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산문집 선명한 사랑을 읽으면서 느낀 사랑
- 문화/독서와 기록
- 2024. 7. 14. 15:28
내가 '고수리'라는 이름의 작가를 알게 된 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라는 책이 계기가 되었다. 해당 책은 카카오가 운영하는 브런치 북 프로젝트를 통해서 금상을 받으면서 출판사와 계약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된 책이다. 당시에는 나도 브런치 북에 열심히 글을 적으면서 출판의 꿈을 꾸었지만, 그 꿈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나는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글을 써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크게 느꼈다. 고수리 작가의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단>는 마치 일기처럼 적은 글이라고 해도 글 하나하나에 고수리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 녹아있어 책을 읽는 독자도 따뜻해졌다.
이런 글은 세상을 정말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이 와닿았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미워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나를 미워한 적은 있어도… 세상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무지 그런 글을 적을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라는 책을 무척 따뜻하게 읽으면서 큰 위로를 얻었는데, 오늘은 <선명한 사랑>이라는 고수리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재차 고수리 작가가 가진 따듯함이 베인 글을 읽으면서 위로를 얻었다. <선명한 사랑>의 들어가는 글에서 고수리 작가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가족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잠든 얼굴들을 지켜보다가 헝클어진 이불을 끌어 덮어주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만져지지도 않지만, 내가 아는 사랑은 이런 것.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 자라고 이불을 덮어주는 마음. 짙은 어둠도 이불처럼 같이 덮자는 위로와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기도 같은 것. 나도 가족들 곁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이런 마음으로 쓰고 엮은 글들이 여기 담겨 있다. (본문 7)
윗글만 읽더라도 이미 <선명한 사랑>이라는 책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고수리 작가의 글이 어떤 느낌의 글인지 추측할 수 있다. 내가 <선명한 사랑>을 구매했던 건 처음 책이 출간되었던 2023년 11월의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읽어야 할 책이 많다는 핑계로 읽고 싶은 <선명한 사랑>을 좀처럼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일요일을 맞아서 아침에 다른 블로그에 판타지 소설을 읽고 후기를 작성하고, 점심을 먹은 이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드디어 <선명한 사랑>을 펼쳐서 읽어보게 되었다. 아침에 내리다가 그친 비 뒤로 여름을 알리는 매미들의 우렁찬 소리를 듣다 보니 왠지 모르게 그때만큼은 판타지가 아니라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책을 펼친 <선명한 사랑>은 들어가는 글부터 '역시 고수리 작가답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제1장 '모쪼록 힘이 나는 씩씩한 인사로'라는 이름의 카테고리에 들어 있는 글들은 과거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단, 고수리 작가가 본 일상은 무척 따뜻했다.
마치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고수리 작가가 보는 세상과 내가 보는 세상은 너무나 달랐다. 아마 여기에는 서로 가진 경제적 여유와 환경이 다르다 보니 발생하는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고수리 작가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다 보니 평범한 나와 같은 서민과 크게 달랐다.
하지만 고수리 작가의 글에 담긴 여유와 따뜻함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여유와 따뜻함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작가 본인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 보니 일상 속의 따뜻함을 마주할 수 있어서 적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사람의 마음을 데워줄 수 있는 작가는 이런 작가구나 싶었다.
표현이 살가운 딸이 아닌 나는 엄마를 안아준 적이 얼마 없었다. 돌아보니 1년에 몇 번, 아니 그보다도 더 조금, 그사이 엄마는 나보다 작아져 있었다. 엄마 품에 안긴 채 생각했다. 점점 어른처럼 커지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점점 아이처럼 작아지는 엄마를 품에 안으며 나는 자주 마음이 아플 것이라고.
그럼에도 더 많이 안아주고 싶다. 하고픈 말이 많을수록 말문이 막혀버리는 마음을, 주고픈 마음이 넘칠수록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아서. 사랑한다는 말로도 다 설명하지 못하는 이 마음을 전해주고 싶을 때마다 나는 두 팔을 벌려 안아줄 것이다. 아이를 안을 때, 그리고 엄마를 안을 때. 나는 더 잘 살고 싶어 진다.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 싶어 진다. (본문 113)
책을 읽노라면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 잠시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천장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니, 그냥 눈을 훔치면서 눈물을 닦으면서 고수리 작가의 글을 곱씹으면서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특별한 서사가 있는 글이 아니라고 해도 평범한 일상 속의 평범한 순간의 작은 행복을 다시 한번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괜스레 고생하는 엄마가 가슴에 사무쳤던 너무 아팠던 <선명한 사랑>의 제2부 '잘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의 사랑'에서 읽어볼 수 있는 고수리 작가와 그녀의 엄마의 이야기는 지금 다시 읽어도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평범한 순간을 이렇게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느껴지게 할 수 있는 건지 내심 감탄마저 나왔다.
우리가 그렇게 고수리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글이 편한 것도 있지만, 우리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이 외면했던 마음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챙기지 못한 마음이, 죄책감이, <선명한 사랑>을 읽으면서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선명한 사랑>을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그런데도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까지 읽은 글을 통해 마음을 다 채우다 못해 넘칠 것 같은 마음을 글을 쓰면서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그쳤던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하면서 이 여름을 살아가는 매미의 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은 에세이를 읽기 좋은 날인 것 같다. 앞으로도 여름을 맞아 비 오는 날이 잦다고 하니, 여름휴가를 맞아 혹은 쉬는 날을 맞아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 사람에게 나는 고수리 작가의 <선명한 사랑>이라는 에세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분명히 작가의 글은, 글에 담긴 작가의 마음은 마음을 위로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래의 글을 남기고 싶다.
진정 그리워해본 사람들을 만난 날이면 나도 사랑하고 싶어 진다. 불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머뭇거리다가 말해보았다. "사랑해."라고 다섯 번쯤 말해보았다. 첫 번째는 이상했고 두 번째는 쑥스러웠고 세 번째는 간지러웠고 네 번째는 뭉클했고 마지막엔 익숙해졌다.
"사랑해."
짧게, 애틋하게, 간절하게 사랑을 말한다. 엄마는 거기 있다. 전화기를 들고선 얘도 참 뜬금없이 싱겁다며, 그러나 미소 지으며.
"그래 딸, 나도 사랑해."
대답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뜨거운 무언갈 지그시 삼킨다.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가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가까이 느껴진다. 엄마를 잃지 않았어도 엄마를 그리워한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사랑은 하면 할수록 좋은데 슬프네. 언젠가 나는 아주 많이 울게 될 테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그렁그렁한 마음이 된다. 그래도 사랑을 미루진 말아야지. 우리가 언제 영영 그리워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본문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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