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 서지안을 통해 본 자기 삶을 사는 법
- 문화/문화와 방송
- 2017. 12. 11. 07:00
황금빛 내 인생 서지안,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자기 삶'을 찾다
주말 인기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여전히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KBS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주말 예능을 책임졌던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1박 2일>은 횟수를 세는 게 힘들 정도로 결방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드라마는 역시 꾸준히 방영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신기하다.
매주 어머니와 함께 꼬박꼬박 챙겨보는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이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한층 성장해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 반해 매주 열심히 챙겨보고 있는 거다.
<황금빛 내 인생 30화>에서는 서지안이 쉐어하우스에서 거주하는 사람들과 만나 작은 연회를 가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서지안은 그곳에서 선우혁을 통해 소개받은 각 사람들이 저마다 쉽지 않은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서지안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서지안은 서울대를 졸업해 대기업을 다니다 고물상과 비슷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전거를 싣고 가다 동기를 만났을 때의 심정을 물었다. 당연히 일반적인 시선이라면 "쪽팔렸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자전거를 많이 회수해 즐거웠고, 동기는 잘릴까봐 걱정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또 다른 여성이 서지안을 향해 짧은 말을 덧붙였다.
"서지안 씨, 당신 인생은 당신이 사는 거야. 남들 보라고 사는 게 아니라구."
서지안은 그 말을 곱씹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를 향해 울며 고집부린 모습과 고등학교 진로를 '경영학과'를 선택한 과정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로 선택한 경영학과, 과외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한 자신의 삶을 말이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는 '나' 없이 다른 사람만큼 살려고 한 모습을 떠올리며 아파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서지안이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은 아픈 소리까지 한 자신이 무척 후회스러웠을 것이다. 조금만 더 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산다는 일의 가치를 '나'에 두었으면 다를 수도 있었으니까.
서지안이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자기 삶을 살면서 수익은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모습에 반한 것이 삶을 돌아보는 최초의 계기였다. 어떤 사람은 이 모습 자체가 드라마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정말 우리는 그런지 스스로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한때 한국에서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던 <미움받을 용기>에서 읽을 수 있는 아들러 심리학이 말하는 것도 그렇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설명하는 철학자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야 비로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지금, 여기'이기 때문이다.
<미움받을 용기>의 한 장면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철학자 : 자네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네. 나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일세.
청년 : 아니, 그건 너무 이기적인 논리예요. 나만 생각하고 독선적으로 살라는 말씀입니까?
철학자 : 유대교 교리를 보면 이런 말이 있네.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 자네는 자네만의 인생을 살고 있어. 누구를 위해 사느냐고 하면 당연히 자네를 위해 살아야겠지. 만약 자네가 자네를 위해 살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자네의 인생을 살아준다는 말인가?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생각하며 사는 거라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이유가 없지. (페이지 154)
<미움받을 용기>에서 윗글을 읽으면서 나는 '내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비록 아직은 당당히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있다.'라며 겉으로 보여주는 데에는 두려움이 있지만, 인터넷상에서 내 모습을 오프라인으로 드러내고자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내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황금빛 내 인생>의 서지안 또한 이러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나'가 없던 삶을 돌아보면서 후회를 했고, 그렇게 악착같이 매달린 이유가 '내 삶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만큼 살면 행복할 수 있다.'라나는 착각이었으니까. 물론, 이 또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자기 삶을 산다는 것은 자기 이유가 있는 삶이다. 우리의 삶은 누가 대신해서 살아주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이 살 수밖에 없다. <미움받을 용기>의 철학자가 말한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수험생으로서 삶을 살면서 10대 청춘을 다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제 대학에 들어와서는 취업을 위해서 20대 청춘을 다 보내야 한다는 강요를 받고 있다. 그것이 오로지 내 삶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남들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하고 싶은 걸 다 포기하고 있는 거다.
과연 여기서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남들처럼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짜 행복은 내 삶을 사는 데에서 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글을 쓰는 나는 후자의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기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앞으로 시대에 글로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쉽게 글 쓰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는 이 일을 통해 조금 더 다양한 각도로 일을 찾아보고 싶다. 이제 내년이면 본격적으로 나서야 하는 시기가 될 테니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에 '나'가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 이 주의점을 잊지 않는다면, 나는 우리가 <황금빛 내 인생 30화>에서 볼 수 있었던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최고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고 믿는다. 벌이는 적더라도 내가 즐겁고 행복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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