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류사회,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약간은 불편할 수도 있는 욕망을 거칠고, 사실대로 표현한 영화 '상류사회'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가까운 극장을 찾아 영화 <상류사회>을 보았다. 영화 <상류사회>는 개봉 전부터 상당히 많은 말이 있던 영화다. 한국 영화에 일본 AV 배우 하마사키 마오가 출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대체 노출이 어디까지 있는 것이냐?’라는 호기심 섞인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상류층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그린 영화에서 AV 배우를 출연시킬 정도로 자극적으로 그린 노출 장면이 궁금했다. 이 궁금증은 당일 영화 <상류사회>을 보면서 풀 수 있었다. 노출 장면은 확실히 사람들이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강도가 셌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장면이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면서 이야기 전개를 방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화 <상류사회> 담고자 했던 ‘욕망’이라는 단어를 적나라하게 관객에게 전하기 위해서 빠질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노출 장면이 없었으면 영화가 무척 힘이 없었을 거다.


 영화 <상류사회>는 상류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남편은 대학교수를 하면서 기회가 오면 정치를 하고 싶어 하고, 아내는 미술관 부관장의 자리에서 관장을 노리며 국회의원 와이프가 되고 싶어 한다. 주인공 부부가 가진 욕망은 사실 우리가 가진 욕망일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지금보다 더 잘 살기를 원한다. 물론, 더 잘 살기를 원한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조금 더 잘 사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권력을 가지고 굽신거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일이다. 그 이외 많은 의미로 더 잘살기 위해서 우리는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거다.



 영화 <상류사회>는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심 불쾌감에 얼굴을 씰룩일 정도로 인간이 가지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상류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개 같이 사는 걸 선택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런 중하류층을 미끼로 유혹하며 자신의 배를 채우고자 하는 상류층의 모습이.


 욕망에 눈에 멀수록 그 욕망이 채워졌을 때 느낄 수 있는 달콤함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달콤함 뒤에는 쓴맛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도중 멈춤을 할 수 있지만, 달콤함에 취해 뒤에 있을 쓴맛을 모르는 사람은 멈추지 못한다. 욕망에 취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맞닥뜨리는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까?


 혹자는 ‘재벌은 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 분명히 재벌은 망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정치 권력은 유한하지만, 재벌이 가진 돈의 힘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과 정치인은 서로의 힘을 규합해서 돈의 힘으로 유한한 권력의 기간을 늘리는 썩은 순환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재벌은 정치인에게 돈을 대서 권력을 유지하고, 정치인은 재벌에게 돈을 받아 부를 유지한다. 이렇게 형성된 상류층은 자신들끼리 때때로 피 튀기는 싸움을 하더라도, 결코 자신들의 담 밖으로 돈과 권력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한다. 영화 <상류사회>에서는 이러한 모습도 굉장히 탁하게 잘 그려져 있다.


 영화 <상류사회>을 보는 내내 가슴의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그 이유는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영화 속의 나온 대사인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놈 몸속에 있는 피 한 방울 못 이겨.”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욕망을 결코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영화 <상류사회>에서 그려진 노출 장면이 불편했던 사람은 사실은 자신도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조금 거친 말이 되겠지만, 인간이 가지는 욕망 중 최하층에 있어도 강한 충동을 품게 하는 욕망이 바로 ‘성욕’이라는 욕망이다.


 성욕은 단순히 관계를 가지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욕망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영화 <상류사회>에서 그려진 주인공 부부 오수연과 장태준이 가진 욕망도 그랬다. 두 사람이 부부로 있는 상대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는 것은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쩌면 이번 영화의 가장 큰 혜택을 입었다’고 전해지는 한용석(윤제문 역)이 보여주는 변태적인 성욕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좋은 여자를 손에 넣고 싶어 하는 건 원초적인 욕망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괜히 미남 미녀인 이성에게 끌리는 게 아니다. 그런 욕망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있다.


 이러한 욕망은 부정한다고 해서 욕망을 억누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욕망의 주인일 수 있도록 자신을 제어하는 일이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욕망에 삼켜지면 괴물이 되고, 욕망을 제어하며 바람직한 동기로 삼는 사람은 성인이 된다. 단지 사소한 그 차이일 뿐이다.



 영화 <상류사회> 마지막 장면을 보면, 오수연이 미술관 전시회에서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노출하며 “저는 욕망의 주인이지, 노예는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을 끝으로 영화 <상류사회>은 엔딩 에피소드로 이어지며 달콤한 뒤에 쓴맛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꽤 비판이 있어도 나는 영화 <상류사회>는 한 번쯤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상류사회>는 우리 인간이 가지는 욕망을 아주 적나라하게 카메라로 담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을 통해 느끼는 공감 혹은 불쾌감은 어쩌면 우리의 욕망과 이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 사회가 보여주지 않는 거울의 뒷부분 같은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 <상류사회>. 이 영화를 보고 당신이 가진 욕망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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