저자가 알타이로 여행을 떠난 이유는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하고, 특이하다고 하면 특이하다. 책의 저자는 '갈잔 치낙'의 소설 '귀향'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읽은 후에 스스로 이유를 잘 알지도 못한 채 갈잔 치낙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 일을 처리하고, 떠난 것이었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에서는 그렇게 무작정 알타이로 떠난 그녀가 여행 과정에서 느낀, 그리고 생활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평범한 여행기다. 하지만 이유가 특이했고, 한 번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몽골이라는 나라에 속한 알타이의 풍경은 저자의 눈과 귀를 통해 신비롭게 느껴졌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생각한 것은 오직 하나다. 과연 나는 <처음 보는 유목민>의 저자처럼 막연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 에펠탑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어 파리로 떠날 수 있을까, 도쿄 아키하바라의 메이드 카페에 가고 싶어 일본으로 떠날 수 있을까.
에펠탑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나는 높은 확률로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바보 같은 이유를 핑계 삼아 과감히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나는 갖고 있지 않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통해서 보는 유럽의 풍경은 나에게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하지만, 나는 그 손에 '그래!' 대답하며 짐을 쌀 용기가 없다.
언제나 나는 나약한 변명을 하면서 '운이 좋지 않아. 언젠가 떠날 수 있을 거야.'는 위로를 스스로 건넬 뿐이다. 통장 잔고에는 십만 원이 채 들어있지 않고, 글을 통해 조금씩 들어오는 돈은 달을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가장 배우고 싶은 피아노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래서 나는 여행자가 되지 못한다. 도전자가 되지 못한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를 잊어버리는 일임에도, 나는 나를 잊어버리는 용기를 갖지 못한다. 겁 많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문을 잠근 채, 불이 꺼진 방 한구석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뿐이다.
여행은 스스로 내가 모르는 장소에,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나를 드러내 나를 잊어버리는 하나의 방법이다. 여행을 선택하지 못하기에 나는 스스로 고독한 공간에 나를 집어넣고, 스스로 혼자가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그러하며,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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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 <유목민의 여인>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오스트리아 관광객은 다음날 이른 아침에 지프를 타고 뽀얀 먼지와 함께 사라졌는데, 그들은 울란바토르에 폭우가 내려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남기고 갔다. 그제야 나는 내가 이미 일주일 이상이나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지 않고 살았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이 도대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사실상 알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그건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 (본문 139)
여행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까닭일 것이다. 관광과 다른 여행. 우리는 제각기 다른 인생에서 모두 고독한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러나 그 여행은 너무 평범해서 우리는 새로운 일탈을 꿈꾼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하는 곳에 가려고 한다.
여행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자리 잡고 있는 꿈이다. 나는 이 꿈을 실천하지 못한다.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쉬고, 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상상할 뿐이다. 세상에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용기 있는 자다. 오늘따라 유독 나는 그런 용기가 부럽게 느껴진다.
비록 에펠탑을 보기 위해 파리로 떠나지 못하고, 아키하바라에 있는 메이드 카페를 체험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지 못하지만, 오늘 나는 여기서 여행을 떠난다. 살며시 눈을 감고, 생각을 멈추고, 잠시 내 몸속,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낡은 문을 열어본다. 나를 잊어버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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