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일에 반복되는 슬픔, 올해는 제발 없었으면…
- 시사/학교와 교육
- 2014. 11. 13. 07:30
수능 당일이 되면 나오는 수험생의 자살 소식, 제발 오해는 없기를…
오늘 11월 13일은 많은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 한 되 모이는 수능 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다. 많은 사람이 어제부터 오늘까지 '제발….', '부디….'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도를 하거나 응원을 하고 있을 것이고, 많은 수험생이 긴장 속에서 시험장으로 발을 들여놓는 날이기도 하다.
벌써 수능을 치고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날이 되면, 언제나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해버리고 만다. 지금은 수능 시험과 상관이 없는 어른으로 세상을 살고 있음에도, 내 인생에서 정말 가장 중요했던 날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수능일의 기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으니까.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수능 시험을 치러가는 날, 긴장 속에서 '제발, 앞의 모의고사처럼 좋은 성적을 가질 수 있기를…. 내가 쌓아온 것을 빈틈없이 발휘할 수 있기를….' 등의 간절한 바람으로 시험장에 발을 들여놓는 그 날이. 매일 똑같은 잿빛의 일상에서 유독 더 검던 그 날이.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수능 시험을 쳤던 세대는 다들 비슷한 회상에 잠기며 '그 날'을 떠올려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가족 중에 수능 시험을 치르는 자녀 혹은 친척 동생이 있다면, 더욱더 이런 날은 수험생만큼 긴장하며 하루 동안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오마이뉴스
오늘 같은 날에 정말 많은 수험생이 큰 사고 없이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 제발 올해에는... 올해에는 수능 시험을 잘 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앞으로 남은 자신의 시간을 버리는 슬픈 선택을 하는 수험생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다.
우리는 매해 수능 시험일마다 수능 시험을 잘 치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삶을 포기한 아이들의 소식을 뉴스로 듣는다. 이건 아이가 나약해서도 아니다. 그저 아이들이 수능 시험을 치르는 날까지 받고 있던 그 압박감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담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굳이 길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학력 지상주의가 얼마나 강한 지를, 모든 부모가 그런 건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부모가 아이에게 거는 성적의 압박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강한 지를 말이다. 부모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그 모든 것을 느끼기 마련이다.
나는 재수를 했었기에 그것을 잘 안다. 두 번째 수능시험의 결과가 절대 처음 쳤던 수능 시험 날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며 수능 시험장을 빠져나왔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1년을 믿고 기다려준 엄마에게 도저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침묵 속에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분명히 9월 모의고사까지는 시험 성적이 상향 곡선을 그리면서 '지난해보다 더 잘 칠 수 있을 거야'는 믿음을 나도 가지고 있었지만, 정말 유례 없이 최악의 상태로 두 번째 수능 시험장을 간 날은 내 인생에 있어 최악의 날로 기억되고 말았다. 그 허탈감에 나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늘 그랬듯이 용기가 없었다. 그저 그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방 안에서 내내 시간을 보냈다.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것밖에 없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동안 쌓아왔던 책을 다시 읽으면서 '괜찮아. 비록 원하는 대로 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될 거야!'고 믿기 위해 노력했다.
ⓒ오마이뉴스
수험생이 수능을 잘 치지 못하고 나온 날에 느끼는 그 아픔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저 과거의 '나도 한때 그랬다.'는 식의 전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말하고 싶다. 모든 수험생이 시험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만큼, 제발 올해에는 남은 시간을 버리는 수험생이 없었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학력이 성공으로 가는, 꿈을 이루는 최고의 길이라고 말한다. 어른도 그렇게 말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학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좋은 대학교를 나오더라도 꿈을 가지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삶에는 '좋은 대학교'가 아니라 나의 '좋은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비록 내 인생의 어떤 항로를 결정하는 출발선에서 약간 뒤처지더라도 내가 가야 할 곳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남보다 더 빨리 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내 인생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혹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일단 시간을 보내고(길을 가고) 있는 청춘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자신만의 인생인데, 스스로 가야 할 방향도 제대로 모른 채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단 고민은 나중에 하고 '토익 점수 따기' '학점 만들기' '어학연수' '공모전 수상' 등을 열심히 해두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길에 닿을 것이라는 청춘들의 막연한 믿음은 과연 위 이야기에 나오는 상인의 어리석은 믿음과 얼마나 다를까요.
청춘들에게 물었습니다.
"열심히 여행중이군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랬더니 청춘들이 대답했습니다.
"네, 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목적지도 없이 일단 열심히 가는 것인가요?"
청춘들이 대답합니다.
"네, 제게는 훌륭한 말(토익 점수)과 충분한 노잣돈(학점), 그리고 길을 잘 아는 마부(학벌)가 있으니 언제든지 목적지를 바꾸어도 된답니다."
깜짝 놀라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지금 아무렇게나 가고 있는 이 길과 정반대에 있다면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지 않을까요?"
청춘 여러분,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 그 전에, 갈 곳은 정하셨나요? (p85, 지겹지 않니 청춘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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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좇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웃을 수 있게 되는 거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갑갑하게 생활하는 것보다 오히려 지방에서 열린 기회를 잡는 게 더 유용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제발, 올해만큼은 슬픈 소식이 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수험생이 스스로 자신을 너무 질책하지 않게 주변의 어른도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어떤 부모는 바로 재수를 논의하면서 아이에게 미칠 것 같은 고립감에 가두기도 하는데, 절대 그런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저 "수고했다.", "사랑한다.", "넌 나의 자랑이야."이라고 말하며 안아주자.
자신의 꿈보다 그저 대학의 이름만 먼저 보고 시험을 칠 수밖에 없도록 한 건, 바로 우리 어른의 탓이다. 여전히 사회 문제를 바로 잡지 못한 우리 어른의 욕심과 잘못 때문이다. 이 슬픈 사회를 만든 우리의 잘못이기에 이날에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부디, 오늘 수능일과 다가오는 내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우는 시간이 있더라도, 그 슬픔이 따뜻한 사랑으로 바뀔 수 있기를 기도한다. 신을 믿지 않지만, 나약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간절히 두 손을 모아 기도할 수밖에 없으니까.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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