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 문화/독서와 기록
- 2020. 4. 1. 09:14
내가 처음 클래식 음악을 접했던 건 솔직히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흐릿한 기억을 따라가 보면 중학교 시절에 수행평가로 클래식 공연을 들은 이후 감상평을 써내는 일이 있었고, 그때 지역 문화 회관에서 열리는 작은 클래식 공연을 들었던 때가 처음 클래식 음악을 만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클래식 음악은 나와 접점이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따분한 음악을 듣는 것보다 문장이 나열되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책을 읽으면서 만난 다양한 이야기가 나를 낯선 클래식 음악 세계로 이끌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문학과 음악 두 가지 모두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치 시 같은 음악’ 혹은 ‘마치 음악 같은 글’이라는 감탄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그 정도로 문학과 음악이라는 것은 서로를 자극하면서 함께 사람들의 감수성을 발전시킨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만난 한 권의 책은 딱 제목부터 그렇다.
바로,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이미 책의 제목부터 ‘소설’과 ‘클래식’이라는 문학과 음악이 함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처럼 주인공을 내세워 주인공의 시점에서 음악을 알아가고 배우는 과정을 소설로 그리지 않는다. 그저 1인칭 시점과 유사한 형태로 저자가 자신이 만난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는 크게 제7악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악장은 비발디와 바흐, 헨델, 페르골레시, 하이든의 이야기를, 제2악장은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제3악장은 베토벤의 이야기를, 제4악장은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멘델스존, 쇼팽의 이야기를 다루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장마다 최소 한 명 이상의 음악가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다. 평소 우리가 이름을 들어봐서 알고 있지만, 자세한 내력을 모르는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는 건 독자의 흥미를 한껏 자극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지닌 매력은 단순히 ‘글’ 하나로 독자를 매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에는 한 음악가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마다 드문드문 QR코드가 첨부되어 있다. 곁에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저자가 책을 통해 전하는 음악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볼 수 있다. 덕분에 단순히 글을 읽는 재미가 아니라 영상이 지닌 보고 듣는 재미까지 있었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라는 책은 그렇게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읽는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상상에 그치지 않고, 직접 음악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면서 더욱 깊이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음악가 한 명 한 명과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 아래의 글이 책에서 일부 발췌한 글이다.
‘피아노의 시’, 4곡의 발라드
쇼팽을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른다면 4곡의 발라드를 빼놓을 수 없다. 1835년, 라이프치히를 여행 중이던 쇼팽은 동갑내기 작곡가 슈만 앞에서 자신의 새로운 곡을 연주했다. 슈만은 자신이 발행하던 <음악 신보>에 “여러분, 모자를 벗으세요. 천재입니다!”라며 쇼팽의 음악을 소개한 장본인이었다. 쇼팽의 연주를 끝까지 들은 슈만이 말했다. “당신의 작품 중에 저는 이 곡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쇼팽이 대답했다. “아주 기쁜 일이군요. 실은 저도 이 곡이 제일 좋아요.” 이 곡이 바로 발라드 1번 G단조 Op. 23 (관련 링크 첫 곡)이다. 이 에피소드를 알기 전부터 나도 이 곡을 가장 좋아하고 있었다. (p190)
‘쇼팽’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독자만 아니라 잘 모르는 독자도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QR코드를 찍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듣게 된다. 그 탓에 책을 읽는 시간에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까지 더해지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전혀 싫지 않은 시간이었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와 낯설다는 편견이 다소 많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는 심심찮게 클래식 음악이 깊숙이 침투해있다. 많은 사람이 차 후진 음악으로 알고 있는 ‘엘리제를 위하여’부터 시작해서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우리는 클래식 음악 퀴즈를 내고 맞추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늘 읽은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는 딱 그 정도 높이의 이야기다. 다소 오랜 시간 전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과 음악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절대 딱딱하게 풀어내지 않는다. QR 코드 링크를 적절히 활용하며 책을 읽는 독자가 자연스레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에 대해 호기심을 품게 했다.
그러면서 책을 집필한 저자가 클래식 음악에 어떻게 반하게 되었는지, 오늘날 저자에게 클래식 음악이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풀어내면서 클래식 이야기의 매력을 한껏 강조한다. 만약 클래식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사람, 혹은 여태껏 낯설어 클래식이 어려웠던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오늘처럼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고, 문화 공연 관람 기회도 점점 줄어드는 시기에 딱 좋은 책이다. 이 책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를 읽으면서 글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는 것만큼 홀로 집에서 멋지게 시간을 보낼 방법이 또 있을까? 한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음악은 아는 만큼 들린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이 말이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사와 음악 이론을 알면 훨씬 더 세밀하게 음악을 이해하며 들을 수 있다. 악기까지 다룰 줄 알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은 당연히 피아노 연주자의 표현력과 테크닉을 정교하게 음미하며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이 주는 감동은 지식과 상관없이 다가온다. 한 사람을 처음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그 짜릿한 순간처럼, 어떤 음악에 벼락 맞은 듯 사로잡히고 이윽고 사랑하게 되는 신비의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 (본문 71)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