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를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게 정말 정답인가요?
- 일상/사는 이야기
- 2015. 5. 30. 07:30
소득 수준을 넘는 보험, 그리고 오늘을 포기하는 미래,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해요.
보통 어른이 20대에게 충고할 때마다 "네 미래를 보고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 지금 놀지 말고, 나중에 돈 벌어서 놀 생각을 해라."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이유로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여행하고 싶을 때 여행을 가고, 돈을 쓰고 싶을 때 쓰면 나중에 큰 낭패를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어른의 그런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분명히 어른들도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삶의 지혜이기에 그 조언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내일을 준비하지 않고, 오늘 하루 흥청망청 인생을 사는 것은 거의 망나니 수준에 해당하는 삶의 방식이라 절대 '성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정말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오늘을 즐기면 안 되는 걸까?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30년 후를 위해서 돈을 연금 보험을 넣고, 오늘의 행복 지수를 떨어뜨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 오늘의 기회를 미래를 위해서 미루어야만 하는 걸까?
……글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눈앞에 찾아온 기회가 30년 후에 또 있다고 확신할 수 없고, 오늘 내가 버는 소득의 과반수를 먼 미래를 위해 투자하더라도 정말 30년 후에 그 자산이 제대로 보관이 되어 내가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하루살이녀 이미영 님, ⓒ개인 블로그
과거 <화성인 바이러스>를 통해 '하루살이녀'라는 한 여성의 삶이 방송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었다. 1(위 사진은 그녀의 최근 모습이다. 2) 인터넷에서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그녀를 향해서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오히려 시간을 자신에게 투자하면서 오늘을 즐겁게 살고자 최선을 다해 사는 멋진 여성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에서 무히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죽으면 사용할 수도 없는 물질을 축적하기 위해서 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자꾸 포기하려고 하는가?
언제나 '20년 후를 보고 직업을 선택하고, 돈을 악착같이 모아야 한다. 하고 싶은 건 그때 가서 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면, 막상 자신은 또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요즘 20대를 보면서 '내가 네 나이였으면, 벌써 뭘 하고도 남았어.'라고 말하면서 후회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 내가 120만 원의 수익을 올린다면, 적어도 1/4인 30만 원은 나를 위해서 돈을 사용하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소비되는 금액, 집을 사기 위한 금액,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 필요한 최소한의 보험 이외에는 그게 옳은 일이 아닐까?
내가 무언가를 살 때 그것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시간으로 사는 것이다. 이 시간에 대해 인색해져야 한다. 시간을 아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일에 써야 한다.
(p368,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김해시보 기자, ⓒ노지
나는 블로그를 통해 얻는 수익 대부분을 항상 그렇게 사용해왔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사는 데에 쓰고, 인터넷 비용을 내고, 매달 적금을 넣고, 매달 주택 청약을 넣고, 피아노 학원비로 사용하고, 필요한 생활비로 사용하면서 최대한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어머니께 손을 빌리지 않도록 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몇 달 동안 마이너스가 되어 어머니께 손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되어 죄송한 마음이 크다. 수익이 어느 정도 줄었다는 것도 안 좋은 점으로 작용했지만, 내가 벌 수 있는 소득 수준과 비교하면 나가는 비용이 너무 턱 없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 의지와 크게 상관없이 가입한 보험' 때문에!
소득이 생기면서 나는 이 소득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전적으로 내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을 비웃듯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돈이 나가야 하는 곳이 생겼다. 특히 어머니의 지인과 가족이 보험을 한다고 해서 그냥 사인해서 가입한 보험이 늘어나다 기어코 화가 된 거다.
블로그의 영향력은 이전과 달리 입지가 줄어들어서 하루 평균 3만~4만 명 이상의 방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100만 원의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시 블로그 기자 활동과 CPA 머천트로 가까스로 버텼었지만, 2015년 이후 그런 수익도 없어서 정말 딱 내가 소비할 수 있는 만큼의 수준이었다.
줄어든 통장의 개수, ⓒ노지
지금은 그 수준도 되지 못해서 너무 힘들다. 어머니는 먹는 것을 줄이면 된다고 종종 말씀하시곤 하지만, 과거에도 나는 책을 살 때마다 돈이 부족해서 몇 끼를 굶으면서 그 돈을 아껴서 책을 사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정말 과거 무슨 조선 시대 유생처럼 책장에 놓인 책 몇 권을 팔아서 책을 구매하거나 치킨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무엇을 할 수가 없다. 내 신념은 '3일 밥을 굶더라도 3일 책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이고, 내 원칙은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말고는 어머니의 돈에 기대지 않는다.'였는데, 두 가지 모두 망가지고 말았다. 소득 수준에 맞춰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하아, 쉽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험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30년 후를 위해서 매달 나가는 30만 원의 연금 보험,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종신 보험. 이 두 개의 보험 중 하나만 없더라도 조금 더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겨우 그 금액으로 힘들어한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내 소득에서는 엄청 크다.
이 상황은 내가 블로그로 얻는 소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전업 블로그로 먹고사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나의 문제'는 소득 수준과 소비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30년 후를 위해 오늘을 포기해야 하는 비정상'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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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나는 그게 진짜 내 삶을 즐겁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이기적인 욕심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여유롭게 그런 삶을 추구하는 일은 어려울지 몰라도, 그런데도 나는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을 소비해서 인생을 산다. 과연 이 과정에서 오늘의 시간을 포기할 만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이 중요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도 있고,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돌은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열심히 노력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거기에 타인의 의사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작은 소득을 유지하면서 작은 소비를 유지하면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소비에 타인의 의사가 개입하면서 소비는 커지게 되었고, 내 작은 소득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서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여기서 나는 고민해본다. 30년 후를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게 정말 정답인지….
나른하고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의 방식을 항간에서는 예찬하지만, 그것이 가치 있으려면 어디까지나 자기 규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겸손한 주제 파악이 인간의 미덕일 순 있지만 삶을 팽팽하게 지탱시켜주진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내가 나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하는 기분은 내가 생생히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실감을 안겨준다. 그렇게 조금씩 걸어나가는 일,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p168, 태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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