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세상이 부정적인 겁니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3. 10. 2. 07:30
선생님왈, "왜 그렇게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느냐?" 나는 대답했다. "세상이 부정적이니까요."
어제 10월 1일은 제가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생일이었죠.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10월 1일에 퇴원을 하여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 다 낫지는 않았고, 통원치료를 해야 합니다.) 생일이나 퇴원을 하였다고 하여 평소의 일상과 다른 어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똑같이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그런 하루였죠. 병원 생활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몇 가지 정리하다… 전 생일을 맞아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더 정리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 끝에 쓰게 된 것이 바로 오늘의 이 글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그리 썩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제게 보이는 세상은 온통 탁한 검정으로 칠해진 세상이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릴 때의 세상은 알록달록하고, 빛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대부분 아주 밝게 웃으며 그 시절을 보내니까요. (뭐, 그게 지금 시대의 청소년에게도 해당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네요.) 그러나 제게 어린 시절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탁한 검정으로 칠해진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저는 아직 '사회'를 말하기 이른 나이에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죠. 중·고등학교 때에 있는 과제 중에서 글쓰기, 혹은 글쓰기 대회에서 제가 다뤘던 주제는 항상 '사회문제'였습니다. (그 당시부터 가지고 있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제가 지금 이렇게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글을 쓰고, 그런 말을 자주 한 까닭에 고등학교의 제 별명은 '세상 비판 노지'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 별명은 싫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의 저는 중학교 시절과 비교하면 좀 더 밝았고, 여전히 세상에 돌아가는 모습에 많은 불만이 있었음에도 어느 정도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시절이었거든요. 그 별명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이 부른 것이기도 하기에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저 자신이 세상을 비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 시절의 저는.
그 무렵에 한 선생님께서 제게 "왜 그렇게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느냐?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마라. 세상에는 아직 네가 보지 못한 좋은 일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것이 신경이 쓰이셨나 봅니다. 저는 선생님의 그 말씀을 수긍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래도 세상에는 너무 추잡한 일이 많고, 약자는 절대적으로 억울하게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는 생각을 접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과거를 살아왔던 저는 어른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학교의 뒷모습을 잘 알고 있었고, 어른들이 감추려고 하는 어른들의 진짜 모습을 보면서 살았었으니까요. 저는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으려는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사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죠.
ⓒ학교의 눈물
24살이 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생일이 지났으니 25살인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좋지 않은 일이, 그냥 추잡스럽고 더러운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죠. 이건 제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세상이 부정적인 겁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생각지도 못한 많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학교입니다. 이미 학교는 학교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부패한 사회의 현장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왕따 등을 비롯한 각종 강력 범죄들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어른들이 상상하는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습니다. 그저 어른들은 외면하고 있을 뿐이고, '그렇지 않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죠.
그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우리 성인이 사는 사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 여기서 학교는 초·중·고등학교만이 아니라 대학교도 포함하는 겁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잠재적인 제약이 있었던 것에 비해 대학교에서는 그 제약이 없어지니까요. 엇나간 아이들은 계속해서 엇나가고 있고, 지금도 최악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학교의 진짜 모습이고,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학교의 진짜 색인 탁한 검정이죠.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제가 사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었죠. 우리 주변에 '빛'만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큰 착각입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반드시 존재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삼킬 정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 내에서는 그 그림자가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는 빛을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아마 자신이 관심이 없기에 모를 뿐이지, 우리가 평범히 사는 이 순간에도 탁한 검정의 그림자가 열심히 빛을 삼키고 있습니다. 무차별 살인이나 폭행 등의 사회적 범죄는 빛이 어둠에 침식당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종의 스파크 같은 것입니다.
ⓒ애니메이션 캡쳐
우리가 보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에서는 언제나 '선(善)'이 '악(惡)'을 이기고, 모두가 따뜻한 빛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삽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악(惡)'이 '선(善)'을 이깁니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큰 선'은 '큰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그게 세상의 순리입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 '큰 선'을 만들더라도 절대 힘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큰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지금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가진 사람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저 '큰 악'을 두고 욕을 하고, 비판하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 '선'이라고 자칭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죠.
10월 1일, 제 생일을 맞아 제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여전히 세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저는 힘 없이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죠.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제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세상이 부정적인 겁니다. 그래도 그 24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책을 읽었고, 따뜻한 애니메이션을 보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만났고, 제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나마 제가 웃을 수 있고, 오늘 하루를 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지난번에 '당신이 보는 대한민국은 어떤 대한민국입니까?' (링크) 글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이 보는 대한민국을 답해주셨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 보시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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