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펼친 방구석 라디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5. 10. 16. 07:30
방구석 라디오, 내 마음의 방구석 차가움을 데워줄 따스한 책
10월 중순에 접어들자 가을은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자전거를 타다 신호를 기다릴 때 올려다보는 푸른 가을 하늘은 아무리 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거리에 심어진 은행나무는 하나둘 노란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지금은 가을입니다.'이라는 선전을 하는 듯하다. 그래, 이제 정말 가을이다.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로 손꼽힌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책 한 권을 손수 읽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 가십거리를 읽는 데에 치중하고 있어 '가을이 되었어도 책을 읽는 사람은 볼 수 없다.'는 느낌이다. 아마 나의 주변만 아니라 당신의 주변에서 보이는 사람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스마트폰에 너무 익숙해진 세대는 긴 글을 읽어야 하는 책이 너무 낯설다. 입시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던 때에도 짧게 요약이 된 요약 핵심 노트를 구매해서 읽었고, 스마트폰 세대가 된 이후에 점점 더 짧은 글 혹은 동영상만 본 탓에 책이 주는 여유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책은 낯설다.
그래도 카카오 스토리와 페이스북 등으로 공유되는 책 속의 짧은 한 줄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는데, 이 부분을 보면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아예 두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사람들은 두꺼운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방구석 라디오, ⓒ노지
오늘은 그런 사람을 위해서 <방구석 라디오>이라는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며칠 전에 소개한 <곁에 두고 읽는 장자>처럼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잠깐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단, 앞서 소개한 <곁에 두고 읽는 장자>와 달리 좀 더 짧은 호흡으로 긴 여백을 가지고 있는 게 차이점이다.
요즘 우리 도서 시장에서는 짧은 글, 즉, 에세이를 엮은 책이 많이 발매되고 있다. 긴 글을 읽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는 현대인의 수요를 맞추기 위한 마케팅이지만, 언제나 '빨리빨리'만 찾는 우리에게 짧은 글과 많은 여백을 통해 책이라도 천천히 읽으면서 여유를 느껴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방구석 라디오>는 책을 읽는 동안 정말 편했다. 책에서 읽는 작가의 글은 때때로 어릴 적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기도 했고, 언제나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젖기도 했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슬며시 웃음을 지을 수 있기도 했다.
혼잣말
어머니는 유독 혼잣말을 자주 하신다.
내가 집에서 쉬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머니의 이런저런 혼잣말이 집안 곳곳에서 들려온다.
처음에 그러려니 했고
어쩔 때는 대답을 해 드리기도 했는데
답을 하기 애매한 말들도 있었다.
말이라는 것을 혼자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도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혼잣말을 하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할 때가 생겼다.
우울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 누군가가 없을 때,
누군가가 있지만 의사소통을 하고 있지 않을 때,
나는 무심결에 허공에다 이런저런 말들을 건넨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그저 제 자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본문 148)
이런 짧은 글과 함께 일러스트가 있어서 좀 더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더 감정이 흔들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윗글을 처음 책에서 읽었을 때, 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잠깐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침묵해야 했다.
나는 주말에도 항상 내가 세운 계획의 실천이 먼저라 어머니와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다. 언제나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온라인 게임을 하고, 정해진 시간(내가 개인적으로 정한 주말 3시간) 동안 피아노 연습을 한다. 그리고 오후 12시, 6시가 되면 함께 밥을 먹는 게 전부이다.
아마 그 탓에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이것 좀 봐라.'면서 말을 건네시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그 말에 반응이 없으면, 바로 근처에서 사는 막내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서 "뭐하노? 할 것 없으면 산이나 가자."고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 참, 나는 역시 착한 자식은 되지 못한 것 같다.
나 또한 혼자 있을 때 종종 혼잣말을 할 때가 많다. 괜히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다가 보이는 새들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집에서는 혼자 자문자답을 할 때도 있다. 우스운 일이지만, 나의 이런 모습을 나는 가슴 한편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혹시 어머니도 나와 똑같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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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디오 세대가 아니라서 라디오에 귀 기울였던 세대의 감정을 잘 모른다. 하지만 <방구석 라디오>를 내 방에 홀로 앉아 읽고 있으면, 혼자 방구석에서 라디오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이런 게 아니었나 싶다. 깊어지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읽는 책은, 참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문학청년이다. (웃음)
<방구석 라디오>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 구석에 숨어있는 작은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긴 글을 통해서 점점 책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짧은 글과 일러스트는 숨 가쁜 현실을 보낸 나를 토닥여 주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짙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쓸쓸하다고 치킨을 시켜 맥주를 찾는 것보다 <방구석 라디오>을 권하고 싶다. 따스한 온기를 머금은 짧은 글과 일러스트를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방구석에 홀로 앉아 보낼 시간을 좀 더 색채가 느껴지는 시간으로 바꿔줄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읽은 한 글을 남긴다.
상처받은 내 마음에게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서
잘못이 없는데도 '앞으로 잘할게'라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해서 인연을 이어가려고 해도,
상대에게 실수하지 않고 인정받으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인연이다.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인연을 억지로 이어나가기엔
우리 존재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대신에
상처받은 내 마음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본문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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