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불충분, 이 책을 쓰기까지 10년이 걸렸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3. 9. 19. 07:30
니시오 이신의 최신작, 소녀 불충분. 이 책을 쓰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어느 작가가 한 작품을 쓰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특히 소설처럼 뒷이야기가 연재되는 작품은 그 완성까지 걸린 시간을 평범한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없을 수준이다.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책 종류 중 하나인 라이트 노벨이라는 소설에서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작품이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채 긴 시간 동안 공백을 가지고 있고, 완결을 맞이한 몇 작품도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었다. 아마 나처럼 주변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나 한 작가의 작품을 읽어오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이번 9월에 읽을 도서목록을 카트에 담다가 니시오 이신의 최신 작품 '소녀 불충분'이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 책을 '귀신 이야기'라는 하나의 연재 시리즈를 구매하다 우연히 보고, 책의 띠지에 '이 책을 쓰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글귀가 상당히 눈에 띄여 과감히 책을 구매하였다.
'니시오 이신'이라는 작가는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런 작가이다. 나처럼 라이트 노벨을 많이 읽는 사람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그의 작품은 단순히 '오타쿠'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이 묘하게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니시오 이신의 최신작 '소녀 불충분'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를 얼마나 소개할 수 있을지,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동안 읽었던 '소녀 불충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글이 올라가는 19일은 오후에 내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언제 퇴원하여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글보다 먼저 이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작품이 누구에게나 꽤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었기에… 꼭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 20일에도 글 한 개가 예약 발행될지도 모른다.)
소녀 불충분, ⓒ노지
소녀 불충분. 그게 이 작품의 제목이다. 제목만 읽어서는 도대체 이 작품이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지레짐작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나도 처음에 이 작품을 읽을 때에는 기존 이야기 시리즈처럼 '괴이'를 다루는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소설인가? 작가의 경험담인가?'는 착각을 할 정도로 작품에 푹 빠져들어 사실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책은 이야기를 작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책인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니시오 이신의 경험담이 반영되어 쓰인 이 작품은 그동안 '이야기 시리즈(모노가타리 시리즈)'를 즐겨 읽었던 사람들이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작가의 독백으로 조금 길게 이야기를 이어가기 때문에 그동안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신선한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지겨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씩 그 이야기를 읽어가며 뒤로 가면 갈수록 작품이 지닌 그 매력에 쉽게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
'소녀 불충분'은 어떤 화려한 액션이나 긴박감이 지나치게 넘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제목에서 볼 수 있는 '소녀'라는 한 명의 인물과 '불충분'이 뜻하는 의미, 그리고 작가라는 독백 인물과 소녀라는 인물이 만나서 벌어지는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이야기다.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 참 모호한 말로 책을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한계이기도 하지만,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그 이상으로 표현하기에는 내가 가진 문장력이 아직 부족한 점을 고려해주기를 바란다.
여기서 소녀는 조금 이상한 소녀다. 평범한 소녀이지만, 이상하다. 계속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소녀는 한 가지 사건을 통해 작가를 알게 되고, 소녀는 작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감금하게 된다. 일명 납치다. 소녀에게 납치당하는 성인 작가(아니 이때는 지망생이라고 표기하고 있었나?)라니. 순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소녀는 거기서 여러 행동을 하게 되고 작가는 소녀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 정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괴이'했다. 소녀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책에서 읽을 수 있는데, 그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어째서 감금 이틀째인 그날, 자신의 급식을 반이 아니라 전부 나에게 주었는가… 나는 그 점을 물었다. 그때, 그 타이밍에.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U는 곧바로 대답했다. 질문의 답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또?
그 불가사의한 단어에 대해 내가 다시금 질문하니 U는,
"예전에 죽어 버렸거든요. 키우던 고양이가."
라고 말했다.
"더는 죽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기르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U는 세면장에서 나갔다. '느긋하게 하세요.' 라는 인사를 한 뒤…. 그런 인사도 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그보다 조금 더 놀란 것은 역시 U가 말한 이유였다.
그 짧은 말에서 전부를 예상하기는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작가 지망생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추측해 보면, 아무래도 U는 예전…이라고 해도 초등학교 4학년이니 그렇게까지 옛날은 아닐 테지만…, 아무튼 키우던 고양이를 죽게 만든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먹이 주는 걸 잊었다든가 하는 이유로….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먹이 주는 것'을 잊었다고 U에게 지적했다는 이야기다.
