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3. 5. 15. 07:00
스승의 날, 지금의 나는 소중한 선생님이 있었기에 나는 한 뼘씩 자랐다
5월 15일. 오늘은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는 날이다. 평소 학교 선생님에 관하여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한 사람이라도 이런 날에 '아, 그 선생님은 정말 좋은 선생님이셨지.'라며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지만, 누구나 가슴에 남는 선생님은 있기 마련이다.
내게 가장 소중한 선생님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책'이다. 스승의 날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무례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작은 우물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은 학교의 선생님이 아니었다. 바로 책이었다. 그저 혼자서 울기만 하면서 '나는 도대체 왜 태어났을까? 그냥 세상이 멸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만으로 하루하루를 온라인 게임으로만 보내는 내게 '너가 모르는 세상은 더 크고, 더 멋진 세상이다'는 사실을 가르쳐줬었다. 그래서 내게 가장 소중한 선생님은 바로 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책이 내게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 선생님이라면, 이충권 선생님께서는 내게 그 넓은 세계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지략을 가르쳐주신 아주 소중한 선생님이시다. 이충권 선생님은 난 아직도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이충권 선생님은 인터넷 강의에서 '제우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신데, 요즘 세상에 보기 어려운 진짜 선생님의 자질을 갖추신 몇 안 되는 분 중 한 분이시다. 이충권 선생님의 강의는 단순히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강의를 듣는 사람에게 인생 그 자체를 가르쳐주셨었다. 비록 오프라인에서 그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기회는 없었지만, 온라인을 통해서도 선생님의 그 뜨거운 가르침은 가슴에 와 닿았다. 이충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하나하나는 지금도 가슴 깊숙이 자리 잡아 내가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중 내 프로필로 쓰고 있는 이충권 선생님의 말씀은 바로 아래의 말씀이었다.
"니가 지금 게으름을 피우면 나중에 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너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살아야 한다."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노지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시련과 고통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의 꽃은 핀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지금의 시련과 고통이 곧 지나가리라 믿고, 단단히 버텨야만 한다.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삶을 살지 못하는 건 자신이 강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가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며 버텨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선생님이 칠판만 보며 일방적인 수업을 요구하는 우리 시대에서 누가 그런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그런 우물 안의 세계를 나도 살았다. 그런 내게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더 넓으면서 멋진 세계, 내가 당당하게 즐기며 살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바로 책이었다. 비록 내가 사는 세계가 넓고, 내가 당당하게 즐기며 살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내가 과연 그런 사람들의 삶처럼 멋진 삶을,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는 걱정만 했었다. 바로 여기서 세상에 도전할 수 있는, 과감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략을 준 선생님이 바로 이충권 선생님이시다. 이충권 선생님 덕분에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다 그렇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어느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훌륭히 지금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진짜 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 있기에 오늘날 같은 사회에서도 여전히 인재는 만들어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존, 너 여기 좀 앉아보렴."
"예. 아버지."
"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을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냔 말이다."
베스킨라빈스의 창업자인 어니 라빈스는 아들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 지금 제 정신이야? 이놈아, 네가 지금 배가 불렀구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알기나 해? 어마어마한 기업의 상속자라고 다들 부러워한단 말이다. 그걸 마다해? 다음부터는 그런 농담마라. 그리고 내 아들로 태어난 걸 인생 최고의 행운인 줄 알아라. 알았어?"
존 라빈스는 고개를 내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저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정말로 저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지 않을 겁니다. 엄청난 유산,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왜 그러는지 네 말 좀 들어보자."
존 라빈스는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말했다.
"삼촌의 경우만 봐도 그래요. 삼촌은 매일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쉰 살이 조금 넘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잖아요. 우리 가족들을 보세요. 다 뚱뚱해요. 아버지도 지금 건강에 문제가 있잖아요. 고혈압에, 당뇨병에…… 온몸이 다 종합변원이잖아요. 이게 모두 아이스크림 안에 들어있는 포화지방과 설탕 때문이에요. 그리고 지금 지구촌 한쪽에서는 굶어죽는 아이들이 수두룩합니다. 2초에 한 명씩 죽고 있다는 걸 아세요? 그런 와중에 제가 서른 두 번째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야 합니까?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존 라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그는 누구나 꿈꾸는 대기업 상속자의 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진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브리티쉬컬럼비아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오염되었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그 섬이었다. 섬 생활은 한마디로 야생, 그 자체였다. 도시처럼 모든 것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생활은 불편했고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가장 힘든 건 음식이었다. 섬에서 나는 식물과 생선으로만 끼니를 해결했다. 햄버거나 치킨, 아이스크림 등 패스트푸드의 달콤한 것에 익숙해진 몸이라 그런 것들을 하루아침에 끊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아, 먹고 싶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술술 나왔다. 다시 도시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참아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섬 생활에 적응한 것이다. 그의 몸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머리가 맑아지고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그는 섬에서 근 10년간 생활했다. 그곳에 살면서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 제대로 된 음식과 아름다운 환경을 위해 내 일생을 바칠거야."
도시로 돌아온 그는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도시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패스트푸드가 건강을 해치고 환경을 망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책을 통해 패스트푸드를 만드는 과정을 폭로했다. 뼈와 근육을 가진 동물은 넓은 목장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자라야 하는데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단기간 내에 몸집을 불리기 위해 사료에 항생제와 호르몬제, 방부제 등을 섞는다는 사실을 낱낱이 공개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또한 그는 패스트푸드점의 감자튀김에 대해서도 말했다. 알이 굵은 감자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감자 품종만 기르다 보니 땅이 황폐해지고 다양한 생물종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존 라빈스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췄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건이란 당신도 알겠지만 어마어마한 상속입니다. 그런데 왜 그걸 포기하고 이런 길을 가시는 겁니까? 당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까?"
존 라빈스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포기한 것보다 훨씬 더 향기로운 꿈을 찾았고, 진짜 제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요."
앞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남들이 사회적으로 가장 좋은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진짜 삶을 선택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는 누구나 내 인생을 내가 즐길 수 있는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아이의 선생님 역할을 하는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부모님… 모두가 그저 현실에 잘 처신하면서 자신이 살고 싶어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이 살고 싶어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받고 있다. 오히려 세뇌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런 가르침이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같은 스승의 날에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늘어나는 이유. 그건 진짜 스승이 점차 적어지는 세상이 낳은 하나의 재앙이 아닐까?
오늘 같은 날에 나는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같은 책을 통해 선생님이 해야 할 역할에 관하여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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