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기생충, 타인을 무서워한 겁쟁이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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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행복' 저자 미아키 스가루가 전하는 색다른 사랑 이야기


 얼마 전에 대학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여자 후배와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아기 고양이를 키우는 듯한 사진을 올린 게 떠올라, 얼마 전에 읽은 <만화로 알 수 있는 고양이의 기분>이라는 책을 보내주기 위해서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연락을 했었다.


 그런데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그 후배가 같은 교류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나와 동갑인 친구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그녀는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이미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하고 오래되었다는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해서 사귀게 되는, 그런 일은 문득 벌어지는 일이라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내 주변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과 사귀는 일은 29년 인생 처음 있는 경험이라 굉장히 낯설었다.


 ‘나이=여친 없는 세월’인 나는 누군가와 사귄다는 말은 들어도 익숙하지 않다. 제아무리 많은 소설을 통해서 연애 이야기를 읽어도 그건 어디까지 허구의 이야기에 불과하지, 실제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 “저와 사귀어줄 수 있나요?”라는 말을 꺼내는 일은 꿈에서도 보지 못할 일이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끌리게 되고, “우리 사귀지 않을래요?”라는 고백을 해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귈 수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마치 소설처럼 누군가 정해준 운명 같은 만남을 하지 않는 이상, 조금씩 만남을 쌓아가며 호감을 쌓아가지 않는 이상 어렵지 않을까?


 오늘 읽은 미아키 스가루의 소설 <사랑하는 기생충>은 바로 그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고, 자신이 상대방에게 가진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무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사랑의 매개체는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기생충’이다.



 만약 기생충을 좋아하는 두 남녀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랑을 싹틔운 이야기라면, 문득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서민 교수가 “역시 기생충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하며 반길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오늘 소개한 <사랑하는 기생충>은 기생충을 좋아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두 남녀는 극도로 타인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결백증, 타인 시선 공포증이라는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남자 주인공 코사카 켄고는 이 결백증으로 인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직을 반복하고 있었고, 여자 주인공 사나기 히지리는 등교 거부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코사카는 27살이었고, 사나기는 17살이었다. 나이 차가 10살이나 나는 데다 타인과 함께 하는 걸 기피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연인이 된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누군가 의도적으로 꾸민 듯한 ‘운명적인 만남’이 작용하지 않는 이상 연인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꾸민 듯한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난다. 그 첫 번째 계기는 코사카에게 ‘이즈미’라는 낯선 남자가 그를 찾아와서 “코사카 켄고, 당신이 어떤 애를 돌봐 줘야겠어.”라며 그를 협박한다. 코사카를 협박한 재료는 그가 몰래 개발하고 있는 컴퓨터 바이러스다.


 코사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동하도록 한 어떤 특수한 컴퓨터 바이러스를 개발해 이미 세상에 뿌려놓았는데, 그 점을 이용해서 ‘이즈미’라는 낯선 남자가 갑작스레 찾아와서는 협박을 섞어 “당신이 어떤 애를 돌봐 줘야겠어.”라고 말한다. 이 사건이 바로 사나기 히지리와 첫 만남의 계기가 되었다.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조금씩 시간을 쌓아가게 되고, 점차 이야기 속에 감춰진 비밀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하며 독자를 놀라게 했다. 책 제목에 사용된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이야기에서 두 주인공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읽는 부분에서는 살짝 오한이 서렸다.


“코사카 켄고, 지금부터 나는 당신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고하려고 해.”

사나기가 끼어들었다,

“이즈미 씨……. 그러지 마세요.”

하지만 이즈미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당신의 머리 속에는 신종 기생충이 살고 있어. 아직 정식 학명이 없어서 우리는 그냥 ‘벌레’ 라고 부르고 있어. 성가신 설명을 생락하고 대충 말하자면 당신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그 ‘벌레’ 때문이야.”


무슨 농담을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분명 이즈미와 사나기 사이에서만 통하는 농담이겠거니 하고.

그렇지만 사나기의 표정으로 보면 그것이 농담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생략)

“그리고 그 ‘벌레’는 사나기 히지리의 머릿속에도 있어.” 이즈미가 말을 이엇다. “당신 머리 소에 있는 ‘벌레’와 사나기 히지리의 머리 속에 있는 ‘벌레’가 서로를 부르고 있어. 당신은 사나기 히지리를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감정은 ‘벌레’가 만든 거야. 너희의 사랑은 꼭두각시 인형의 사랑에 지나지 않아.” (본문 185)


 코사카에게 이즈미가 비밀을 밝히는 부분에서는 너무 놀라 머리가 잠시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사랑하는 기생충>의 주인공 두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벌레’ 즉, ‘기생충’의 두 사람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설명과 다른 케이스에서 일어난 일을 의사를 통해 들으며 받아들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신종 기생충이 두 사람을 서로 끌어당기게 했고, 그 감정은 곧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잉태해 두 사람이 함께하게 했던 거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과연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명백히 그 근거가 나와 있었다.


 소설 <사랑하는 기생충>은 그 사실을 직시한 이후 두 사람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기생충을 죽일 수 있는 신약’을 먹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놀라운 결말이 그려진다. 너무도 뻔한 ‘기생충이 없어져도 이 마음은 그대로였다.’라는 뻔한 결말이 아니라 좀 더 놀라운 결말이다.


 그 결말 부분에서 읽을 수 있는 코사카의 독백 부분은 이렇다.


결국 우리가 ‘벌레’에 의존하지 않고도 서로 사랑할 수 있는가는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된다.

왜냐하면 ‘벌레’는 우리 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그것을 떼어 놓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라는 인간은 ‘벌레’를 포함하고서야 비로소 나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은 머리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사랑하거나, 귀로 사랑하거나, 손끝으로 사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벌레’로 사랑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

그 누구도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본문 327)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 특별한 이유가 모두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재물에 반해서 사랑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독특한 취향에 반해 사랑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반해 사랑하기도 한다.


 단순히 ‘이성’으로만 사랑을 한다면, 우리는 ‘감정’을 움직이는 사랑을 할 수 없다. 이성으로 판단하기에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가 종종 말하는 1등 신랑 신부 조건을 채우지 못해 번번이 낙제점을 받아 사랑하지 못할 테니까. 사랑은 때때로 예기치 못한 형태로 찾아오는 법이다.


 타인이 자신의 영역을 더럽히는 걸 무서워한 결벽증 남자 주인공, 타인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무서워한 여자 주인공이 ‘벌레’를 계기로 서로 사랑에 빠져도 아무런 잘못도 없는 거다. 비록 누군가 그 사랑을 가리켜 ‘꼭두각시’ 사랑이라고 말하더라도, 그 감정은 지금 그 순간이 ‘진실’이니까.


 <사랑하는 기생충>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사랑 이야기는 독특한 주인공과 히로인의 특별하지 않은 사랑을 특별한 형태로 그려낸 이야기다. 겨우살이 아래에서 만난 두 사람이 다시 겨우살이 아래에서 재회하기까지의 이야기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역시 미아키 스가루!’ 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사랑하게 될까? 나이=사랑을 해보지 못한 세월로 지냈기 때문에 아직 그 일을 상상하는 일조차 어렵다. 오늘 나처럼 사랑을 해보지 못했지만,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에게 소설 <사랑하는 기생충>을 추천하고 싶다.


 문득 글을 마치려고 하니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후배와 친구는 무엇을 계기로 서로 사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다음에 함께 만나는 날이 있으면 한번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수 있으려나? (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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