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14회, 프레임의 중요성을 말하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8. 7. 10. 07:30
모든 사건은 어떻게 보는 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이제 결말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14회>에서 다루어진 준강간 혐의로 법정 구속을 당한 교수의 사건은 소설 <미스 함무라비> 마지막 사건으로, 이 사건은 단순히 준강간 사건이 아니라 법정과 재계, 언론의 프레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1차 공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교수는 법정 구속 중에 자살을 시도했고, 이 사건으로 화가 난 원고 측은 언론을 이용해서 사건의 프레임 바꾸기에 나섰다. 튀는 여판사 한 명이 멀쩡한 사람을 유죄로 만들었다는 거다. 재판 내용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도 사실은 상관없는 거다.
원고의 변호인이 의심할 구석이 있는 부분을 지적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 변호인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자 언론이 가세하는 부분은 내심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아마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그려진 언론을 이용해서 사건의 프레임을 바꾸는 모습이 드라마를 보는 우리에겐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교묘히 언론 플레이를 통해 사건의 프레임을 바꾸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제주도에서 난민으로 심사를 기다리는 한 예멘 출신 난민의 인터뷰를 날조해서 보도한 사건으로, 언론의 날조는 사건을 보는 사람들의 프레임을 흔든다.
이렇게 그들이 사건의 프레임을 흔드는 이유는‘불리한 정황’에 쏠린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자 하는 데에 있다. <미스 함무라비 14회>에서 사건으로 다루어지는 사건은 ‘교수의 준강간’ 혐의인데, 언론의 보도로 인해 사건은 튀는 판사의 남혐 사건으로 번지면서 이미 진실 유무는 상관없게 되었다.
<미스 함무라비 14회>를 보면 문득 지금도 논란을 빚고 있는 ‘유튜버 양예원 사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사건도 처음에는 성추행을 당한 양예원 씨를 옹호하며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예원 측과 스튜디오 측의 카톡 내용 공개로 사건의 프레임이 바뀌었다.
성추행과 강압의 유무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하는 사건이 혐과 여혐 사건으로 프레임이 바뀌어버렸다. 사건 관계자가 투신하는 일까지 벌어진 이 사건은 지금도 사실관계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혐과 여혐이 옥씬각씬하며 기 싸움을 하고 있다. 그래서 더 사건의 해결은 어려워졌다.
여론이 관심을 가지는 사건은 허점이 드러나면 재판부 혹은 경찰이 직접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어 어떻게 해서라도 ‘여론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무게가 쏠리게 된다. <미스 함무라비 14회>에서도 ‘성공충’이라는 이름의 판사가 담당하게 되자 법원 내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언론이 무서운 거다. 언론은 여론을 조종할 수 있고, 제아무리 ‘공정한 결과를 내렸다.’라고 재판부가 말하더라도 여론의 쌀쌀맞은 태도에는 깊은 한숨을 쉬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미스 함무라비 14회>에서 박 차오름 판사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와 부딪히는 여론을 그대로 겪었다.
언론을 뒤에서 조종해 여론을 일으킨 배후에는 역시 재계의 인물이 있다는 것도 참 현실적이다. 현실에서도 모 기업의 광고가 달린 이후 태도가 싹 바뀐 언론을 비판하는 모습을 더러 볼 수 있다. 모 기업에 유리한 보도를 하며, 통째로 여론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갈등을 일으킬 작은 씨앗을 뿌리는 거다.
언론을 접하는 사람들이 그 갈등의 씨앗에 현혹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사람들은 금세 주어진 뿌려진 씨앗에 물을 주기 시작하면서 불난 집에 기름 끼얹은 격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싸우다 지쳐가고, 점차 시들시들해지면서 ‘우리가 뭐 때문에 이렇게 불같이 싸웠어?’라며 잊어버린다.
마치 영화 <내부자들>에서 “어차피 민중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면 조만간 조용해질 겁니다.”라는 말이 딱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이 사실을 언론도 알고 있어 허위 사실이라도 최대한 자극적으로 보도한 이후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나도 정정 보도는 쥐꼬리만 하게 내놓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그 정보에 놀아나는 사람들만 엉뚱한 피해를 보는 건데, 사람들은 ‘다수가 저지른 일’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그때 나만 그랬나? 다들 똑같이 말했잖아.’라며 고개를 돌린다. 피해자를 위한 어떤 사죄의 말도 없고, 오로지 피해자만 가해자의 농락을 견디다 못해 정신이 먼저 무너진다.
사직서를 쓴 <미스 함무라비>의 박차오름 판사는 이 모진 시련을 어떻게 이겨낼까? 소설 <미스 함무라비>를 읽은 나로서는 드라마 속에 나온 어떤 복선을 통해 역전의 한 수로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하겠다. 이 이야기를 하면 <미스 함무라비> 마지막이 맥이 빠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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