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샘 킴이 들려주는 요리에 행복을 담는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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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점수는 '별'이 아니라 상대를 생각하는 '애정'이다.


 최근 여러 방송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늘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도 스타 셰프가 등장하여 요리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어떤 과제를 수행하거나 마지막 경연장에서 요리 대결을 하는 모습을 보았었는데, 정말 TV를 보는 내내 '맛있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TV를 통해 보았기에 맛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 막상 내가 직접 그 음식을 맛보게 되면 과연 내가 그 음식을 맛있다고 느낄지 확신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최근에 나는 어떤 음식이라도 처음에는 음식의 맛이 있지만 두세 입 이후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삶을 사는 데에 지쳤다, 이제는 그만 살고 싶다 같은 생각을 길게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어떤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지만, 언젠가부터 음식은 그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 되어 맛을 즐기는 일이 줄어들었다.


첫 입이 맛있었던 돼지국밥, ⓒ노지


 그런데도 종종 과거에 맛보지 못했던 '오, 나름 맛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만날 때가 있다. 위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은 가장 최근에 맛있게 먹었던 돼지국밥인데, 다른 가게와 달리 돼지고기의 부드러움이 정말 일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 이 국밥을 먹었을 때 맛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국밥도 두 번을 먹고 나니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다른 국밥과 비교하면 더 맛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입에 들어온 국밥은 전혀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못했다. 단지, 국밥을 퍼먹는 동안 '아, 뭔가 살아서 다행이라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은 없을까?'이라는 생각마저 했다.


 음식은 그렇게 나에게 있어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존재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 저녁에 먹을 음식이 마땅히 없어서 치킨을 자주 시켜 먹는 것 말고는 딱히 돈을 투자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한 권을 구매해서 읽는 게 오히려 더 낫다.


이 맛에 요리, ⓒ노지


이 맛에 요리, ⓒ노지


 얼마 전에 우연히 나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셰프 샘 킴이 집필한 <이 맛에 요리>이라는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맛에 요리>는 셰프 샘 킴이 자신이 요리를 통해 무엇을 배웠었고, 어떤 사람을 만났었고, 요리를 통해서 어떤 행복을 느낄 수 있었는지…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특히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요리를 통해 사람들이 바뀐 이야기는 꽤 감동적으로 다가왔는데, 그중 글을 쓰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이야기가 애호박 이야기이다. 언제나 술을 드시는 아버지를 위해 중학생이 아버지에게 애호박 요리를 해드린 사연인데,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학생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늘 술을 마시고, 술이 깨면 자신이 한 행동과 말을 기억하지 못해 마음을 쓰면서도 또 술을 마시는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안주도 없이 늘 술만 먹는 아버지가 걱정이 돼서 전에 배웠던 애호박 요리를 해드렸다고 한다. 학생이 뚝딱 만들어온 애호박 요리를 아버지는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상기된 얼굴로 한 접시를 다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날로 술을 끊으셨다는 것이다. 늘 술만 마시는 아버지 걱정에 고사리 손으로 요리를 시작한 아이의 마음을 아시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별스럽지도 않은 애호박 요리 하나에 크게 감동하신 것이다. (페이지 66)


 이 사연을 읽으면서 나는 요리가 가지는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요리에 애정이 들어가면 비록 겉으로 화려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소설을 통해 읽은 적이 있었지만, <이 맛에 요리>를 통해 좀 더 그 이야기를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이야기로 읽어볼 수 있었다.


ⓒ스포츠서울[각주:1]


"요리들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먹는 즐거움을 준다. '사랑이 먹고 싶어서 음식을 먹는다'라는 말처럼 요리에는 만든 사람의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행복을 나누기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함께 나눈다. 부모가 아이를 먹이고, 연인들이 맛집을 찾아가고 친구들끼리 언젠가 밥 한번 먹자고 하는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페이지 67)


 우리 한국에서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이라는 말은 아주 형식적인 인사다. 가끔 연락처만 등록되어있는 친구가 전화를 해서 '뭐 하고 지내느냐?'면서 안부를 묻다가 전화를 끊을 때 '언제 밥 한번 먹자.' 하고 넌지시 다음 기회를 던지는 말을 하는 것도 한 끼 식사가 가져다주는 시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에 연락해서 밥을 함께 먹은 적이 아직 없다. 그냥 일상이 바쁘다고 말하기보다 밥을 먹는 데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벌써 '26년'이이라는 시간을 살아왔다. 어쩌면 내가 맛있는 행복을 잃어버린 건 이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조금씩 읽으면서 나는 요리가 지닌 힘을 읽었고,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말하지 않은 것에 죄송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하아, 참… 난 못된 자식이구나.



 지금까지 나는 많은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고, 나도 노력하면 반드시 내 꿈을 통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맛에 요리>는 너무 나와 다른 선상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로 느껴졌고, 감히 내가 누군가를 생각하는 요리를 한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씹는 모든 음식의 맛은 항상 세 번까지 그 맛이 존재한다. '아, 오늘은 반반 돈까스를 내가 먹고 있구나.', '오늘은 내가 굽네치킨의 고추 바사삭 치킨을 먹고 있구나', '아, 오늘은 내가 돼지국밥을 먹고 있구나'이라고 알 수 있지만, 이후 느껴지는 맛은 사라진다. 오직 입안에는 텅 빈 소리만 울린다.


 그래서 <이 맛에 요리> 책은 요리의 따스함을 읽을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이 책을 앞으로 읽게 될 사람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리'라는 공통 주제로 저자와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줄 테니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식사하셨어요?>[각주:2]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따뜻한 한 끼 식사는 차가운 시대 속에서 점점 차가워지는 우리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애정이 아닐까 싶다. 책 <이 맛에 요리!>를 읽으며 누군가를 위해 하는 요리의 맛을 잠시나마 맛볼 수 있어 좋았다.



  1. 서울스포츠 이미지 : http://www.sportsseoul.com/?c=v&m=n&i=186569 [본문으로]
  2. 식사하셨어요, 만나서 행복했던 힐링 프로그램 : http://nohji.com/204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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