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 문화/독서와 기록
- 2020. 5. 18. 08:46
사람은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내용에서 눈물을 뚝뚝 흘릴 때가 있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경험이 한두 번 정도 있을 거다. 그냥 평범한 이야기와 문장일 뿐인데도 문득 마음 깊숙이 그 문장과 이야기가 들어와서 갑자기 마음속 꽁꽁 감춰둔 감정이 폭발해버리고 마는 일.
지금까지 여러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이 더러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길지 않은 문장과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그림이 함께 있던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는 에세이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읽었던 건 2015년, 대학에 다녔던 시절의 일이다. 대학에서 강의가 비는 시간을 맞아 나는 복도에 비치된 테이블에서 들고 있는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펼쳐서 읽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블로그에 꾸준히 콘텐츠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자투리 시간 활용이 중요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오늘 읽어야지’라면서 들고 온 <그래도 괜찮은 하루>는 갑작스럽게 마음 깊숙하게 들어왔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저자 구작가가 어떤 장애를 겪고 있고, 어떤 일을 겪게 되었고,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평범하게 보내는 이야기와 구작가 캐릭터 베니의 그림은 너무 좋았다.
만약 대학 복도의 테이블에서 책을 읽지 않고 집에서 책을 읽었다면,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을 거다. 그 당시에도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 책의 다음 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는 에세이가 나에게 전해준 건 하루를 살아가는 작은 의지와 미소 같은 것들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구작가의 에세이가 발행되면 꼭 사서 읽기로 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읽은 이후에 발매된 <엄마, 오늘도 사랑해>를 읽었고, 오늘은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를 읽었다.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는 표지에서 구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말할 수 있는 토끼 베니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무언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는 베니가 그려진 책의 표지를 넘기면, 작가의 소개가 그려진 노란색 페이지가 나오고, 또 한 장 넘기면 짧은 프롤로그가 있다.
제 눈으로 보았고 마음으로 느낀 모든 것이 참 소중한 기억으로 하나둘 쌓여가고 있어요. 그걸 여러분께 나눠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 여러분도 함께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다면 저는 아주 기쁠 거예요. 그럼, 저와 함께 가보실래요?
청각 장애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점점 시력도 잃어가는 구작가. 그렇기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 혼자서 실컷 다닌 이야기를 오늘 <거기에 가면 좋은 생길 거예요>라는 에세이를 통해 전하고 있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건 문장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짧은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누군가 성공한 사람을 만나서 대단해 생산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주 특별한 곳을 찾아서 특별한 경험을 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갔고, 그곳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의 친절한 도움을 받았고, 그 사람에게 감사를 전했다는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이 저자 구작가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리고 길지 않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이야기와 이야기를 장식하는 구작가의 일러스트는 그 소소한 일상을 너무나도 따스하게 담고 있다. 덕분에 책을 읽고 있으면 괜스레 기분이 무척 편안해졌다.
윗집의 층간소음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아침에 일어나서 잠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 밤에 잠을 자기 전에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를 조금씩 읽었다. 그 탓에 책을 다 읽는 데에 3일이 걸리고 말았지만, 그 3일 동안 마음이 너무 편안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윗집의 층간소음 때문에 쌓인 기분이 좋지 않은 스트레스를 조금씩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마다 내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참 신기하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인데도 어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까?
낮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은 유독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을 만나죠.
그런 날 있잖아요. 왠지 맥주 한 잘 마시고 싶은 날.
파리의 좋아하는 거리에서 햇볕이 잘 드는 자리를 고르고,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잔잔히 바라보면서 상상도 해봅니다.
그 사람의 삶이 어떤 이야기로 채워져가고 있는지......
그리고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생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가만히 구경을 해요.
그렇게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면서 한 잔을 비워내고
기분 좋게 자리를 뜨는 거예요. (본문 77)
책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잔잔한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 그래서 <거기에 가면 좋을 일이 생길 거예요>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집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는 탓에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사람에게 나는 이 책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우리의 지루함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 자극적인 콘텐츠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콘텐츠는 휘발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여운이 좀처럼 남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같은 천천히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는 차분한 마음으로 나를 토닥일 수 있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라는 책 한 권이 아닐까? 클럽 같은 곳을 찾아서 자극과 쾌락에 내 몸을 맡기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정말 손을 붙잡고 이 책을 손에 쥐여주고 싶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휴식은 자극과 쾌락이 아닌 정적인 여유다.
기회가 된다면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라는 책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가끔은, 그런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아요.
작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미 있는 시도요.
나를 위한 선물로 케이크를 사서
스스로 토닥여주며 한 입 먹는 거예요. (본문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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