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4권으로 읽는 베이징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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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아편전쟁과 베이징 조약은 무엇을 남겼나


 역사 시간에 세계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중국 역사에서 근대화를 문을 연 아편 전쟁에 대해 배우게 된다. 아편 전쟁은 영국이 중국에서 사들이는 차와 비단 같은 물품에 소비한 재화를 다시 중국에서 가지고 오기 위해서 아편을 대량 유통하자, 중국 내부에서 아편 통제와 영국에 대한 저항으로 발발했다.


 대체로 우리가 아는 지식은 제1차 아편전쟁의 단편뿐인데, <본격 한중일 세계사 4권>에서는 제2차 아편 전쟁의 상세한 내용을 만화로 쉽게 읽을 수 있다. 비록 만화라도 전쟁의 발발과 후속 조치에 대해서 자세히 적혀 있어 아편 전쟁의 종료와 함께 이루어진 베이징 조약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제2차 아편전쟁의 발발은 애로호 사건이다. 협상을 위해서 조용히 다구포대로 향하는 영국 함대를 중국 측이 공격해 당시 함대를 이끌던 호프 제독이 부상을 당하고, 중국과 전쟁 중에서 영국이 어쩔 수 없이 철수하게 된다. 이 소식이 영국 내부에 전해지면서 중국을 응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영국의 자유당 정권의 중국 응징 방침에 프랑스도 동참해, 원정군을 꾸려서 중국으로 향한다. 이게 바로 제2차 아편 전쟁이 발발하는 최초의 전쟁이 된다. 




 우리는 그동안 교과서를 통해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서 전쟁이 발발했고, 그 전쟁의 결과 중국이 베이징 조약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지식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본격 한중일 세계사 4권>을 통해 제2차 아편전쟁과 베이징 조약 내부 과정을 읽어보면 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중 한 가지는 당시 영국과 프랑스 두 연합군이 중국 베이탕에 상륙해 어떤 식으로 베이징을 향해 진격할 수 있었는지 상세한 과정이다. 당시 러시아 공사는 중국과 협약 체결에 난항을 겪고 있어 영국 측에 정보를 제공해준다. 중국이 무너진 이후 자신들의 협약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한 목적이었다.


 전과 달리 확실한 정보를 가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다구포대를 넘어 텐진으로 쉽게 진격을 하고, 영국의 파크스는 퉁저우의 승격림심 군영을 찾아가 담판을 시도한다. 하지만 중국 승격림심은 담판을 지으려 찾아온 파크스 일행 서른아홉 명을 모두 체포해 인질로 사로잡아버린다.


 이에 격분한 연합군은 퉁저우로 진격한다. 당시 중국은 아직도 기병대로 전쟁을 벌이는 수단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미 연합군은 신형 후장식 강선포를 가지고 신형 포탄을 날리는 화력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폭발하며 파편을 튀기는 ‘작렬탄’의 도입은 중국의 기병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했다.



 ‘작렬탄’ 같은 신식 병기를 사용하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중국이 결사 항전을 치르려고 해도 역전의 수단을 찾을 수 없었다. 연합군이 팔리교를 점령하자 베이징까지 18km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당황한 중국의 황제는 정국 전권을 공친왕에게 위임한 이후 베이징을 떠나 청더로 피난을 떠나게 된다.


 대신해 정국 전권을 쥐게 된 공친왕은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대화를 시도하지만, 붙잡힌 인질 석방 없이는 대화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 내밀 카드가 없었다. 더욱이 당시 인질로 사로잡은 39명 중 20명이 고문과 처형으로 사망한 이후라 대화를 시도할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채, 원명원을 약탈당한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이 중국의 황실 정원인 원명원에서 약탈한 문화재는 프랑스 퐁텐블로궁의 중국관으로 조성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 각지로 흩어진 원명원 보물들은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경매장에 나와 중국인 부자들을 겨냥해 판매되고 있다고 전한다.



 원명원을 침탈한 이후 기어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자금성 안정문을 점령했고, 인질 살해에 대한 보복으로 영국군은 원명원을 불태워버린다. 원명원 이후에는 중국의 심장이자 상징인 자금성이 불탈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도망쳤던 호아제 함풍제가 무조건 강화 지시를 하며 베이징 조약을 맺는다.


 이 베이징 조약은 18060년 10월 24, 25일에 체결되어 제2차 아편 전쟁의 완전한 종료를 알렸다.


 베이징 조약은 1858년 텐진 조약의 재확인·비준과 함께 베이징 내부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의 공사관이 새롭게 개설하고, 내륙 수로 개방과 열 개 항구를 추가로 개봉한다. 베이징 조약에서 영국은 오늘날 중국에서 민주주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홍콩의 맞은편 야우찜몽 구역을 손에 넣는다.


 그런데 베이징 조약 뒤에서는 직접 전쟁에 참여한 영국과 프랑스보다 러시아가 얻은 이익이 더 많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협상에서 중재 역할을 한 러시아는 원래 받기로 한 흑룡강 너머의 땅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족이 살고 있었던 연해주를 손에 넣게 된다. 연해주는 무려 한반도 세 배가 넘는 땅이었다.


 이로써 오늘날 러시아가 연해주를 영토로 삼고 있는 시발점을 <본격 한중일 세계사 4권> 제2차 아편 전쟁과 베이징 조약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연해주를 손에 넣은 러시아는 급히 세력을 늘리면서 영국과 프랑스 등 각 유럽 국가와 신경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거 또 시간이 더 흐른 후의 이야기다.



 중국이 개방을 하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아편 전쟁과 사후 처리 과정에서 맺은 베이징 조약. 그동안 교과서에서 배운 원인과 결과만 보는 게 아닌, 과정을 쉽게 이해하도록 해준 <본격 한중일 세계사 4권>은 중국 내부의 이야기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의 한일에서 일어난 일도 다루고 있다.


 이제 딱딱한 지문이 가득한 세계사 책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중국과 일본이 관련된 한중일 세계사를 알 수 있는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를 펼쳐보는 건 어떨까? ‘재미없었던 한중일 세계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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