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화'에 물드는 우리에게 필요한 책
- 문화/독서와 기록
- 2014. 12. 28. 07:30
[도서 서평]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화에 대한 치유법을 제시한 위대한 고전
사람은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사랑, 기쁨, 행복… 등의 플러스 요소로 분류할 수 있는 감정만이 아니라 증오, 분노, 슬픔… 등의 마이너스 요소로 분류할 수 있는 감정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연애를 하다 보면 종종 화가 나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연애를 하다 보면 슬퍼지기도 마련이다. 이런 감정 중 어떤 감정이 결여된 사람을 우리는 '병자(病者)'이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 감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감정이 메말라 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타인과 메시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섹스를 할 때 말고는 전무할 정도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특히 한국 사람들처럼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나의 좋은 점을 보기보다 나의 나쁜 점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짙어 사랑, 기쁨, 행복… 등의 플러스 요소보다 슬픔, 자괴감, 좌절… 등의 마이너스 요소가 더 강해졌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우울증 환자가 많고, 사람들은 사람 사이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면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보통 그런 일을 겪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어릴 때부터 모진 질책에 자신감을 잃어버렸거나 집단 따돌림, 가정 불화 같은 일이 계기가 되어 주눅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너스 감정이 더 강해지면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언제나 화를 잘 내는 경향을 보이면서 일간 베스트 저장소를 이용하거나 극우 세력이 동참하는 강한 부정적 감정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은 점점 화를 다스리는 데에 서툴러지고 있다. 이전에는 모두가 탁자를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참을성 있게 윗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좀 더 아날로그 형태를 띠는 방법을 통해 소통하면서 '절제'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좀 더 빠르고, 자극적인 시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종종 균형을 잃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일을 벌이고는 한다.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노지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책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는 이렇게 '화'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화'라는 감정이 도대체 무엇인지, '화'라는 감정이 왜 필요가 없는지, 왜 '화'라는 감정이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지, 우리가 어떻게 '화'라는 감정을 다스려야 할지… 등 그런 이야기를 자세히 하고 있다. 이 책은 고전이지만, 읽는 것에 전혀 어렵지 않았던 책이다.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가 긴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아서 좋았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화'라는 감정은 어떤 순간에 무심코 버럭 하는 모습을 떠올릴 때가 많다. 맞다. 그것이 바로 '화'라는 감정이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이성의 선을 끊고 폭발해버리고는 하는데, 나는 이 또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화'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건 이미 사람을 뛰어넘은 어떤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이유가 우리에게 '화'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화가 있기에 어떤 식으로도 사람의 좀 더 나은 감정 표현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옳지 못한 생각이다. 아마 평범히 사는 우리에게 이 말은 조금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화를 안 내고 어떻게 살아?' 같은 의문이 먼저 떠오를 테니까. 책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는 이런 말을 한다.
화라는 감정은 전혀 유익할 것이 없고 인간의 마음을 자극해 승리를 거두지도 못한다. 미덕은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기에 악덕의 원조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미덕은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서서히 피어올랐다가 고요히 가라앉는다. 절대로 화처럼 공격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마치 궁수가 활을 조준할 때 얼마나 힘을 주어 잡아당기느냐에 따라 화살의 강도가 조절되는 것과 같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화란 반드시 필요하다. 화 없이는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싸울 때는 가슴에 화를 품고 사기를 불태워야 한다. 하지만 화가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저 장군을 돕는 병사 역할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틀렸다. 만약 화라는 감정이 이성에 귀를 기울이고 이성이 시키는 대로 따른다면 그건 더이상 화가 아니다. 화는 그 본질부터 고집불통이기 때문이다. 장군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고 묵묵히 따르지도 않으며 끝까지 자기 의지대로 고집을 피운다면,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후퇴하라는 장군의 지시도 무시하고 멋대로 날뛰는 골치 아픈 병사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선을 지킬 수 있는 격정이라면 그때는 화가 아니라 다른 명칭으로 불러야 한다. (p42)
결국 '화'라는 감정은 통제되지 않는 하나의 불안 요소다. 이 불안 요소를 필요한 요소라고 말한다면, 사람이 사는 세상은 좀 더 잔인한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고개를 들고 강하게 세력을 키우고 있는 극우 세력은 바로 '화'라는 것을 매개로 해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은 완전히 고집불통이다. 자신과 반대되는 건 무조건 "빨갱이!" 하면서 소리칠 뿐이다.
