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자꾸 꿈을 강요하지 마세요.
- 시사/학교와 교육
- 2014. 10. 31. 07:30
꿈을 가지라고요? 우리에게서 꿈을 빼앗은 건 어른이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우등생은 허튼짓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모의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학교의 명예를 높인 학생이다. 그런 우등생이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일이 발생해도 학교에서는 우등생의 편을 들어주면서 공부 못하는 아이를 가리켜 '정신 이상자'라고 몰아세우며 피해 학생 본인과 부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다. 이게 바로, 학력 지상주의에 물든 한국의 모습이다.
'에이- 요즘 시대에 그런 학교가 어디 있어?' 같은 의심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전부터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이런 일을 반복됐다. 나도 어릴 적에 담임교사로부터 "공부 못하는 놈이 공부 잘하는 아이 앞길 막지 마라." 같은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들으면서 발길질을 당했었고, 우리가 언론을 통해 간간이 볼 수 있는 학교 폭력 사건도 비슷한 분위기로 묻히거나 왜곡되고는 했다.
이건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청소년 본인의 인성이 원인이 아니다. 문제의 원인은 아이를 자신의 장기 말로 생각하는 어른의 욕심이 아이를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괴물'로 만든 것에 있다. '공부만 잘하면 돼.' 같은 말로 아이를 다그치면서 'A는 공부를 못하니까 같이 놀지 마. B는 전교 1등이라며? 같이 공부하고, 친하게 지내' 같은 말을 하는 어른을 보는 건 정말 쉬운 일이다.
어른은 그렇게 아이에게 '결과가 전부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 세상은 네가 만든 결과만 본다.' 같은 사고방식을 주입하는 거다. 아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어른이 바라볼 때 필요한 것을 하라고 하고, 어른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일만 하라고 강요한다. 그렇게 아이는 서서히 어른의 말대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리고, 자기 의사를 점점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웃기는 일은 그렇게 아이를 꼭두각시로 만들면서 어른은 아이에게 '꿈을 가져라.'라고 말한다는 거다. 어른 자신이 아이에게 꿈을 가지지 못하도록,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고선 '하고 싶은 일은 있잖니? 꿈이 있어야 사람은 행복하단다.' 같은 설교를 한다. 진작 그런 말을 하면서 아이에게 듣고 싶은 답은 부모가 속으로 원하는 직업과 꿈일 텐데….
ⓒJTBC 비정상회담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요즘은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좀 더 좋은 부모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부모 자신의 꿈을 아이의 꿈으로' 만드는 일을 열심히 반복 수행하고 있다. '엄마 말이 틀린 적 있어? 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하고 말하면서.
어제 나는 《모모세대가 몰려온다》이라는 책을 이야기하면서 10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10대는 스스로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이 가진 한정적인 물품과 기술을 이용해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도 만들 수 있다. 10대 청소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커다란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많은 어른이 10대 청소년의 그런 잠재력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을 하려고 하는 청소년에게는 '음악? 그건 그냥 취미로 해. 네게 중요한 건 수능 시험을 잘 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일이야.' 같은 말을 하면서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먼저라는 것을 기계처럼 반복해서 말한다.
물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억지로 시켜서 하는 공부는 재미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분명한 이유로 동기 부여가 되어야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분명한 목표가 생긴다면, 부모가 백날 잔소리해도 하지 않는 공부는 스스로 한다. 그게 한 명의 부모로서 지녀야 할 아이를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모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요즘 TV에서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워낙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보니 부모가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 좋은 부모의 모습을 가지기 위해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종종 '꿈을 가져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어?', '공부는 목표가 중요해' 같은 말을 하는 거다.
그런데 그런 부모님 중에서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부모님이 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하고 싶은 일이 뭐야?" 같은 질문을 했다고 치자. 만약 아이가 "저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면 부모는 아연실색하면서 "뭐라고? 패션 디자이너? 엄마가 옷이나 만들라고 빚까지 내면서 학원에 보낸 줄 알아? 넌 판, 검사가 되어야 해!"라며 자신의 욕심을 아이의 꿈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게 바로 옳은 꿈이자 목표라고 말하면서.
