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생활 밀착 법정 에피소드 소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8. 5. 21. 07:30
'미스 함무라비' JTBC 드라마 방영 전에 먼저 책으로 읽었습니다, "권위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자고요!"
매주 챙겨보는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에 배우 성동일이 출연하여 오는 21일 월요일 밤 11시부터 방영을 시작하는 <미스 함무라비>라는 프로그램을 홍보한 적이 있다. 법정 드라마인 만큼 <한끼줍쇼>의 무대를 법조 타운으로 한 것부터 재밌었는데, 당시 방송 내용도 굉장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한끼줍쇼>를 보면서 <미스 함무라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다. 성동일이 <미스 함무라비>는 실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그 소설을 쓴 인물이 ‘현직 판사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겼다. 생활 밀착형 법정을 다룬 소설을 현직 판사가 썼다고 하니 괜스레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가까운 중고서점에 혹시 <미스 함무라비> 재고가 있나 검색을 해보았다. 기가 막히게도 마치 소설이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딱 한 권이 남아 있었다. 나는 길게 고민할 필요 없이 곧바로 소설 <미스 함무라비>를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성동일의 말대로 <미스 함무라비>는 딱 생활 법정 이야기였다.
소설 <미스 함무라비>의 제목에 사용된 ‘미스 함무라비’는 말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젊은 여 판사인 박 차오름 판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박 차오름 판사가 이 같은 별명을 얻은 이유는 몇 개의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이 두 개의 사건은 ‘박 차오름’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몇 사건을 모두 여기서 소개하기 어려우니, 간단히 첫 번째 사건인 지하철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보자. 첫 번째 사건은 지하철 성추행 사건은 한 여학생의 엉덩이를 만지는 어느 교수를 목격한 박 차오름 판사가 직접 교수를 힐난한 사건이다. 더욱이 박 판사는 그 교수의 사타구니에 니킥을 가했다.
이 정도로 눈에 띄는 행동을 했으니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으로 찍혀 영상이 공유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첫날부터 이미 캐릭터의 모습을 확연히 그린 박 차 판사이지만, 그녀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 차오름 판사는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가만히 당하고만 있던 여학생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학생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어떡해요! 저 같은 목격자가 없더라도 피해자인 학생이 직접 추행범을 분명히 지목하고 신고하면 처벌할 수 있어요. 즉각 신고할 수 있는 앱도 있고요.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본문 20)
굉장히 시원시원한 느낌이면서도 치기가 어릴 정도로 너무나 당돌한 모습이었다. 박 차오름 판사는 비슷한 사건을 몇 차례 더 겪으면서 ‘미스 함무라비’라는 별명을 얻으며 SNS 스타가 된다. 당연히 정숙함을 강조하는 법정 내에서 그녀를 향한 시선은 마냥 호의적일 수만은 없는데, 그게 또 소설을 읽는 포인트다.
‘박 차오름’이라는 캐릭터로 법정 이야기를 시작한 <미스 함무라비>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법정 문제를 다룬다. 고깃집에서 중학생인 아들과 식사를 하다 종업원이 불판을 갈다 불똥을 떨어트린 사건, 원룸 보증금을 곧바로 돌려주지 않아 소송을 건 사건, 주폭 노인의 행패 같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약자의 편에 서서 악덕 기업의 악행을 고발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극 중 긴장감은 크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도 있는 이야기라 오히려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하여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읽은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는 성추행 사건이 가장 와 닿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성범죄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한창이다. 대선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한 인물이 수행 비서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도 있었고, 유명한 연예인이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스 함무라비>에서도 후자와 같은 이야기가 크게 다루어진다.
성추행 사건이라서 <미스 함무라비>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읽은 건 아니다. 사건의 전개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된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 문제로 번졌기 때문이다. 이 책이 쓰인 시기가 2016년 12월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웠다. 어쩌면 법정에서는 이런 일이 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스 함무라비>에서 다루어진 성범죄 사건은 대학교수가 열심히 여학생에게 술을 먹여 인사불성 상태로 만들어 여관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한 준강간 사건이다. 박 판사와 함께 재판한 판사들은 모두 가해자에게 실형을 선고했는데, 2심 재판에서 상황이 묘하게 바뀌면서 프레임이 남혐 문제로 흘러간 것이다.
실제로 해당 사건이 남성 혐오 문제와 얽힐 만한 구실이 있는 건 아니었다. 사건을 맡은 정치가 출신의 변호사가 말재주를 부려 묘하게 남성 혐오 문제로 이끌어가면서 당시 1심 재판관 중 한 명이었던 박 차오름 판사를 겨냥한 사건이다. 이 사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내심 얼마나 혀를 찼는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여성 혐오 사건과 남성 혐오 사건도 사실은 사건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혐오 문제와 크게 상관없는 문제다. 모두 똑같은 법 테두리 안에서 처벌하거나 진상 조사를 했을 뿐인데, 한 쪽이 ‘남자라서 그러냐?’라며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할 뿐이다.
물론, 그러한 반응의 이유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과거부터 반복해온 전례가 상대적 박탈감과 불신을 초래한 이유도 분명히 있다. 소설 <미스 함무라비>에는 성범죄 문제만 아니라 법관의 전관예우 문제 또한 비슷한 사례도 언급하고 있어 내심 고민해볼 수도 있었다.
소설 <미스 함무라비>는 역시 작가가 현직 판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명도 있었고, 직접 재판장에서 본 사건들이 있었기에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사건도 있었다. 나 또한 시법원에서 공익 근무를 했던 터라 <미스 함무바리>를 읽으면서 법정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치기도 했다.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은 드라마를 통해 보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변호사 혹은 검찰이 대기업 혹은 정치인과 커다란 사건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형사 사건과 정치 사건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민사 사건은 재판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수천 건에 이른다. 책에서 언급된 건 아주 일부다.
이 글이 발행되는 21일부터 JTBC에서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방영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확실히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재미와 사회적 의미가 충분한 잠재력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미스 함무라비>에서 볼 수 있는 사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혹 이 글이 계기가 되어 JTBC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보아도 좋겠고, 나처럼 중고서점에서 <미스 함무라비>를 찾아서 읽어도 좋겠다. 그동안 우리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법정 이야기가 알고 보니 우리의 삶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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