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이어지는 장난이라는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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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요? 에이- 무슨, 이건 그냥 우리끼리 장난친 거에요."


 우리나라 속담에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릴 때 잘못된 습관을 바로 잡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고치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교육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그런 말을 들으며 자신의 습관을 고치려고 했던 어른이 주변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요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이라는 말을 조금 곱씹어보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보는 학교를 비롯한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이 말의 교훈을 잘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잘못을 고치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이라는 말처럼 그 잘못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지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장난이었을 거다. 자신과 조금 다른 아이를 배척하고, 자신보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모든 일이 말이다. 하지만 그 장난은 엄연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지적해주지 않고, 어른은 한술 더 떠서 '저 아이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니까 함께 놀지 마.'이라는 차별을 가르치고, 급식을 먹을 때마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며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가르친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그 모든 잘못을 '당연한 일'처럼 여기기 시작하고, 그들의 장난은 범죄라는 인식을 갖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은 군대에서 가혹 행위를 조장하는 선임이 되고, 직장에서 왕따를 주도하는 가해자가 되고, 사회에서 자신이 좀 더 우위에 있다고 착각해 사람을 악랄하게 괴롭힌다.


ⓒ국민만평


 우리 사회가 병들어가는 과정은 이렇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그 잘못을 고치지 못했기에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잔인성과 잔혹성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점점 수위가 높아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인다는 거다. 그들은 자신이 가해자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사람의 탈을 쓴 '악마'로 살게 된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사회를 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는 엄연히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다. 모든 어른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어른이 아이에게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가르친다. 게다가 그 차별로 발생하는 피해를 당한 사람의 아픔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하고, 우리는 저 사람보다 잘났기에 괜찮다고 말한다.


 이건 교육이 아니다. 부모의 자세도, 교사의 자세도 아니다. 그냥 판정받지 않은 사이코패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차별을 조장하면서 서열 문화를 부추기고, 끝까지 성적이나 결과로 아이를 줄 세우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암묵적인 계급을 만드는 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요즘 세상에서 그런 일이 당연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너무 말이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모습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모습이 곳곳에 숨어있다. 급식을 먹을 때마다 성적순으로 나누어주면서 언제나 꼴찌로 먹게 한 학교의 사연이 얼마 전에 보도되었고, 아파트 경비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보도되었고, 군 가혹 행위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가 보도되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렇게 부패해 가고 있다. 이 부패를 막고자 기관에서 소금을 뿌리려고 하더라도 기관에 들어온 소금이 납품 비리가 있던 불량 소금이라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더욱이 소금을 치는 사람은 낙하산 인사나 부정 투표로 뽑힌 사람이라 능력이 없어 소금을 적절한 시기와 똑바른 위치에 뿌리지도 않는다. 그냥 돈만 낭비하고 있는 거다.


 이는 가상에 존재하는 사회의 모습도, 나라의 모습도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사회이자 나라의 모습이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어쩔 수 없었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 "그래도 남보다 잘살면 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말에 질문하고, 고민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바뀌나요?", "그래도 차별은 안 좋은 거에요.", "조금 배고프면 어때요? 정의가 있어야죠."이라고.


 지금은 많은 어른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차별보다 다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지 않도록 훈계하고 있으니까. 왜냐하면, 그 시절을 산 어른은 잘못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피해자이니까. 비록 가해자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다.


 오늘 당신은 "범죄요? 에이- 무슨, 그냥 장난친 거에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떳떳하게 "그건 잘못이야. 장난이 아니야. 범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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