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탈(노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 일상/사는 이야기
- 2014. 10. 10. 07:30
사는 게 지겨워질 때에는 '일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20대인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는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을 맞이해 눈을 떴을 때 '아, 오늘도 눈이 떠졌구나….'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은 뭐라고 쉽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어나는 몸을 무겁게 만든다.
스스로도 왜 이런 쓸데없는 감정 속에서 아파하는지 잘 모른다. 어느 정도 짐작 가는 이유는 있지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매일 같이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숨 쉴 수 있는 몸뚱이 하나면 된다. 그래서 난 그냥 살고 있다.
비록 이런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 메고 있더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하루를 좀 더 다르게 보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100days' 프로젝트로 아침마다 찍는 일출 사진, 아침마다 읽는 《연탄길》, 아침마다 하는 작은 명상과 스트레칭.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크게 바뀌는 것 없이 매일 느끼는 주체할 수 없는 허무라는 괴물은 나를 집어삼킨다. 구름이 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를 고민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세상을 고민하고, 책을 읽으면서 다른 세계를 꿈꾸고, 글을 쓰면서 그런 감정을 정리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기에.
일상의 순간, ⓒ노지
사람들에게 '요즘 사는 게 지겹지 않아요?' 같은 말을 건네면, 그럴 때에는 '일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매일 치료를 받으러 가는 병원에서 그냥 문득 심경의 변화로 필요 없는 말을 간호사에게 건네면서 작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조금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나 :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언제나 웃으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여 치료사 :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오늘 정말 힘들었는데요. (웃음)"
남 치료사 : "우리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치료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무슨 힘이 나겠어요?"
(주절주절)
다른 치료사 분이 웃으면서 지나간다.
나 : "보세요. 저 분은 언제나 저렇게 웃으면서 있잖아요? ㅋㅋ"
여 치료사 : "그러네요. 아하하."
나 : "가끔 삶이 지겨워질 때가 있잖아요? 전 요즘 참 사는 게 너무 지겹고 힘들어요. 어휴."
여 치료사 : "그럴 때에는 일탈이 필요하죠."
나 : "그런데 제가 그럴 때마다 하는 게 책 읽기 밖에 없어서..."
여 치료사 : "일탈을 책을 읽으시는 거에요? 우와..."
나 : "딱히 뭐 할 게 없어요. 저는..."
(이하 생략. 이 이야기는 기억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과 조금 다를 수 있음.)
일탈이라고 말하면, 보통 무엇을 말하는 걸까. 난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일탈은 책 속의 세계로 도망치기는 거나 종일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마구 잡이로 먹는 거다. 한때는 종일 게임을 하면서 보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게임을 장시간 하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만 받는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냥 일탈해서 노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여행을 다니는 것일 수도 있겠고, 친구와 만나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노래방에서 몇 시간동안 노래를 부르는 것일 수도 있겠고, 그냥 곤드레만드레 술을 마시면서 밤 문화를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런 것을 할 줄 모른다. 이건 내가 고상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난 그런 식으로 일탈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혼자서 있는 시간을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내게 그런 일탈은 오히려 해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그게 바로 책 읽기다. 과거에 내가 읽었던 책을 다시 쌓아 놓고 읽거나 블로그에 올린 《내 마음에 품은 비전과 목표》 같은 글을 다시 읽으면서 나를 채찍질 하거나 만화책과 라이트 노벨을 잔뜩 쌓아두고 읽으면서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런 것밖에 없다. 이게 내 인생에 즐거움을 주니까.
그리고 요즘은 그냥 전자 피아노라도 한 개 있으면, 좋아하는 곡을 열심히 연습하면서 장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이 찌든 일상 속에서 허무함을 속에서 헤맬 때에는 그저 이렇게 하는 것밖에 없다. 현실은 바뀌지 않고, 내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계속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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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탈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현실에서 도망치는 게 일탈인지, 아니면, 조금 다르게 세상을 접근하는 게 일탈인지, 정말 비뚤어지는 게 일탈인지. 내가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 일탈이라는 단어의 개념은 사전에서 찾을 수 있는 불량배의 행동밖에 없다. 그래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에 나는 트위터에 '빨래를 널면서 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을 쐴 때, 이게 사소한 행복이 아닐까'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빨래를 탁탁 털면서 널 때 느낀 작은 감정을 글로 적어서 썼던 글이다. 뭐, 이것도 일종의 일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의미 없어진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니까.
그 이외에도 나는 몇 개의 일탈이 있다. 야구 중계를 보면서 괜히 더 감정을 싣는 것도 그런 것일 수도 있겠고,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주인공에 심하게 감정이입을 해서 함께 울거나 아파하는 것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뭐, 후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더 슬프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난 그렇다. 나는 일탈, 노는 방법을 잘 모른다. 군대에서 돌아와 새벽까지 놀다 들어오는 동생 같은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와의 약속을 깨뜨려가면서 벗어나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통금 10시, 자는 시간은 늦어도 11시 전에는.)
난 내가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 가는 다른 길에서 방황하거나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사는 게 좀 더 힘들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기어가 들어가 있을 때는 무척 즐겁지만, 그 틀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죽을 것 같은 허무한 공백에서 빠진다.
오늘 글도 그냥 그렇게 쓰면서 작은 일탈을 꿈꾼 한 사람이 가벼운 넋두리가 되어버렸다. 혼자 쓰는 글이면서도 누군가 읽어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글. 이건 내 욕심이 진하게 묻어있는 아주 사적인 글이면서도 답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내놓는 푸념이다. 반복되기만 하는 일상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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