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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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나 올라가고 싶어하지만, 내려오는 건 무서워합니다.


 나는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을 심하게 무서워했었는데, 몇 년 전에 추락 사고를 겪으면서 고소공포증이 더 심해졌다. 이제는 높이가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 가더라도 마음이 불안해져서 아래를 편안하게 내려다볼 수가 없을 정도다.


 내가 사는 김해에는 '경전철'이라는 교통수단이 있다. 이 경전철을 타기 위해서는 지상에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역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그 계단을 올라갈 때도 심각히 '아, 걸려서 넘어지거나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농담이 아니라 100% 진심으로.


 이런 증상이 사고 후유증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나는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정말 조심조심 내려오기 위해서 신경을 쓰고 있다.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발의 리듬이 맞지 않아 넘어질 뻔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기서 한 번 더 떨어져 다치면, 다신 걸을 수도 없을 수도 있어 늘 신경을 쓰고 있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계단, ⓒ노지


 그렇게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다 보니 문득 '어쩌면 나는 이걸로 삶을 사는 한 가지 태도를 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계단을 오르는 일은 우리가 삶에서 어떤 지위에 올라가는 일과 같고, 계단을 내려오는 일은 어떤 지위에서 내려오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목표를 향해 한참 올라갈 때는 내려올 바닥을 잘 보지 않기에 다시 내려오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내려가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때부터 겁을 먹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쓸 때가 많다.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다. 특히 권력과 부를 손에 짊어진 채 높은 위치에 올라섰던 사람들은 쉽게 그것을 포기한 채 내려오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부정·부패는 바로 그렇게 사람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일이라고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올라가지 마시오, ⓒ노지


 예로부터 사람은 아래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는 사람이 성인으로 추대받았다.

 위만 본다고 해서 그들은 절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들은 물처럼 겸허하게 지냈다.

 결코 무리해서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고, 근심이 없었으며, 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올라가려고만 한다.

 그렇게 억지를 써서 올라가면, 금세 떨어질지도 모를 절벽에서 공포에 떨어야 함에도….

 우리의 눈에는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글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불행한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에 읽은 책 <세상에서 가장 대통령 무히카>에는 "나는 인생을 간소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많은 것들을 소유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삶이 주는 여유가 좋다."이라는 무히카 전 대통령의 말을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는 건, 그런 삶이 아닐까?


 사람은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하는 욕심의 덩어리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가 가진 것을 잃게 되지 않을까 더 무서워하게 된다. 더 위로 올라갈수록 그 길을 다시 내려오는 일을 두려워하게 되고, 우리는 올라선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많은 책이 때때로 멈추어서 주변을 살펴보라고 말하는 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이라는 생각을 해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지나치게 높은 곳에 올라왔다가 허무하게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무위의 삶이 아니라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이 군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이니까.



 고소공포증인 나는 늘 계단을 오를 때마다 아래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아래를 보면 도저히 그 계단을 오를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딘가 올라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아래로 고개를 숙인 채 바라보는 풍경은 무섭다. 땅에서 나를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내려와야 할 때가 있다는 생각도 함께한다면, 내려가야 할 때가 무섭지 않을 것이다. 한 번 크게 다친 추락 사고로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내가 느끼는 그 두려움은 삶의 두려움이었다.


 삶이 복잡해 보이지만, 이외로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위만 바라보며 올라가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쓰고 있지만, 막상 자신이 올라선 그 계단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모를 때가 많다.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지만, 올라선 계단은 천천히 내려올 수 있기에 그나마 다행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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