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바른 나쁜 인간, 변화하는 도덕이라는 잣대

 요 며칠 전부터 나는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예의는 갖추고 있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 혹은 그런 문제와 관련돼 있는 사람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다. 오늘날처럼 도덕의 기준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이 책은 상당한 고민거리를 던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헌법 재판소에서 그동안 무조건 위법 행위로 처벌하는 낙태죄가 풀렸고, 이미 한국 사회는 몇 년 전에 간통죄가 폐지되었고, 아직도 깔 게 더 남았어도 최근에는 시들시들해진 승리 클럽 사건이 있었고, 한 야당의 대표는 대통령을 가리켜 ‘김정은 대변인’이라는 막말 사건도 있다.


 도덕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위 문제들은 전부 도덕적인 문제가 있고, 문제와 관련된 핵심 당사자와 주변 인물 또한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옛날 같으면 낙태죄 처벌 약화에 쓴소리가 가장 먼저 나왔을 거고, 간통한 사람은 법적인 처벌을 받았을 거고, 승리는 망해야 했고, 야당 대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 현실은 도덕적 비난을 받는 만큼 도덕적인 응원을 받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온 도덕적 기준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걸 보여주고, 스스로 ‘난 도덕적인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거다.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때로는 비 도덕적이고, 비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이라는 책은 저자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책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책을 읽는 재미는 별로 없었다. 이런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건 이미 충분히 철학적인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비록 책을 읽는 재미는 별로 없었지만, 평소 사회 문제와 범죄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테마는 분명히 있었다. 더욱이 <예의 바른 나쁜 인간>에는 여성과 남성이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섹스와 불륜 같은 장르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점을 가진 사람을 만나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예의 빠른 나쁜 인간>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깊이 고개를 끄덕인 부분은 아래의 부분이다.


“저는 유명인을 우러러보는 문화가 신이 여럿인 신흥 종교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각각의 유명인이 서로 다른 신성한 특성을 대표하는 거죠. 하지만 그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그 성인의 실상은 절대로 알 수 없어요. 그들에 관한 건 모두 기획되고 편집되거든요. 관음증을 자극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오늘날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겉모습에 의존하기 때문에 거짓말하기도 더 쉬워졌어요. 거짓말하기가 더 쉬워졌기 때문에 자신의 온전함을 잃어버리기도 쉬워졌고요.” (본문 207)


 이 글은 ‘유명인 문화가 도덕성을 바꿔놓았다고 생각하는 걸까?’라는 저자의 의문에 인터뷰어가 대답한 이야기로,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오늘날 승리 클럽 사건을 목격한 많은 이가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아니, 유명인의 도덕적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크게 터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모습을 쉽게 거짓으로 치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서 그들 중 어느 누가 성폭행을 했고, 마약을 했고, 음주 운전을 했다는 등 문제가 밝혀지면 ‘실망이다.’라는 말이 지배적이다. 웃긴 일이다. 그들은 그저 잘 포장된 거짓이었을 뿐인데.


 도덕적 판단이라는 건 그렇게 같은 축을 가지고서도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마치 승리 사건과 관련된 한 변호사가 “이 정도 음담 패설이 범죄라면, 한국 남자의 과반수는 다 범죄자다.”라고 말한 것과 똑같은 경우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지만, 한쪽에선 그들과 닮았을 수밖에 없다.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이라는 책은 지금도 변화하는 도덕적 기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그 도덕적 기준을 이용해서 장사하는 사람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저자는 그저 들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은 재미가 없다. 우리가 생각한 비도덕적인 일에 확고히 비판을 가하는 일도 없고, ‘이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는 애매모호한 결론으로 독자가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감상을 품게 하고, 때로는 따져 묻고 싶을 때도 있었다.


 적극적인 책 읽기를 하는 사람은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라며 한 가지 테마를 읽고 글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거나, 영상 혹은 녹음을 해서 유튜브에 올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그날의 토론 화제로 던져도 괜찮은 소재다.


 단지, 별생각 없이 책을 집어 들면 이 책은 재미가 없다는 걸 명심하자. 오늘날 사회 가치 기준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을 추천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생각을 고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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