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억울한 피해자 윤 씨가 겪은 공권력의 폭력

 최근 한국 사회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사건 중 하나는 오래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지면서 그동안 있었던 여러 논란이 다시금 주목을 받으면서 사건의 개요에 대해 알아보는 프로그램과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의자에 대한 취재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취재를 통해 점점 밝혀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의 진상은 낯뜨거운 한국 공권력 사회의 추잡한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의자가 당시 경찰이 고문으로 허위진술을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재조사를 요구한 검사조차 그의 의견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거다.


 당시 화성 연쇄 살이 사건이 일어났던 시대는 아직 우리나라에 ‘인권’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의 일이다. 1986년부터 1991년에 걸쳐서 일어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민주화 시위 이후 사회가 혼잡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과 달리 범인을 속출해내지 못하고 있던 경찰들은 위에서 압박을 많이 받았을 거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건 증거를 모아서 진범을 잡는 게 아니라, 증거를 날조해서 범인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선택한 인물은 고아에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약자인 윤 씨였다.



 윤 씨는 경찰들에게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마다 고문을 받았다고 모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경찰들은 자신을 죽여버리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경찰들이 부르는 허위 진술을 그대로 또박또박 진술서에 옮겨 적으면서 억지로 현장 검증까지 마쳐야만 했다.


 모든 게 날조된 진술과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고 한다. 국선 변호사는 재판날이 아닌 경우 얼굴 한 번 보기가 어려웠고, 두 번째 재판 때는 검사에게 재조사를 요구해도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만큼 당시의 경찰과 검찰이 가진 공권력의 폭력은 무자비했다.


 “강요에 의한 진술은 증거로 인정받지 아니한다.”라는 조항이 있어도 당시 한국 사회는 아직 그 조항을 지킬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 아직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시점에서 공권력이 휘두르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력에 약자는 고개를 숙이며 온전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억울해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는 사람 하나 없고, 고문과 증거 날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찰,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생각조차 없는 검찰이라는 공권력 앞에 힘 없는 국선 변호사는 의지조차 가지지 못했을 당시의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낙인이 찍힌 윤 씨.


 그렇게 윤 씨는 억울하게 20년 간 옥살이를 하면서 당시 검사는 변호사가 되어 호위호식을 할 동안에도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죄로 처벌을 받고, 죄인의 낙인이 찍혀 살아가야 했다는 건 일반인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을 거다. 어쩌면 죽고 싶을 정도로.


 만약 기술이 발전하지 않고, 한 차례 범인이 잡힌 사건이라고 판단해 사건을 다시 살펴보는 일이 없었다면 윤 씨의 억울함은 밝혀질 수 있었을까?


 증거로 범인을 추려내는 게 아니라, 범인을 정해놓고 증거를 만들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그 시절. 오늘 우리는 이전보다 나아진 인권에 의해 보호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인권을 무시하는 강압적인 조사를 해서 ‘의혹’ 하나로 기소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디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한 사건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20년 간 옥살이를 했던 윤 씨가 제대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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