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위한 성장 소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 문화/독서와 기록
- 2020. 11. 10. 08:10
일찍부터 읽고 싶었던 소설책이 한 권 있었다. 내가 과거에 깊이 감동하면서 읽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소설을 집필한 작가 스미노 요루의 신작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라는 소설이었다. 사실 읽고 싶어서 책이 발매되었을 당시에 곧바로 책을 구매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나한테는 읽어야 하는 책이 너무 많이 밀려 있었던 거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읽자고 생각하며 뒤로 미룬 게 지금이 되고 말았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라는 책이 발매되었던 날짜는 2020년 6월이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고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은 2020년 11월 9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동안 밀린 책은 어느 정도 해소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나는 읽어야 하는 책이 많이 밀려 있다.
지금 당장 급히 읽어야 하는 책도 한 권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더는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라는 책을 내버려둬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른 책을 읽으려다가 일단은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라는 책을 읽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지금의 내가 겪을 수밖에 없는 정해진 듯한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스미노 요루의 신작 소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 에피소드가 좋았다. 아니, 이건 단순히 좋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에는 우리가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아니, 겪었지만 제대로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실수에 대해 후회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학생이다. 주인공 다바타 가에데가 대학에서 만난 아키요시에게 휘둘리면서 '모아이'라는 동아리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모아이 동아리는 아키요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다바타가 함께 했던 시절과 너무나 변하고 말았다. 다바타는 망설이다가 모아이를 그만두었다.
이야기는 모아이 동아리를 그만둔 이후 주인공 다바타가 4학년이 되어 취업 활동에 나서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다바타는 '나에게 의미가 있었던 순간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진다. 자신에게 물어도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던 다바타는 자신이 대학에 들어왔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아키요시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아키요시와 함께 만든 '모아이'라는 동아리를 생각하며 지금의 변해버린 모아이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이 주인공 다바타 가에데는 '그 시절의 아키요시와 함께 만들었지만 달라진 모아이를 부수겠다.'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해버린다. 당시 '모아이'라는 동아리가 그렇게 대학 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아 괜스레 의욕을 품은 것도 있었다.
자신과 소중한 친구가 만들었던 동아리가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변색된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마음. 처음에 나는 단순히 그 마음에 공감하며 소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변해버린 모아이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조금 더 깊이 사람과 관계된 이야기를 다루었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라는 책을 읽고 있으면 괜스레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다바타가 자신의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서 의미를 찾는 모습에서 나 또한 대학 시절에 보냈던 시간을 돌아보며 의미가 있었는지 스스로 물었다. 다바타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후회하는 모습에서 나 또한 대학 시절에 해버린 실수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대체 21년 동안 살아온 나 자신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
지난 3년 동안을 살아온 나 자신에게 뭔가 의미가 있기나 할까.
그런 게 아닌데도, 그런 문제가 아닌데도, 왜 그런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술, 그리고 취업 결정 소식 탓이다.
만일 능력이나 생김새나 환경 따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면, 계산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래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면.
이상론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다면.
어쩌면 나도 좀 더 나 자신인 채로 손에 넣고 싶은 뭔가가 있었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분명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 45)
현실로 되돌아와 나는 화장실을 나섰다. 거실로 걸어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떨리는 것을 알았다. 마음속에 들이치는 바람의 차가움이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견딜 수 없이 한기가 드는데도 한편으로는 온몸이 뜨거웠다. 이대로 활활 타올라 사라져 버리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알았다.
후회, 그리고 부끄러움, 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주르륵 흘렀다.
갑자기 머릿속이 가려운 것 같아 쥐어뜯듯이 긁어댔다.
어떻게 이토록 늦게야.
이렇게 중요한 일을 어떻게 여태까지 깨닫지 못했을까.
이제야 겨우 깨닫다니.
나는 아키요시가 상처 받는 것 따위, 사실은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본문 325)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의 전개 속도는 빠르지 않다. 빠르지 않지만 주인공 다바타의 시점을 따라 현재와 과거 회상을 오가다 이윽고 도착한 현재에서 부딪히는 갈등은 한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다바타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다바타의 행동을 함께 따라가다가 무심코 깨닫게 되는 잘못과 후회의 감정은 쉼 없이 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한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 다바타는 계속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을 상처 입히는 일을 해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가 머리를 쥐어뜯듯이 긁어대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무심코 나도 눈물이 맺혀버릴 정도였다. 부디 다바타와 아키요시 두 사람의 엇갈린 마음이 다시금 어울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소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는 두 사람이 화해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다바타가 대학생이 아니라 직장인으로서 다시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대학을 찾았을 때 같은 직장인으로서 대학을 찾은 아키요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바타는 걸어가는 아키요시를 쫓아 상처 받을 용기를 내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정말 책을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역시 스미노 요루의 작품답다!"라고 감탄했고, 책을 다 읽은 이후 책을 덮으면서 "역시 스미노 요루의 작품답다!"라며 또 한번 감탄했다. 그동안 읽은 스미노 요루의 작품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는 대학생이 주인공이라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사전에서 '어리다'라는 말은 '나이가 적아. 10대 전반을 넘지 않은 나이를 이른다'라고 적혀 있다. '아리다'라는 말은 '상처나 살갗 따위가 찌르는 듯이 아프다'라고 적혀 있다. '여리다'라는 말은 '의지나 감정 따위가 모질지 못하고 약간 무르다'라고 적혀 있다. 스미노 요루의 소설 제목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는 그 말이 지닌 뜻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회가 된다면 꼭 스미노 요루의 소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를 읽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집필한 <또 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를 비롯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밤의 괴물>을 읽은 사람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나처럼 스미노 요루의 소설을 구매해서 읽어보려고 했을 것이다. 스미노 요루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야기는 매번 가슴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읽은 이 글을 남기고 싶다.
아키요시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다시 고개를 저었다.
"성장이란 약한 자신을 외면하는 게 아닌 것 같아. 분명 약해빠진 나 자신이 있지. 하지만 인간이란 본바탕이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아. 약해빠진 나 자신을 분명하게 인정했을 때 비로소 성장도 할 수 있겠지. 그걸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만족스럽다면 괜찮겠지만 나는 아니었어. 그래서 아주 조금씩이나마 두려움 너머로 가보고 싶었어." (본문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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