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코타로의 장편 소설, 남은 날은 전부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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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의 작품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매력이 있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가 소설을 구성하는 방식에 즐거운 웃음을 짓곤 한다. 그의 소설은 항상 사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이 아니라 다른 사건을 뒤섞어놓고, 마지막에 원점으로 돌아오는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여러 생각과 상상을 하며 읽게 된다.


 이번에 읽은 그의 또 다른 장편 소설 <남은 날은 전부 휴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서 읽은 첫 번째 이야기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서는 미조구치와 오카다의 인물이 소개되고, 그와 전혀 관련이 없는 가족이 소개되면서 오카다와 그 가족이 만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 짧은 결말을 보여주고, 두 번째 이야기 '어른의 성가신 오지랖'에서는 오카다가 또 전혀 모르는 한 소년을 만나서 그가 겪는 가정 폭력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야기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오카다의 성향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통해서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고, 그 인물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서 크고 작은 힌트를 하나둘 집어넣은 후, 마지막 사건을 독자가 읽을 때 '이게 이렇게 사용된 거야?'이라는 놀라움과 함께 반전의 재미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 ⓒ노지


 이번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서 읽은 마지막 이야기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숨겨 놓은 힌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다시 또 놀라고 말았다. 특히 마지막 결말은 다 보여주지 않았기에 결과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마 평소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즐겨 읽거나 추리 소설의 반전을 즐겁게 읽는 사람은 이번 <남은 날은 전부 휴가>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책의 주요 내용과 상관없이 '음, 이 말은 나중에 사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는데, 아래가 그중 하나다.


문제아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사실 나는 잘 모른다.

'문제'아가 있으면 '대답'아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닐까, 오카다 군이 문제를 내면 다른 누군가 대답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발상이나 떠오른 정도다. (본문 154)


 '문제아'라는 단어를 가지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발상이 신선했다. 확실히 우리는 문제아를 모범생의 반대말로 사용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문제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이가 아닌가. 아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선생님이 있는 건데, 우리는 잘못 접근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문제아를 함부로 규정짓고, 문제아는 '문제'라고 낙인만 찍는다. 우리는 문제아가 가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경멸하며 비판할 뿐이다. 문제아가 말하는 '문제'가 사실은 우리가 놓친 잘못을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 고개를 돌리는 것일까?


"유미코 선생님 경우는 그 왜, 예를 들어 누가 먹이를 깜빡해서 금붕어를 죽게 만들었다고 쳐봐."

"예를 들어 말이지."

"그럼 유미코 선생님은 먹이를 깜빡한 건 화내지만 그 애를 경멸하진 않아."

"무슨 뜻이야?"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오카다 군은 퉁명스럽다. "우리 엄마의 경우는 반대야. 실수를 하면 실수한 내용이 아니라, 실수한 나를 경멸해."

경멸이라는 단어가 또 어른스럽게 들렸다. 경멸하고 경멸달하는 경험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경험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나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그거네" 하고 말하자 오카다 군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어, 좋은 말 했네. 그건지도 모르겠다. 유미코 선생님은 그거야."

아닌 게 아니라 유미코 선생님은 우리를 혼낼 때 우리한테가 아니라 우리가 한 짓에 실망해서 화를 낸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다음부터는 잘하자고 생각한다.

"유미코 선생님은 나한테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고 말해주잖아. 그건 말이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야무지게 하면 괜찮아, 하고 내 힘을 믿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굉장히 기뻐. 우리 엄마의 경우는 반대야. 나를 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그럴 리가."

"그래서 그런지 우리 엄마는 유미코 선생님을 싫어해." (본문 172)


 내가 이 부분에 파란색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이유는 이 내용이 상당히 교육적인 내용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항상 블로그에 교육과 우리 사회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결해서 글을 발행하는데, 유미코 선생님의 태도는 정말 우리가 학교와 교육 문제에 접근하는 데에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부모님이 유미코 선생님 같은 사람을 거절하니까. 아이들을 혼낼 때 '행동'을 혼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나무란다. 즉, 경멸한다는 뜻이다. 이런 '경멸'의 모습은 특히 경쟁을 지나치게 강요할 때 자준 나타나는데, 한국 교육은 바로 그 자체에 해당한다.


 자신이 지금 내 자식을 경멸한다는 사실조차 똑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함부로 아이의 됨됨이를 나무라는 행동은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는 그저 부모님이 일상 속에서 한 행동 그대로, 부모님이 아이에게 주입한 사고방식 속에서 잘못을 저지르니까.


 역시 내가 이 부분에 눈이 간 이유도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터진 충암고 급식비 사건도 이런 경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급식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멸에 가까운 태도로 아이를 나무란 교장 선생님이 알고 보니 급식비 횡령 사건의 중심에 있었으니까.



 나는 이렇게 이사카 코타로의 장편 소설 <남은 날은 전부 휴가>를 읽었다. 작품 내 인물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마치고, 남은 날은 모두 바캉스로 보낸다. 나 또한 이 글을 쓰는 지금(8일)이 지나면, 남은 날은 바캉스이다. 한글날부터 토요일과 일요일. 숙제도 없는 아주 멋진 방학을 보내고 싶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는 이사카 코타로 특이점이 잘 담겨 있었다. 그가 종종 자신의 소설에서 등장시키는 대표 캐릭터 사신 치바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윽고 지난 다른 소설에서 이 작품 내에서도 어떤 인물이 비칠지도 모르겠다. 이사코 코타로의 작품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지독할 정도로 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바캉스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면,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 조각을 퍼즐처럼 맞추는 바캉스 기분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인생, 남은 날은 여름방학이야. 숙제도 없이."이라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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