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가 저녁 있는 삶을 줄 수 있을까
- 시사/사회와 정치
- 2018. 7. 4. 07:30
주 52시간 근무제로 복권 당첨 없이도 저녁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찍이 한국 경기가 끝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는 뉴스 중 하나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도입이다. 52시간 근무제도는 300인 이상의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먼저 실천하고, 50~300인 이하 기업은 20년 1월부터, 5~50인 이하는 21년 7월부터 시행 예정이라고 한다.
OECD 국가 중에서 여전히 최장 노동시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국은 저녁 있는 삶을 위해서 오랫동안 여러 제도를 검토해왔다. 첫 번째 단추는 토요일을 쉬는 주5일 근무제이고, 두 번째 단추는 최저임금을 올리는 일이었고, 세 번째 단추가 이번에 시행하는 52시간 근무제도의 시행이다.
그런데 52시간 근무제도 시행을 앞두고 사회 각 계층에서는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노동자들은 드디어 저녁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고 반기지만, 일부 노동자는 ‘우리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데, 시간이 제한되면 벌이가 줄어서 먹고살 수가 없다.’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그동안 연장 근무 수당과 야근 수당 등 정시간 근무 외 수당을 보태어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노동 시간의 단축은 곧 임금의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수당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살짝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52시간 근무제도가 서로의 갈등을 더 부추길 수도 있다.
지금도 뉴스를 통해서 ‘정규직 직원은 퇴근 시간이 되면 퇴근하는데, 비정규직이나 파견 사원은 해당하지 않아 퇴근하지 못한다.’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노동 환경에서 제대로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불공정한 대우를 막고, 기업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차별을 막아야만 한다.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는 그 정도로 성숙한 시민 의식과 내부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바깥에서는 ‘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막상 내가 있는 안쪽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 문제가 들어오면 눈앞의 이익에 흔들려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그동안 기업이 제대로 이윤을 노동자에게 배분하지 않은 탓에 있다. 기업은 불황이 되면 기업이 살기 위해서 피눈물 흘리는 심정으로 노동자 감축을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기업이 호황을 누릴 때는 그 초과이윤을 직원들과 누리지 않고 자본가가 가져가기만 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자본가가 초과이윤을 가지고 사업 규모를 확장해서 추가로 고용 창출을 하고, 그 고용은 또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해서 이윤을 분배한다고 말한다. 확실히 기업의 사업 확장은 고용 창출에 기여해 이윤분배에 기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사업 확대를 한다고 말하는 기업은 대부분 또 다른 시장에 자신의 자회사를 설립해서 낮은 가격으로 경쟁한다. 소비자는 가격이 낮아져서 처음에는 좋아하지만, 원래 시장에 있던 중소기업과 영세 상인은 몰락해버린다. 이에 반해 대기업은 자회사의 이윤을 본사로 가져오며 더 많은 이윤을 남긴다.
중소기업과 영세 상인을 몰락시켜 얻은 이윤은 다시 노동자에게 재분배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손으로 들어갈 때가 많다. 이윤 분배로 보였던 그 역할이 알고 보니 분배한 이윤의 배 이상을 거둬들이기 위한 전력으로 쓰였을 뿐이다. 당연히 그 사이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대기업이 점점 시장을 장악해나가며 물가를 올리고, 물가가 오르면서 부동산업자도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한다. 당연히 임차인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서 물가를 올리지만, 이미 몰락한 중소기업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그 물가를 감당할 수가 없어 빚더미에 앉는다. 빚을 갚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물어볼 것도 없다. 적은 임금을 주더라도 더 악착같이 붙어서 일할 수밖에 없다. 저녁 있는 삶을 포기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야근을 하고, 잔업을 하고, 때로는 투잡 혹은 쓰리잡을 뛰어가며 살고자 한다. 노동자를 이용해서 벌어들인 이윤만큼 기업이 임금을 올렸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
하지만 기업은 언제나 시장확대를 해서 지금의 30% 이윤을 300%로 늘릴 궁리만 하고, 그 궁리 속에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는 빠져 있다. ‘하는 일은 똑같잖아?’라며 임금을 동결하거나 무리한 사업 확장 속에서 손해가 발생하면,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라며 노동자를 해고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런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아무리 52시간 근무제도를 시행해도 저녁 있는 삶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데다 낮은 임금에 조금이라도 더 보태려고 했던 근로자들은 줄어들 임금에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 걱정은 일찍 마친 저녁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할 일을 찾아 나설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또 노동 시장에 경쟁이 붙기 시작하면, 기업은 조금 더 저렴하게 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노동자는 최저임금보다 더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더 길게 일할지도 모른다.
52시간 근무제도가 똑바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기업에 근로자를 일찍 퇴근시키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노동 시장 내부의 본질적인 문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기업은 근로자들의 근로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임금을 줄이는 데에 급급하다. 직접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어떤 마음일까?
기업과 자본가는 ‘정부 정책이 그렇다.’라며 변명하며 책임을 떠넘길 수 있지만, 근로자는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줄어든 파이가 더 줄어들면, 남은 파이를 가지고 더 치열하게 근로자끼리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에 눈 감고 입을 다물며 암묵적 동의를 하는 거다.
지금 노총이 보여주는 모습이 딱 그런 상황이다. 기업과 근로자 사이의 불공정 시스템 문제를 수정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52시간 근무제도를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공공기관 외 근무자들이 저녁 있는 삶을 보내며 삶의 질을 높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좀 더 장기적으로 면밀히 보아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법도 최소 3년 이상을 보면서 길게 가야 하고, 52시간 근무제도를 위한 기업이 일상처럼 벌이는 근로자와 불공정 계약을 해결하기 위해서 5년 이상을 바라보며 정책이 시행착오를 통해 천천히 진행되어야 한다. 근로자의 수당을 줄이는 게 아니라 대기업과 자본가가 독점한 이윤을 재분배하도록.
불과 며칠 전에 터진 아시아나 항공에 기내식을 납품하던 하청 업체의 대표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일도 이러한 경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불공정 계약을 통해 오로지 자사에 유리하도록 계약을 해놓은 아시아나 항공은 약자를 쥐고 뒤흔들었다. 대기업이 이윤을 독점하는 불공정 거래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진행해야 대기업과 자본가들이 죽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도 살아날 수 있고, 기업 내에서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초과 근무를 하도록 하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틀을 다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52시간 근무제도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