누가 보아도 그들의 행동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히게 한다. 그래서 '화'라는 감정은 사람을 이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의 동물로 만든다고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는 설명한다. 지금 우리나라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극우 세력이 반한 시위를 하면서 군국주의를 지향하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두 세력을 보면…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정말 끊임없이 공격한다. '공격은 최고의 방어'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아니, 얻지 못하더라도 공격을 일삼는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극우만이 아니라 좌측 세력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좀처럼 더 나은 결과를 만들지 못한 채, 매번 서로에게 '화'를 내면서 정작 필요한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는 정해진 목표만을 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해진 목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들을 모조리 공격한다. 다른 악덕들은 마음을 흔드는 것에 그치지만 화는 우리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격정을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잠시 멈출 수는 있다. 하지만 화가 점점 더 커지고 강해질수록, 번개나 허리케인처럼 스스로 멈출 수 없으며 무작정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다른 악덕들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만 화는 온전한 정신을 뒤흔든다. 다른 격정들은 서서히 다가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커져가지만 화는 인간의 마음을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화만큼 격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격정도 없다.
일단 화를 내는 것에 성공하면 의기양양하지만 실패하면 광기에 미쳐 날뛴다. 실패했을 때조차 화는 지치지 않으며, 만약 화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상대가 달아나버리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제 살까지 뜯어먹는다. 화는 그 강렬한 기운이 어디서 시작되었든지 개의치 않으며 매우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어 저만치 높은 곳까지 솟아오른다. (p109)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는 이렇게 '화'라는 감정을 우리가 똑바로 직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은 기존에 세네카가 너무 화를 잘 내는 노바투스에게 전하는 서간문 형태의 책이었는데, 이를 좀 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하고 현대에 맞춰 수정한 것이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이라는 책이다. 그런 까닭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나는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은 단순히 '화'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3장에서 '화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법'과 4장에서 '화를 억제하고 다스리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다 읽어보지 않고, 책의 목차에 적혀 있는 각 소제목만 읽더라도 그 내용을 이미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점점 더 자극적인 것에 치중하는 우리에게 쉽게 일어나는 '화'라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이 책은 정말 필수적인 책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화'라는 감정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삶의 자세도 배울 수 있는 책이 바로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였다. 고전이 좋은 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이야기는 결국 사람의 삶을 사는 방식이 되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지금 당장 나를 돌아보면서 '나는 어떤가?'는 질문을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책의 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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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사는 2014년의 대한민국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화'라는 감정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투쟁이 멈추지 않는다. 기업가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노동자는 기업가의 손에 쥐어진 자신의 몫을 되찾기 위해서, 정치가는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시민은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커지게 된다.
그러나 '화'가 커지는 것은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색깔론을 펼치면서 이분법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이분법으로 정치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세네카는 "증오심은 남을 해하는 원동력이며 인간의 본성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화를 돋을수록 증오심은 커지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에게 고통을 줄 뿐이다. 그러니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이야기는 책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에 적혀있다. 단편적인 정보와 자극적인 정보로 우리는 언제나 화의 부추김을 당한다. 그리고 "저런 빌어먹을 녀석이 어떻게 정치인이야!?", "네가 기업을 물려받았으니 갑 행세하지, 그 따위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빨갱이를 옹호하는 네 녀석들은 북한으로 가버려!", "파업하지 말고 일이나 해!" 등의 행동으로 표출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환경이기에 '화'를 절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이성적으로 문제에 접근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화'를 다스릴 필요가 있다. (정치·사회 문제만이 아니라 연인 사이, 일과 직장 사이에서도.) '화'라는 감정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화'를 똑같이 낸다면 결국 동류(同類)에 머무르는 최악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바꿀 수 있다.
이 책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가 내 인생을 좀 더 온화하게 바꿀 수 있는, 주변 사람을 좀 더 다정하게 대할 수 있는, 좀 더 정치·사회 문제를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네카의 이야기는 분명히 우리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이니까.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는 어렵지 않으니,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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