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으며 내 마음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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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알지 못했던 아픈 마음을 토닥여주기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곧잘 울 때가 많다. 감동적인 영화를 볼 때도 항상 목이 막힐 정도로 울곤 했었는데, 나는 유독 책을 읽으면서 울 때가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우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정이 흔들리며 ‘나도 그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라며 반응할 때다.


 단순히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나는 어떤 저자가 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보자.’라는 식의 책에는 별 감흥이 없지만,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크게 마음에 요동친다. 책에 적힌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오늘 읽고 있는 책 <미스 함무라비>에서도 그랬다. 박 차오름 판사가 사건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이유를 읽으면서 문득 지나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박 차오름 판사는 과거에 나와 똑같이 지나치게 권위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악착같이 자신을 지키려 했었다.


 잠시 <미스 함무라비>의 한 장면을 읽어보자.


“전 단지 제 한 몸 건사하려고, 살아남으려고, 누구도 날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고시 공부를 했어요. 힘이 필요했거든요. 고시에 붙으면 그런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박 판사는 고해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정작 판사가 되어 사건 기록을 보는데, 자꾸만 말을 걸어와요. 기록 속의 사람들이요. 보증금을 떼여 길에 나앉게 된 임차인이, 상습적으로 상사에게 성희롱당하는 말단 여직원이, 수술 받다 시신으로 돌아온 자식에 대해 제대로 설명 한마디 듣지 못한 어머니가, 빚 때문에 목을 맨 가장이.”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목소리는 높아져갔다.

“그래서 못 견디겠어요. 그 목소리들 때문에. 전 제 몸 하나 지키려고 판사가 됐는데 어느 새 복수를 하고 싶어진 것 같아요. 그 목소리들이 제 목소리 같이 느껴져요. 전 제가 당한 일들에 대해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 제가 어떻게 판사를 할 수 있겠어요…….” (본문 194)


 <미스 함무라비>에서 이 장면을 읽는 동안 눈물이 핑 돌았다.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어 도저히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하필이면 그 날에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던 터라 서러움이 폭발하듯 눈물이 흘렀다. 내가 이렇게 악착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도 박 판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릴 적에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에는 ‘공부를 잘 하면 적어도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도 완전 최상위권이 아니라 어중간한 상위권이면, 신분의 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험 기간 때는 조용해도 시험 기간이 아닐 때는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노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시험 점수가 유일했던 나는 잠시 공부를 접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좀 더 확실하게 성공하고 싶어 자기계발서를 읽기 시작했고, 살아가는 재미가 눈곱만큼도 없는 세상에서 눈을 돌리고자 갖은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일은 내가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였고, 살아갈 의욕이 나지 않는 현실에 나를 붙잡아두기 위한 이유였다. 이유가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 꾸준히 글을 쓴 덕분에 나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읽었다.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다양하고, 모두 아픔과 기쁨을 갖고 있었다.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륙에 발을 붙이는 즐거운 상상을 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숙연해지기도 했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랑의 아픔을 느끼며 울기도 했다.


 계속해서 공백 상태인 내 마음을 채워준 것은 책이었고, 책을 읽으면서 나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 자신에 대한 분노를 들여다보며 토닥여줄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토닥여주었다고 말하기보다 그냥 내 마음을 알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모르는 것과 그래도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지금 이대로 괜찮은 당신>이라는 책을 읽으면 ‘삶을 대하는 가장 멋진 태도란, 내가 어떻게 살아야 즐거운지 아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장미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누군가는 그냥 ‘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다른 점이다.’라는 문장을 읽을 수 있다. 인생이란 정말 그런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즐거운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의 내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노력해야지!’라고 결심한다. 그런데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노력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라면, 무얼 하더라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오늘을 즐겁게 살고자 한다면, 오늘 문득 마음에 사무친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일단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보자.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소박한 사는 이야기는 미처 알지 못한 내 마음을 알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지금 내가 정말 바라고 있는 건 무엇인지 알도록 해준다.


 몸살이 가져온 두통과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싶은 통증을 달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때때로 누군가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곤히 잠을 청하고 싶은 고독을 달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울기도 때로는 웃으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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