이건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자주성이 중요하다고 교육자들이 말하니 부모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이의 의견이 자신이 가진 의견과 다를 때에는 강하게 반대한다. 특히 그게 진로와 관련된 문제일 경우, 부모는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넌 이 대학에 가서 졸업하고, 다음은 이 정도 기업에 취업해야 해' 같은 말로 아이의 꿈을 틀 안에 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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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내 아이가 좀 더 큰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한결같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을 맞아 많은 부모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기도에 담는 부모님의 바람은 모두 한결같이 '우리 아이가 노력한 만큼 결과를 내서 좋은 대학에 붙을 수 있게 해주세요'이라는 바람일 테니까. (나의 어머니도 그랬고, 글을 읽는 당신의 부모님도 그랬다.)
유별나게 학벌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으로도 차후 취업을 할 때 출발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부모님이 안다. 먼저 사회생활을 해본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아이만큼은 출발선을 더 유리하게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 더 좋은 인생을 살았으면 하기에 "너는 어느 대학에 가서, 어느 기업에 취직하거나 어느 직업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거다.
부모의 욕심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욕심이 아이의 선택을 너무 한정적으로 만들어서 불행하다고 느끼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부모님이 그냥 지나가는 말로 "넌 되고 싶은 게 뭐야? 꿈이 뭐니?" 같은 말을 묻지만, 부모님이 바라는 건 아이 자신의 꿈이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꿈일 것이다. 아이는 그것을 눈치채고, 부모님을 원하는 꿈을 대답하고, 부모님은 흡족해한다.
만약 아이가 부모님의 의견과 반대되는 꿈과 목표를 말한다면, 부모님은 노발대발하며 "그건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고, 돈이 모이고 나서 해도 괜찮다."고 타이른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 그때가 온다는 말인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면, 평생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부모님 세대가 바로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무엇을 하고 나서 뭘 하겠다는 건 너무 비상식적인 말이다.
10대 청소년에게 꿈을 강요하지 말자. '꿈이 없다'고 말한다고 꿈이 없는 건 아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꿈은 스스로 결정하는 거다. 부모님의 욕심이 아니라,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이 뛰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결정하는 게 꿈이다. '다른 애는 멋진 꿈이 있는데, 왜 넌 그런 꿈을 가지니?' 같은 말을 하지 말자. 아이가 가슴에 품은 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원대하다.
ⓒ구글 검색
어린 왕자가 그린 보아 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그림을 어른은 단순히 모자로만 바라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고, 놀라운 꿈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 놀라운 꿈을 그저 '꿈이 무엇입니까?'이라는 질문에 '공무원'이라는 답을 써놓게 하는 건 어른의 욕심이고, 집착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10년 2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개최되는 강연회 TED에 12살짜리 소녀가 혜성같이 등장했다. 이 소녀의 이름은 아도라 스비탁이다. 1997년 미국 태생의 이 어린 소녀는 생후 2년 6개월 때부터 책을 읽고 4살 때부터 글을 썼으며, 이미 8살 나이에 단편소설 400편, 시 100편을 집필했다. 아도라는 자신의 능력이 여섯 살 때 엄마가 사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장착된 노트북에서 발휘되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TED 강연에서 어른들을 향해 이런 말을 던진다.
"세상은 아이들에게 아이 같은 생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제한을 두어 아이들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종종 아이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기까지 하지요. 그러나 안네 프랑크는 홀로코스트 이야기로 수만 명의 심금을 울렸고 루비 브리지스는 미국 인종차별의 종결을 도왔으며, 최근에는 찰리 심슨이 작은 자전거 하나로 12만 파운드의 아이티 기금을 모금했답니다. 이러한 예를 증거로 볼 수 있듯이,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죠."
물론 이 이야기는 다시 한 조숙한 천재의 깜찍한 발언으로 관심의 방향을 돌릴 우려가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려는 것은 10대들에게는 그들을 대변할 어떤 권력도 대변인도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모모세대들은 이미 충분히 웃자라고 있다. 100년도 넘는 과거에 만들어진 학제와 기성세대의 편견이 그들을 더 자라지 못하게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p282_ 모모세대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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