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나는 어떤 어른일까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11. 30. 07:30
어느 덧 어른이 된 서툰 어른들을 위한 에세이, 만화 '보노보노'에서 어른을 발견하다
어릴 때는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일찍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많은 어른이 알고 있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투표권도 가지고, 운전면허증도 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흐르니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청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애매모호한 무언가가 된 기분이었다. 사회에서는 어른으로서 책임을 요구받으면서도 대학에 다니기 때문에 학생으로서 책임도 요구받는다. 학생으로서 책임만 짊어진 고등학교 시절과 너무나 달랐다.
이제는 30이라는 나이가 가까워지면서 ‘아저씨’라는 말을 자주 듣는 일이 익숙해졌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어른이라는 말이 무척 낯설다. 나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기에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경제적 자립을 하지도 못했고, 연애도 하지 못했고, 아직 철도 들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면, 어떻게 변하면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저자는 ‘꿈 없이도 살 수 있으면 어른’이 라고 말한다. 어릴 때 우리는 꿈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대학에 들어가서 연애를 한다거나 어른이 되어 학생 시절에 해보지 못한 일을 해보겠다고 말하는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나이를 먹으면 너무나 당연하게 할 수 있는 19금 영화를 보는 일과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술을 마시는 일이 더는 꿈이 아니게 된다. 멋진 스포츠카를 사거나 넓은 평수의 집을 사고 말겠다는 꿈은 세상 물정을 알아버린 어른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즘 나에게는 꿈이 없다. 그 사실이 마음 편하다. 온갖 꿈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과 대단한 꿈 하나 없어도 살아가는 지금을 비교해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꿈이 있어야 살 수 있다면 아이, 꿈 없이도 살 수 있으면 어른이라는 거다.
어른은 비록 꿈은 없을지 몰라도 세상 물정은 안다. 포기할 때와 그만둬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알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현실도 안다. 그러니 만약 자신이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꿈 없이도 살아가는 나를 장하게 여기며 살자. 어른이란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사는 사람이니까. 꿈 없이도 살아간다는 것, 그건 또 다른 재능이다. (본문 130)
낯선 말로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겹쳐서 볼 수 있는 글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꿈을 이루거나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포기할 때와 그만둬야 할 때를 아는 거다. 흔히 사회생활을 좀 해본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재미없어도 웃을 수 있을 때’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상사의 재미없는 농담에 배꼽 잡으며 웃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는가? 해도 해도 재능이 없는 일을 하나둘 포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는가? 꿈 없이도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는가?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바뀌는 풍경을 바뀌는 감상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는가?
어릴 때는 어른이 되고 싶어 했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어른이 된다는 일이 행복한 일만 아니라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된다. 어쩌면 바로 그때가 비로소 ‘어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무척 서툴게 어른으로 살고 있으니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그런 서툰 어른을 위한 에세이다. 이 에세이는 단순히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하지 않는다. 저자가 만화 <보노보노>를 읽으면서 무심코 탁 던진 듯한 말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쓸쓸히 걷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책을 펼치면 얼마 가지 않아 아래의 글을 만날 수 있다.
나는 힘들다고 말할 때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이 싫다. 상황이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를 때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생각 없어 보인다. 어떻게 힘을 내야 할지 모르겠고 언제 괜찮아질지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그런 말은 폭력이 된다. 차라리 그럴 때는 “야, 진짜 열받겠다!” “완전 짜증 나겠네!” “일단 밥이나 좀 먹어!” 같은 말들이 더 와 닿는다. (본문 14)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무심코 끄덕이고 말았다.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듣고 싶은 말은 마냥 긍정적인 말이 아니라 함께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는 말이다. “힘들다. 어떻게 하면 좋지?”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참아라. 괜찮아질 거다.”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
그때는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보다 “오늘 매운 치킨이나 먹으면서 속 좀 풀까?”라고 말해주는 것이 더 힘이 나는 법이다. 우리가 괴로울 때마다 이어폰을 끼고 홀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고독에서 찾을 수 있는 진짜 나를 위한 위로를 원하기 때문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이런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낯선 곳에서 낯선 글을 읽으며 고민하는 내가 아니라 지금 정처 없이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때로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길 위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당황하는 내 어깨를 살짝 토닥여주기도 하는 그런 책이었다.
매번 즐거움을 추구하느라 정신없는 홰내기는 <보노보노>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동시에 가장 현실적으로도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비슷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듯이, 재미없으면 인생이 끝나버릴 것처럼 아등바등. 또 열심히.
따지고 보면 재미없는 인생이 이상한 게 아니라 계속 재미있기만 한 인생이 특이한 거다. 인생이 늘 새로운 재미와 자극으로 넘친다면 그 인생 어디 피곤해서 살겠나. 가끔은 아무 일 없고 지루해줘야 새로운 재미도 느껴지는 것을. 심지어 아무 일 없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는 것을. (본문 97)
오늘 당신은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살다 보니 어느덧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아직 철부지 없는 어른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기만 했을 뿐 아직도 고등학교 시절과 마찬가지로 취업을 하기 위한 공부에 여념이 없는 대학생 혹은 취업준비생일 수도 있고, 즐거움을 찾아 오춘기를 겪고 있을 수도 있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읽으면서 글을 쓰는 나는 어른이라고 말하기에 너무나 서툰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도 많을뿐더러 하고 싶은 일도 아직은 많고, 꿈 없이도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일찍 어른이 되기보다 조금 더 이대로 철 없는 어른 아이이고 싶다.
다행히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처럼 정겨운 일러스트와 함께 읽을 수 있는 가볍고 감성적인 글이 적힌 책을 좋아하는 나는 여전히 어른 아이인 것 같다. 언제까지 변치 않을지 알 수 없지만, 좀 더 어른이 되더라도 이 순수한 마음은 절대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게 어제의, 오늘의 ‘나’이니까.
마지막으로 책에서 읽은 한 개의 글을 남기면서 이 글을 읽은 서툰 어른과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질구질한 내 모습, 별 볼 일 없는 내 모습,
실망스러운 내 모습도 똑똑히 기억해두어야겠다.
가끔식 그 모습을 떠올리거나 꺼내 보면서
열 번 중에 딱 한 번 그럴듯한 내 모습이
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엉망진창인 나머지 나도 나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식으로라도 나와 화해하며 살 필요가 있다.
스스로 ‘예쁘다’라고 느끼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예쁘지 않더라도 ‘좋아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예쁘다”,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만큼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본문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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