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100℃ 한택주, 간절한 노력이 나를 구한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2. 9. 19. 07:00
가죽 수선 장인 한택주, 간절한 노력이 나를 구한다
가죽 수선 장인 한택주, ⓒ강연100℃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드물 것으로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세상 살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하곤 하지만, 평범한 우리와 달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세상 살기가 어려울까…? 그런 생각을 하면 멀쩡한 육체를 가진 우리가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나약한 마음가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런 사람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억대 재벌이 아닌 이상 평범한 한 명의 소시민으로 살아가기에 너무 가혹한 세상이다. 이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꿈꾸셨던 '사람 사는 세상'은 MB정권 들어서 정말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상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지금 같은 우리 사회에서 '살기가 너무 어렵다'는 말은 나약한 마음가짐 때문이 아니라, 정말 사회가 그렇게밖에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는 간절히 노력해야 한다. 삶을 결코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이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 환경 속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 노력하여 그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다. 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거나 우리보다 더 힘든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오늘, 나는 그런 사람 중 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택주'라는 분이신데, 이 분은 부산에서 가죽 수선을 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누군가는 '에이,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구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분은 소아마비라는 것을 겪어 다리가 불편한 상태에서도 자신의 꿈과 비전을 갖고 꿈을 이루며 열심히 살아오셨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계신 분이시다.
가죽 수선 장인 한택주, ⓒ강연100℃
한택주 씨는 2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가 불편했었다. 어릴 때에 친척들이나 가족들이 모이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한택주 씨의 이야기였다. 그 상황에서 가족들의 입에서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한택주 씨를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겼으며… '저게 커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을까?' 혹은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등의 말을 하였었다.
보통― 그런 말을 들으면 심하게 좌절하거나 성격이 비뚤어져 버리곤 하는데… 한택주 씨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절망과 좌절보다는 혼자서 잘 살아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잘 살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의 계기는 '가난'이었다.
그의 집은 상당히 가난하여 굶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날 종일 굶었던 여동생이 학교에 갔다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 그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여동생을 데리러 갔었는데, 그의 여동생은 배가 고파서 오는 길 도중에 쓰러져 있었다. ('무슨 하루 굶었다고 배고파서 쓰러져?'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의 여동생은 차비가 없어서 3km나 되는 등굣길을 걸어서 왕복했었다.) 쓰러진 여동생을 보며 그는 눈물조차 나지 않고, 그저 가슴에 피눈물이 흐르는 듯한 비통함을 느꼈다. 그때 그는 '절대 가족을 굶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이것이 그가 '잘 살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다른 하나의 계기였다.
한택주 씨는 강연100℃에서 이 이야기를 하며 중간마다 계속 이야기를 멈췄었다. 그때의 그 고통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그의 눈에는 비장함과 그 시절의 슬픔이 고여있었다.
가죽 수선 장인 한택주, ⓒ강연100℃
그는 먹고살기 위하여 구두닦이를 배우려 길거리에 나갔다. 열심히 사람들의 구두를 닦았으나, 실력이 형편없어 도리어 혼나기가 일쑤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두를 맡기고 간 한 경찰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온갖 노력을 해서 경찰 아저씨의 구두를 닦았으나, 경찰 아저씨로부터 '이 녀석아, 이렇게 구두를 닦고 어떻게 돈을 벌 셈이냐?'라며 혼났었고― 그 아저씨는 손수 구두약과 솔을 가져와 자신이 군대에서 장교의 구두를 잘 닦았었다고 말하며 구두닦이 기술을 가르쳐주셨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구두닦이 기술을 경찰 아저씨로부터 배워 제법 구두닦이를 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술로 구두닦이를 하며 번 돈을 가지고 제일 먼저 쌀을 샀었다. 여동생이 다시는 굶지 않도록 하려고….
그러나 1년 후 그곳에 공사를 한다면서 자리를 비키라고 하는 바람에, 그는 서면으로 수제화 기술을 배우려 갔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견습생이 되어야 했으나, 그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다. (보통 견습생은 잡일과 심부름을 해야 하는데, 그는 몸이 불편하여 그런 일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 그렇게 20번 이상 퇴짜를 맞았었는데, 한 장인 선생님이 회사에 사표까지 내면서 한택주 씨를 거둬주셨었다.
견습생을 하는 첫 3개월 동안은 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3개월을 버티기 위해 10km의 길을 걸어서 퇴근하기로 하였었다. 그렇게 매일 8시간 동안 걸었던 퇴근길이었는데, 그 모습을 본 장인 선생님께서 "너 걸어가느냐…?"고 물으셨었고, 다음날 선생님은 그에게 월급을 챙겨주셨었다. 그 덕분에 그는 차비가 생겨 버스로 오고 갈 수 있게 되면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그 시간을 활용해 정말 열심히 연습하여 1년 후에 기술이 크게 발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97년도에 국제금융위기 'IMF'가 터지면서 수제화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고, 그는 1평짜리 집을 구해 구두 수선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래도 돈이 안 되어 아내와 함께 우유배달, 학원 청소 등의 여러 가지 일을 하였었고,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옆집에서 그에게 하청일을 주기 시작했고― 그렇게 살면서 그는 8평짜리 가게를 열게 되고, 내 집마련까지 하게 되고, 강연100℃에 나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가죽 수선 장인 한택주, ⓒ강연100℃
한택주 씨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어릴 때,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이 '커서 남의 짐이 되지 않겠나?' 그 말을 듣고, 절망과 좌절을 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제가 그 긍정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뭐 아무것도 없었지만, 돕는 손길이 많이 나타났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세상 가운데, 어떤 환경 가운데 처해 있을 때―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행동으로 옮길 때, 그리고 그것을 간절히 원할 때 어떤 것이든 다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꿈이 있으면, 그 꿈을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옮길 때…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한택주 씨가 강연100℃에 나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살아오면서 겪은 일이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꿈을 꾸고― 비전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꿈은 꿈으로 남아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꿈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지금 그 정도로 밖에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 정도의 고통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찾아 노력하고, 결국에는 그 꿈을 이루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바로 한택주 씨처럼 말이다. 우리도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노력한다면― 반드시 우리의 꿈을 이룰 수가 있다.
나는 많은 사람이 한택주 씨의 강연 주제 '간절한 노력이 나를 구한다'는 것처럼― 간절한 노력을 통해 자신을 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너무 비관적으로 인생을 살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노력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길을 가다 보면, 한택주 씨처럼 자신을 도와주는 많은 손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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