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 재활용 시리얼에서 본 일그러진 한국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10. 24. 07:30
김연아를 CF 모델로 활용했던 동서 식품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린 신의 한수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리켜 '불신의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말 그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카카오톡을 정부 기관이 감시하고, 홈○러스나 메○마트는 이벤트로 모은 개인정보를 팔고, 여성가족부의 변호사는 변호를 맡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돈을 갈취하고, 군대는 괴롭힘으로 자살한 병사를 정신이상자로 몰아붙인다.
이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나라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만이 아니라 정말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이야기도 분명히 주변에 존재할 거다. 그런데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고, 한두 번에 그치지 않는 이런 욕이 나오는 행동은 우리가 나라와 사회를 불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특히 대통령이 똑바로 진상 규명을 하기는커녕 외면하기만 하니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리 사회에 이런 불신을 가중시키는 대형 사고가 또 하나 터졌다. 피겨 여왕 김연아도 CF를 촬영했던 한 유명 대기업 동서 식품에서 많은 사람이 사 먹는 시리얼 제품을 재활용해서 판매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다. 작은 동네 식당이 음식을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아는, 이미 많은 사람이 먹고 있는 제품의 기업이 대장균 시리얼을 재활용한 것이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충격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난 아침으로 계속 동서식품 '포스트'의 '라이트업'을 계속 먹고 있었는데, 혹시 이 제품도 재활용된 것이 아닌가 싶어 정말 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내가 먹는 이 제품이 아니라 '아몬드 시리얼'이라고 판명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이 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JTBC
나는 이 세상에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어른이 아이에게 함부로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며 신체적·언어적 폭행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는 반성하지 않는 정치인의 만행이고, 세 번째는 사람이 먹는 음식(식품)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빌어먹을 짓을 하는 일이다.
동서식품은 그동안 단단히 쌓아오던 국민 브랜드 이미지를 이번 사건으로 한 번에 다 날려버릴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김연아와 신세경을 비롯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이 CF를 촬영하면서 오랫동안 매출을 무섭게 올리고 있던 동서식품은 이번 대장균 시리얼 재활용 사건으로 한 번의 큰 고비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식과 기업 브랜드의 가치는 '신뢰도'가 가장 중요하니까.
(이미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는 집에 있는 동서식품 제품을 다 버리고 있다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SBS
하지만 나는 이 기업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크게 망해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긴 시간 동안 많은 시민이 먹는 대표적인 식품 브랜드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 대대적인 감사가 들어가지 않는 한 큰 위험을 겪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상속자》에서 들었던 "권력은 유한해도 재벌은 무한해. 재벌이 망하는 거 봤어?"라는 대사가 딱 적절하다.
더욱이 이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그 문제가 된 시리즈 식품만 먹지 않으면 되잖아?' 같은 가벼운 생각을 하면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언론에서 동서 식품에 대한 감사 보도를 꾸준히 하지 않는다면, 금세 사람들은 잊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마트 코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커피와 시리얼, 우유를 구매해서 늘 그렇듯이 먹지 않을까?
(이 글의 초안은 10월 17일에 작성했었는데, 그 사이에 고작 과태료 300만 원의 판결이 나왔다.)
ⓒJTBC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이 흔하다. 어떤 심각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언제나 깜짝 분노에 그치기만 하고,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와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빌어먹을 정치인이나 기업가는 불리한 시기에 사과하는 척만 하는 거다. '이번에 앓고 있던 종기가 하나 터졌네. 괜찮아. 어차피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어버릴 테니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세월호 사고'와 '군 가혹 행위' 등의 대표적인 두 사건이 바로 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하는 척을 하니, 그 모습에 정신 나간 사람들은 '아이고, 우리 공주님이 우셨어. 저 눈물을 닦아드려야 해!' 하면서 지방 선거 기간 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 기반을 다져주었다. 그러니 박근혜는 웃으면서 매번 해외순방만 다니는 거다.
하아, 이 얘기는 여기서 그만하자. 이 일에 대해 얼음 송곳처럼 차가운 이야기를 계속 쏟아 낸다고 하더라도 지구의 온난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파괴된 오존층은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해수면은 낮아지지 않을 것이고, 녹아내리는 빙하가 다시 얼지 않을 테니까. 그저 우리는 이 같은 일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좀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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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식품이 일으킨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이 사건. 과연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얼마나 기억할까? 대기업이 고객을 호갱으로 취급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한, 그런 대기업의 뒤에서 엉터리 정책만 내놓는 정부의 모습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류가 역사를 반복한다는 건 이런 어리석음이 꾸준히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참,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내일 또 이런 일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또 잊어버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람들은 똑같은 식품을 먹으면서, 똑같은 정치인을 지지하면서 '세상 믿을 게 하나도 없네!'라는 말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게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사회, 아니, 거의 전 세계적으로 볼 수 있는 일그러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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