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간접적인 살인자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8. 10. 23. 07:30
강서구 PC방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문제가 없을까?
얼마 전부터 유치원 비리 사건을 쏙 묻어버릴 정도로 큰 주목을 받는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강서구 PC 방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다. 피의자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으로, 이 사건은 흔해 빠진 살인 사건과 어떤 이유로 큰 관심을 받았다.
바로, 피해자가 아직 21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과 피의자가 우울증을 치료받은 적이 있는 심신 미약으로 처벌을 약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두 점을 강하게 지적하며 올라온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 게시글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경찰은 여론으로 표출된 국민적 정서와 사건의 심각성을 생각해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사람들은 한사코 심신 미약 상태인 피의자라고 해도 느슨한 처벌이 아니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그렇게 댓글을 남기거나 생각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심신 미약’을 이유로 처벌을 피하는 강력 범죄자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어린아이를 강간한 어떤 사건을 말할 수 있는데, 그저 술을 마시고 저지른 범죄라고 해서 약한 처벌을 받아 큰 비난이 일었다. 그래서 시민들이 심신 미약을 이유로 엄벌을 면하면 큰 분노를 하는 거다.
이미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글에는 94만 8천여 명이 동의할 정도로 이례적인 사건이 되었으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청와대의 답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연히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경찰은 조금 더 일찍 여론을 달래기 위해서 범인 신상 공개와 엄벌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정의로운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동안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모습에서 조금 좋지 못한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왜냐하면, 피의자에 대한 분노가 또 다른 혐오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혐오 사회다. 남녀 혐오를 시작으로 해서 온갖 요소에 혐오를 붙여 미워하는 감정을 쏟아낸다. 상식을 지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죄책감 없이 물어뜯을 수 있는 일이 생기면, 곧바로 달려들어서 맛이 빠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씹는다.
나중에 “에이, 단물 다 빠졌네. 퉤!” 하면서 뱉을 때까지 씹히는 사건은 사건의 진상과 관계없는 다른 여파를 몰고 올 때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남녀 혐오 사건만 하더라도 일부 이상한 남녀가 서로를 격하게 대한 일들로 이런저런 루머와 해프닝이 생겼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극혐’이라며 비난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강서 PC방 사건이 우려된다. 피의자가 잘못한 일은 분명히 맞지만, 이번 사건으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전체로 혐오가 쏟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사회는 남이 나와 다르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아니라 배척하는 문화가 대단히 강한 사회다.
한국 사회가 말하는 ‘정’이라는 친밀의 개념도 나와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생기는 감정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 다름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정’이라는 개념의 친밀감은 생길 수가 없다. 이해없이 생기는 감정은 오로지 혐오로 이어진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이해’라는 게 있을까?
위 사진은 <우울증 탈출>이라는 도서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읽을 수 있는 도서로, 당시 책을 읽을 때 나는 많은 부분에 공감했다. ‘우울증’이라는 정신적 병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우울증? 그런 건 네가 잘못해서 생기는 거지. 좀 바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기려고 노력해봐.’ 정도로 조언하며, 성격이 어두운 사람들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런데 우울증은 혼자서 노력한다고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과 환경이 함께 노력해야만 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해서 잘 어울리지 못한다. 만약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바깥에서 천천히 적응하는 연습을 한다면, 그 사람을 응원해줄 수 있는 문화와 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대체로 “이거 완전 ○신 새○다.”라며 앞뒤로 욕을 하는 경우가 더 잦다.
그러니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차별이 두려워 자신이 가진 마음의 병을 밝히지 못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점점 스트레스와 울분이 쌓아간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와 울분은 대단히 사람을 공격적이고 예민하게 만들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분노 조절 장애, 소시오패스 같은 단계에 들어간다.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거나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며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화를 절제하기 위해서 나름 애를 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의 이야기이지, 이미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닫게 되면 오늘날 강서구 PC방 살해 사건 같은 일이 발생하며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다.
위 사진은 강서구 PC방 살해 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일부를 캡처한 사진이다. 위 사진을 보면, 과연 누가 살인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미 저런 식으로 댓글을 다는 사람은 자신 또한 소시오패스에 해당하며, 자신도 간접적인 살해를 저지르는 병이라는 걸 절대 모를 거다.
과거 방영된 <보이스 2>라는 드라마를 보면, 이런 사람들이 모여 혐오로 범죄를 일으키는 범죄 집단과 범인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범죄가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이 하면 범죄고, 자신이 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과연 이러한 태도에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
드라마 보이스2 ⓒOCN
위 사진은 드라마 <보이스2>에서 범인이 혐오 게시판에 적은 글이다. 마치 윗글과 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이 너무나 똑같이 겹쳐져 보인다. 오프라인에서 하지 못하는 증오를 쏟아내는 일은 온라인에서 너무나 쉽게, 그리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쏟아 내는 일이 곧 소시오패스의 출발선이다.
막상 사람 앞에서는 어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댓글로 분풀이 삼아 온갖 욕설을 적으며 보이지 않은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들. 공분할 수밖에 없는 사건에 화가 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나도 그런 끔찍한 범죄에 허탈과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길면 약 한 달 동안 열심히 물어뜯길 피의자를 동정할 생각은 없다. 나는 오히려 나도 저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고, 이러한 사례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욕을 할 수도 없었다. 나 또한 우울증을 앓았고, 분노 조절 장애 판단을 받았던 사람이니까.
나는 내가 드문 케이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약간의 다름이 있을 뿐인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크고 작은 범죄는 누구나 다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누구나 범죄자가 되지 않기에 우리 사회는 나빠 보이더라도 잘 유지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그래도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며 혐오하는 사회로 나아간다면 앞으로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우리가 모두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발끈하며 키보드 워리어로 나선 누군가는 이번 사건의 피의자를 악마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들 자신도 끔찍한 악마이지 않을까.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는 누구나 모두 간접적인 살인자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혐오 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에서 너무나 쉽게 혐오를 유발하고, 그 혐오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풍토. 어쩌면 가장 무서운 건 총이나 칼 같은 흉기가 아니라 역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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