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경성대부경대역에서 만난 한국 최초 캘리그라피스트 이상현 작가의 B컷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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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부산에서 지인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서 이동하던 도중에 내린 역에서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걸 목격했다. 그 전시회는 아름 가게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B컷 전시회로, 평소 A컷으로 부르는 작가들이 심사숙고한 끝에 고른 작품이 아니라 공개하지 않은 B컷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당시 적혀 있는 설명을 읽으면 다음과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통념을 뛰어넘어, A컷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B컷에 주목합니다. 하나의 A컷이 탄생하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가능성들이 담긴 B컷을 통해, 감춰져 있던 작가의 세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예술의 영역에서도 ‘재사용’의 가치를 새롭게 제시해봅니다. 또한 이곳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B컷들은 모두 작가들의 기부로 이루어집니다.

앞으로 이곳 경성대부경대역에서 이어질 ‘아름다운 B컷’ 전시를 통해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로이 하고, ‘재사용’ 문화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A컷 전시회가 아니라 ‘아름다운 B컷’ 전시회. 전시회의 목적이 상당히 신선했다. 나눔과 기부 물품을 사람들과 나누는 아름다운 가게와 상당히 좋은 개념의 전시회라고 생각했다. 작가들이 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건 대체로 ‘A급’으로 평가한 작품이지만, 그들의 B급 작품도 정말 좋을 때가 많다.


 무엇보다 A급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셀 수 없을 정도의 B급, C급 작품을 생산하며 작가가 스스로 검열하는 과정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B급과 C급 작품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 B급과 C급만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도 모두 하나하나가 그랬다.





 이번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한국의 초대 캘라그라피스트 이상현 작가의 작품으로, 한국에서 캘라그라피 시대를 연 인물의 작품인 만큼, 모든 작품이 상당히 눈에 들어왔다. 정말 돈이 있으면 하나 정도는 사서 집에 장식을 해두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나기도 했다. 그만큼 작품 하나하나가 정말 좋았다.



 나는 이상현 작가와 조금 기묘한 인연이 있다. 그건 내가 아직 부산 외국어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로, 당시 이상현 작가가 학교를 찾아 강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이상현 작가가 글자를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초대 캘라그라피스트가 될 수 있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때가 2016년 4월의 일이니 벌써 3년 하고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세월이 빠르다고 내가 말하는 건 조금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참 세월이 빠르다는 걸 새삼스레 느낀다. 당시 대학에서 강의를 마친 이상현 작가는 강의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아무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때 망설이다 손을 들고 마이크를 건네받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엄청난 인연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 블로그 이름을 글로 한 개만 적어주실 수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3년 전의 일이라 정확히 어떻게 부탁의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당시 이상현 작가의 강의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라 나는 겁도 없이 그런 부탁을 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했다.


 살짝 무례할 수도 있는 부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현 작가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시면서 며칠 있다가 내 블로그의 이름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라는 글씨를 적어서 보내주셨다. 정말 그때 이상현 작가로부터 글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위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가 바로 이상현 작가가 보내준 글씨다. 평범한 사람이 적은 글씨도 아니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한국의 초대 캘라그라피스트가 직접 써서 보내준 글씨. 보통 이런 의뢰를 하려면 정말 큰돈을 주고 의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우연한 만남이 기회가 되며 글씨를 받을 수 있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어떻게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말 딱 그대로다. 당시 강연을 통해 이상현 작가는 “작가는 자존심과 배포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기에 어린 학생인 나의 겁 없는 부탁에 짐짓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커다란 배포로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참,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지금은 블로그 스킨 디자인을 바꾸면서 당시의 글씨를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저 글씨를 소중하게 파일로 잘 간직하고 있다. 사는 게 바빠 잠시 글씨를 잊고 지내긴 했지만, 우연히 부산 경성대부경대역에서 이상현 작가의 글을 만나면서 다시금 그 소중한 인연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람의 인연은 돌고 도는 법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여전히 이상현 작가의 연락처가 폰에 저장되어 있는데, 솔직히 지금 “안녕하세요! 3년 전에 부산외대에서 선생님께 글을 받은 노지입니다. 이번에 우연히 부산 경성대부경대역에서 우연히 선생님의 작품 전시된 걸 보았습니다. 잘 지내시나요?”라고 메시지 한 줄 쓰기가 참 그렇다. 보내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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