극단적인 행동을 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라고, 일단은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을 감안해도 너무 극단적이기는 했지만….
애당초 그 반성하는 마음이 제대로 남아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숙제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혼자 목욕탕에 남겨 두다니. 이게 애완동물이었다면 확실히 도망쳤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U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데에도 인간을 감금하는 데에도 미숙하다는 이야기가 되리라. (p209)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욕실 문을 다음 U를 내보낼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런 내 안위에 대한 염려를 넘어선 다른 감정이 내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녀 성애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나는 문장을 이런 식으로 쓰지 못했으리라. 모종의 사회적 제재를 받았음은 물론이고, 사회 복귀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말한 자살이라도 했을지 모른다.
요즘 세상도 세상이거니와, 도시에서는 표현을 규제하는 조례도 실행되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여기서 U의 부드러운 나체를 자세히 묘사할 수는 없다. 애당초 개인적으로는 그 조례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이야기가 빗나갔다, U의 나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세한 묘사는 생략하겠지만, 내가 그녀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이유를, 내 명예를 위해서라도 지금 묘사해야겠다. 아니, 내 명예? 그런 것이 어디에 있나. 부끄럽기 짝이 없다. 장딴지나 등의 베인 상처 정도로 투덜대던 자신을 이때 나는 진심으로 부끄러워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U의 몸, 그 옷 속의 피부에는 푸른 멍과 베인 상처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 (중략)
하지만 얼굴과 목, 팔다리를 제외한 몸 전체에 폭행을 받은 흔적이 있는 여자아이에게, 동정과 딱함 말고 대체 무엇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내 가슴을 조금 더 죄어들게 만든 것은, U 본인은 그걸 거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점이었다.
"이 파래진 곳을 누르면, 아파요."
그런 식으로, 마치 그 부위가 지압 포인트라도 되는 듯이 말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음이 망가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망가져? 무슨 소설 같은 표현을 쓰는 건가, 나는.
압도적인 현실에 대해.
U가 내 몸을 벤다는 행위에 거의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도, 나이프로 찔러 여기까지 유도한 것도, 평소 자신이 당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U는 그렇게 폭력으로 위협당해 가며… 때로는 나이프가 자신에게 날아오기도 하는 생활을 해 왔음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아이는 부모를 배우는 법이다.
부모를 보고 배운다…. 자각이 없는 U에게 그런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몸에 있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들이 부모 탓에 생겼다는 건 틀림없으리라. 가능성만으로 말하자면 학교에서 폭력이 섞인 따돌림을 받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초등학교 4학년의 따돌림으로 그렇게까지 처참한 꼴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폭력은 도를 넘을지도 모르지만, 도를 모르는 탓에 들키지 않게 얼굴을 빼고 때리는 교활함은 중학생이나 되어서야 생겨난다.
게다가 U의 몸을 덮은 상처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나아 가고 있었다…. 즉, 지난 열흘 이내에 받은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폭력의 흔적은 없었다.
부모가 '없어지고' 난 지난 십 수 일 동안, U는 폭력에서 해방되어 있었던 것이리라…. (p216)
위에서 읽을 수 있는 두 개의 인용 이야기는 '소녀 불충분'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왜 더욱 작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지만, 여기까지 이야기가 도달하는 데에는 꽤 긴 이야기가 필요했다.
이 부분을 굳이 언급한 건 '소녀 불충분'이라는 제목이 가진 의미를 내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더 이해가 쉬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이야기가 작품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우의 소박한 이야기'(링크)에 올릴(정확히는 올라갈. 22일에 예약 발행을 해두었다. 지금 나는 병원에서 하루 외박을 나온 몸이니까.) 니시오 이신의 또 다른 작품 '귀신 이야기'의 감상 후기는 이렇게 쓰지 않았다. 그러나 '소녀 불충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글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책에서 읽을 수 있었던 문장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책에 대한 내 느낌(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어떤 식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어디 한구석에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다'는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리고 책의 더 뒷부분에서는 위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보다 더 놀랄 말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자세한 건 스포일러를 자제하도록 하겠다.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다른 사람 후기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라고 말한 것을 읽어보았는데,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 번쯤 사서 읽어보는 건 절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니시오 이신이 이 책을 쓰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궁금해지지 않는가.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10년이 걸렸을까…. 그 호기심을 풀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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