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급 공무원 친구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8. 7. 20. 07:30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결혼을 할까?
이제 연령대가 20대에서 30대로 바뀌는 걸 불과 반년을 앞둔 나는 주변 어른들로부터 “너는 결혼 언제 할 거냐?”, “연애는 하고 있냐?” 등의 질문을 받는다. 시대가 변하며 연애와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음에도 어른들은 여전히 연애와 결혼을 필요불가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서 아름답게 연애를 하며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결혼에 골인하는 일은 인생에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살 위의 사촌 형, 2살 위의 사촌 형, 1살 위의 사촌 누나도 저마다 결혼을 했다. ‘도대체 젊은 세대가 결혼하지 않는다는 건 누가 한 소리야?’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나와 많게는 3살 적게는 1살 차이가 나는 사촌 형과 사촌 누나가 결혼하자 자연스럽게 다음 순번인 나를 보는 시선이 제법 강해졌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나는 결혼 같은 건 안 하고, 혼자 살 거야!’ 같은 말을 워낙 자주 한 탓에 ‘쟤는 그렇지 뭐.’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친척들이 모이거나 어머니와 주변 아는 사람이 모이면 “넌 연애는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이 정도 되면 어떻게 하면 연애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연애를 한다는 게 도대체 어떤 기분인 건지 궁금하기도 하다. 도대체 연애를 하는 건 어떤 능력자들인 걸까?
나는 궁금해서 주변 친구에게 “넌 연애하고 있냐?”, “결혼은 할 거냐?”라는 질문을 종종 던진 적이 있다. 그중 다수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연애는 무슨, 바빠 죽겠는데.”, “나 혼자 먹고살기도 벅차다.”라고 대답했고, 서울에 있는 친구 한 명만이 “난 결혼은 하고 싶은데.”라고 대답했다.
역시 서울에 사는 친구는 집에 조금 여유가 있어서 결혼을 생각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결혼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친구가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7급 공무원 시험까지 합격해 공무원으로 일 하는 친구는 “안 할 건데? 혼자 먹고살기도 벅차다.”라고 대답해 놀라게 했다.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 한국에서 먹고 살기에 벅찬 건 분명하다. <미스 함무라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주인공 임바른 판사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대출금을 갚은 일이 힘겨울 정도다. 오죽하면 로펌에서 만난 회장이 “판사?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말할까.
물론, 드라마라서 어느 정도 각색된 부분도 있겠지만, 대다수 공무원은 대출을 끼고 살고 있다. 내가 공익 요원으로 근무한 법원의 직원분도 “결혼해서 사는 건 빚이랑 함께 사는 일이다. 마이너스 통장 만들어서 꼬박꼬박 돈 갚아가면서 사는 거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만큼 결혼은 부담스럽다.
애초에 한국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빚 없이 시작할 수 없는 나라는 없다. 복지로 유명한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빚으로 집을 사거나 생활 비용을 보충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요구하는 게 워낙 많은 탓에 사회인이 되는 조건이 빚을 지는 일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학생은 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학자금 대출’이라는 빚을 져야 하고, 직장인은 독립해서 살기 위해서 작은 방 하나 혹은 오피스텔에 들어가서 살기 위해서라도 빚을 져야 한다. 더욱이 한국 사회의 많은 기회가 서울로 포진되어 있어 서울 혹은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빚으로 시작하는 일과 다름없다.
여기서 연애와 결혼까지 한다고 생각해보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오, 마이, 갓!”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두 명이 함께 돈을 모으면 더 빨리 돈을 모아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두 사람이 함께 돈을 모으는 만큼 빚도 합쳐지게 된다. 그 빚은 또 어떻게 갚아야 할까?
연애에서도 효율적으로 돈을 사용하기 위해서 데이트 통장과 카드를 만들기도 하고, 결혼하는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 대출 금리 인하 같은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모든 편의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용한다고 해도 그 끝에 ‘연애와 결혼’의 이점은 적은 편이다.
결혼하면 친가 혹은 외가에서 얹혀사는 게 아닌 이상 두 사람이 함께 살 집이 필요한데, 집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젊은 사람들은 대학 수능 시험을 망친 것보다 더 크게 낙담한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해서 작게 작게 살려고 해도 한국에서 타인의 눈이란 신경 쓸 수밖에 없어 점차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만약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두 사람이 가까스로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혹은 소소한 플러스를 기록하던 일은 금새 마이너스로 흐름이 바뀌게 된다. 평생 둘이서 살지 않는 이상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일은 잠정적인 파산으로 가는 일이다. 아무리 정부가 지원한다고 해도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로 제기된 양육 비용은 젊은 세대가 점점 더 결혼하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는 흐름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에 취업해 높은 소득을 얻더라도 ‘일단, 내가 하지 못한 일에 투자하자.’라는 게 삶의 질을 추구하는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다.
7급 공무원인데도 “결혼? 안 할 건데. 나 혼자 먹고살기도 벅찬데.”라고 대답한 친구. 그 친구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펀드 매니저 자격증, JLPT, HSK 등 다양한 시험을 준비하면서 장차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안정된 직업이 있으면 연애를 하거나 결혼한다는 건 이제 옛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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