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디자이너 윤성준이 말하는 성공철학, 반 발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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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디자이너 윤성준이 말하는 성공철학, 반 발짝의 힘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성공'만을 바라보면서, 늘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리하고 있는 사람이 적잖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페이스를 늦추게 되면, 남보다 뒤처지게 되고… 그러다가 자신은 결국 실패할 수 있다는 그런 걱정 때문에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성공 조급증에 걸리게 된 것은 어릴 때부터 '빨리해라', '빨리해야 남을 이길 수 있다', '남보다 늦으면 니 성공은 그만큼 늦다'는 등의 말을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성공은 오로지 '속도'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속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 자신이 성공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그 성공을 위해서 내가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이 말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무슨 말이야? 속도가 가장 중요하지. 남들보다 더 빨리 선취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는 법이다.'고 생각하며 내 의견에 반대의견을 표할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런 '성공 조급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헤어디자이너 윤성준 씨는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지 않고, 정말 인내의 시간을 거친 후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헤어디자이너가 되었다. 이 분이 '강연100℃'에 나와서 한 강연의 주제는 바로 '반 발짝의 힘'이었다. 한 발짝이라도 어려우면, 천천히 반 발짝씩 가게 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에서…



헤어디자이너 윤성준, ⓒKBS1 강연100℃


 윤성준 씨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는데, 그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어야만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부모님께서 자주 다투시게 되고, 여러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게 되었다. 많은 부부의 이혼은 바로 이렇게 작은 일에서 시작되어 그 다툼이 일상이 되고, 서로에 관한 믿음과 마음이 멀어지게 되면, 이렇게 갈라서게 된다. 이때 윤성준 씨의 나이는 불과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윤성준 씨는 그때 우리 집이 빚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만큼 자주 이사를 하면, 웬만한 부자가 아닌 이상 빚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략 추측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그 가난 때문에 큰 고모 댁에 얹혀살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기죽지 마라'고 말씀하시면서 윤성준 씨를 가르쳤었다. (아마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식의 기만큼은 죽이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이런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지금 현재의 어머니인 새어머니와 결혼을 하시게 되었다. 그 당시에 새어머니의 집안의 반대가 상당히 심했었는데, 윤성준 씨가 동생과 함께 그 새어머니 댁을 찾아가 "엄마라고 부를 테니까 엄마가 되어 주세요."라고 말하며, 진심을 서로 주고받으며 끝내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새어머니가 워낙 젋다 보니… 윤성준 씨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는데, 그가 새어머니를 '엄마, 엄마'라고 부르면, 주위에서 조금 비딱한 시선으로 그와 그의 가족들을 쳐다보곤 했었다. 그 시선이 곱기는커녕, 정말 뭔가 이상한 사람을 보는 시선이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조금 다른 모습을 한는 사람을 보면… 늘 비딱한 시선으로 사람을 보기 마련이니까. 이런 잘못된 편견이 바로 사회 부적응자를 양성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때 윤성준 씨는 그런 시선이 싫어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상당히 비뚤어진 길을 걸었었다고 한다. 보통 비행 청소년들이 하는 가출도 하고… 공부하는 학생이기보다는 노는 학생으로….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신의 아버지가 그를 불러 "니가 똑바로 서야 니 동생도 똑바로 선다"고 그를 훈계하셨었고, 그는 정신지제 3급인 셋째 동생을 보며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바뀌기 시작했다.



헤어디자이너 윤성준, ⓒKBS1 강연100℃


 윤성준 씨는 셋째 동생을 보며 '일을 해서 돈을 벌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미용실에서 남자 헤어디자이너가 없는 것을 보고… 그 분야에 도전하게 되었다.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술을 익혀가던 그는 대학과 미용을 놓고 고민하다 미용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정말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그는 25살에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의 정말 승승장구를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승승장구하는 동안 그는 조금 더 큰 꿈을 바라보았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태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태국으로 건널 갈 때, 윤성준 씨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 많은 돈을 가져가지 않고, 단돈 200만 원만을 들고 갔었다. 집도 작은 집을 택했었고,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 헤어디자이너답지 않게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했었다. 물론, 이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도 정말 한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을 때가 있었지만, 가족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악착같이 버터 냈다.


고대의 군사 지휘관들은 절박한 필요성의 강력한 힘과, 그것이 병사들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용기를 발휘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부하들이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일을 우선적으로 행하였다.


- 니콜로 마키아밸리


 그러한 절실한 노력 끝에 그는 태국에 가게 1호점을 개업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계속해서 2호점 여는 등 태국 미용 시장을 넓혀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는 태국의 총리를 비롯한 각종 유명 연예인을 전담하고 있는 최고의 헤어디자이너가 되었다. 그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 아닌, 정말 하나부터 끝까지 느리더라도 반 발짝씩 내딛으며 피땀 흘리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었다.



헤어디자이너 윤성준, ⓒKBS1 강연100℃


 그렇게 자신의 강의를 마치면서, 윤성준 씨는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성공의 기준을 저는 제물로 잡지 않았습니다. 제 성공의 기준은… 우리 셋째 동생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온전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 저의 원동력은 가족이거든요. 제 성공의 기준은 가족의 행복입니다. 그게 첫번째고요. 두 번째, 사업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고 내가 뭘 정말 잘 하는지를 보고, 그것에 맞춰서 세부계획을 세워서 하나하나씩 해내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올라가다보면, 자신이 못하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깁니다.


 여러분도 뭔가 성공을 바라신다면… 가정이 형편이 나쁘나 뭐가 나쁘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저보다 안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 가난했다? 그런 거는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성공하는 데에 반 발찍씩 가다보면 한 발이 되고, 백 발이 됩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성공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는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과 학생들에게 빠른 결과를 요구하는 많은 부모님과 선생님, 주위 어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남들보다 먼저 기회를 잡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하지만, 그 기회는 무조건 서두른다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자신에게 오는 것도 아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놓치는 것이 더 많은 법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바로 멀리 보면서,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느리지도 않고, 여유 있게 가는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해나간다면, 비록 남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더라도… 먼저 도착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철학이며, 이번 강연100℃에 출연하여 '발 발짝의 힘'을 이야기한 윤성준 씨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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