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 바위로 계란 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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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모습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니라 바위로 계란 치기입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말이다. 이 말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무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계란으로 바위치기다'고 말하며 비유하는 말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자주 읽거나 듣는 말이다. 우리는 이 말을 여러 사회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데,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대립 관계에서 이 말이 잘 적용이 되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와 정치 분야만이 아니라 교육과 다른 다양한 분야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 2013년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인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NLL 포기 발언이 담긴 남북대화 기록 실종,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대기업 대리점과 본사의 갑과 을의 관계… 등 그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많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 갈등은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으로 힘없는 서민들이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에, 바위에 부딪혀 깨지는 계란에서 흘러나온 액 같은 사람들의 피눈물도 적잖다.


 힘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무모하게 바위를 향해 몸을 던지는 건 큰 이유가 없다. 오로지 '숨 쉬고 살고 싶다'는 그 간절한 작은 바람 때문이다. 자신이 '정의'이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아니고, 크게 비틀어진 사회의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정말 오로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란들은 바위가 절대 쉽게 깨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과감히 바위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마이뉴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일이 최근에서야 일어난 것이 아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던 옛날부터 이 같은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단지, 우리는 '내 일이 아니니까' '내 먹고살기도 힘든데, 다른 사람 신경을 쓸 여유가 어디 있어?' 식으로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수많은 계란이 바위를 향해 과감히 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의 모습이 고결하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 먹고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그들의 모습은 눈물이 난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치기' 말이 가진 것처럼 그건 무모한 일일 수밖에 없다. 계란으로 아무리 수천 번 바위를 친다고 하더라도 바위가 산산조각이 날 리가 난무하다.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는 가상 현실에서처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걸 기대하는 건 어렵다. 그저 조금이라도 바위가 움찔하는 정도만 되더라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봐야만 하는 수준이다. 사회적 약자가 아무리 힘을 모으더라도 하나의 큰 바위를 부술 수 없다는 건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라 '바위로 계란치기'가 일상다반사다. 복지 확대를 위해서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하는 건 부자증세를 늘여 지금도 탈세를 서슴지 않고 있는 부자들의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과 정부는 부자는 건드리지 않고, 오로지 서민과 중산층을 상대로 세금을 늘릴 계획만 세우고 있다. 말은 세금을 더 거둬들이지 않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부자는 그대로 유지하고 서민들의 간만 빼먹으려고 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지난 MB 정권 때 무리하게 시행했던 4대강 사업도 피차일반이다. 이 같은 일은 정부에서만 아니라 정부에 영향을 미치고, 정부가 영향을 미치는 기업에도 퍼져 전반적으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바위가 더 단단해지고,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그 커다란 바위 앞에서 깨져야만 했던 순간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게 될 것이다. 나는 무섭다. 내가 힘없이 그냥 바로 깨져버릴 것 같아서. 꿈은 크게 가지고 있고,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바위의 위협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가 '딱딱' 하고 떨릴 정도로 두려움이 느껴진다. 사회적 약자는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고, 이 약자라는 자리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많은 사람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으로 바위에 부딪히고 있지만, 모두 '언젠가는…' 같은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감히 '포기하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 절망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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