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멤버가 던진 친일에 대한 고찰
- 문화/문화와 방송
- 2022. 12. 15. 09:13
원래는 영화관을 찾아 직접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영화가 상영 중일 때는 영화관을 찾을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LG UPLUS IPTV VOD 서비스로 결제를 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올라와 있어서 결제를 해서 집에서 영화 <리멤버>를 시청했다. 이 영화는 무려 60년을 계획한 복수를 아슬아슬하게 실행하는 이야기다.
보통 복수물은 <펜트하우스>처럼 굉장히 긴장감이 고조된 채로 진행이 되거나 <천 원짜리 변호사>처럼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빼앗은 사람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 전개가 되기 마련이다. 영화 <리멤버>는 80살을 넘긴 노인의 복수극을 그리기 때문에 과연 그런 긴장감과 시원함이 있을지 걱정이 들기도 했는데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영화 <리멤버>는 영화를 보는 동안 눈을 뗄 수 없게 했을 뿐만 아니라 '80세가 넘은 노인'이기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대단히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주인공이 복수를 가하고자 하는 대상은 단순히 사적인 원한을 가진 것을 넘어서 일종의 '대의'이자 '정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복수이기에 시원함도 갖추었다.
영화 <리멤버>의 주인공이 복수를 하고자 하는 인물들은 모두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많은 조선인을 갈취하고 오랜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는 고통을 준 인물들이었다. 처음에는 60년이 지나서 복수를 한다는 게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알고 보면 그 이유도 충분히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이나 돼새겨 보아야 할 메시지는 '그 시대를 살았을 뿐이다'라는 메시지다.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아가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던 시절에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앞다투어서 영어를 배웠고, 중국이 앞으로 세계 무역의 중심으로 대두한다고 하니 중국어를 배웠고, 이제는 또 동남아가 뜬다고 하니 이제는 동남아어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성공해서 따뜻한 곳에서 배부르게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시대에 맞춰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에는 어땠을까?
그 시대를 누구보다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본어를 공부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일본에 맞춰서 생활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창 씨 개명을 해서 자그마한 자리라도 차지해야 자신의 목숨을 지키면서 먹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록 누군가 비겁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것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택이었다.
어느 시대라도 흐름을 따랐던 사람들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넣어 세월이 흐르더라도 여전히 그 부와 권력을 세습하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한사코 시대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적응해 누구보다 발 빠르게 적응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에 저항하는 것은 정의(正義)로워도 이(利)가 없었다.
영화 <리멤버>의 주인공이 복수의 대상들은 모두 일제감정기라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누구보다 그 시대의 흐름을 따랐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뜻대로 움직이면서 권력과 부를 손에 넣었고, 이후에는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강력한 극우 세력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도 권력과 부를 손에 쥔 채로 그 자식과 손자에게 물러주고 있었다.
영화 <리멤버>의 주인공은 그런 이들이 여전히 세간에서 위인으로 여겨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주인공이 말한 '반드시 죽여야 할 다섯 명'을 아주 철저한 계산 속에서 그들이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그들을 가장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슴속에 품고 있던 권총 한 자루를 꺼내어 그들에게 발포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80살이 넘은 노인이다 보니 혼자 이 모든 일을 해내는 데에는 한계도 있었다. 주인공을 도와준 인물은 같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한 청년으로, 그 청년은 처음 주인공이 하는 일이 복수인지 모른 채 알바비를 준다고 하니 운전을 해주다가 더는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주인공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80대 주인공 필주와 20대 청년 인규 두 사람은 점차 강한 인연으로 묶이면서 영화 <리멤버>에서 몇 없는 따뜻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이어진 인연이 이야기의 중요한 복선으로 그 역할을 하면서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 필주가 당기고자 했던 마지막 한 발을 인규가 가까스로 막아서게 된다.
영화 <리멤버>의 128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진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주인공 필주가 만난 복수의 대상들 중 한 명이 이야기한 "우리는 그저 그 시대를 살았을 뿐이네."라는 말은 쉽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의(義)를 외치면서 친일파 청산을 외치고 있어도 사실은 모두 오늘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한국이라는 나라는 친일에서 친미로, 친미에서 독재로,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기회로 활용해온 사람들이 모두 사회의 주요 계층에 앉아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친일을 했던 이가 대통령이 되어 독재를 하고, 그 딸이 다시금 대통령이 되었던 이 나라에서 '의(義)'라는 건 허무할 뿐이다.
영화 <리멤버>는 '기억(Remember)'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에게 잊어서는 안 될 과거를 떠올리게 해 주면서도 '어떻게 했던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라는 고민을 안겨준 영화였다. 오늘날 아이들에게 "10억 생긴다면 감옥가도 괜찮아?"라고 질문해을 때 56%가 "그렇게 하겠다."라고 대답했다는 한 설문 조사의 결과가 문득 머리를 스친다.
괜히 의로운 척을 하다가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한 채 사는 게 아니라 살짝 눈을 감고 시대를 따르면서 제 앞가림이라도 하면서 사는 게 더 옳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영화 <리멤버>라는 작품은 80대의 주인공 필주가 가하는 복수를 통해 그 비겁한 선택은 누군가에게 고통이 되지만, 누군가는 전혀 개의치 않은 선택이었을 뿐임을 보여주었다.
당신은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나는… 도무지 거스른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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